이소선


 새 살림집을 찾으러 춘천으로 갔다가 충주 멧골집으로 돌아오는 시외버스에서 얼핏설핏 시끄러이 벅벅대는 라디오를 듣다. 시외버스 일꾼은 웬만해서는 라디오를 틀지 않는다. 시외버스를 타는 사람은 으레 코 자기 마련이라, 잠잘 때에 귀 따갑지 말라며 조용히 다니곤 한다. 그런데 이날 따라 시외버스 일꾼은 라디오를 틀었고, 라디오 소리는 내 귀에까지 들린다.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들으면서 멀미를 참는다. 이날 내가 탄 시외버스 일꾼은 120킬로미터 가까이 될 듯한 빠르기로 달리면서 찻길을 자꾸 바꾸는 바람에 속이 아주 미식미식 부글부글 끓고 골이 띵하다. 많은 사람 태우고 달리는 길을 좀 보드라이 몰 수 없는가. 좀 귀 안 아프도록 조용히 달릴 수 없는가. 어지럽고 메슥거려 창문에 머리를 기대어 차라리 얼른 생극에 닿기를 바라는데, ‘노동운동가 …… 천만 노동자의 …… 고인 …… 전태일 ……’ 하는 소리가 들린다. 머리를 창문에서 뗀다. 문득 무슨 느낌이 스친다. 설마, 아니 설마가 아닌 생각 하나가 스친다. 그렇구나. 틀림없이 그렇구나. 이제 어머니 한 분이 당신 사랑스런 아이 곁으로 가는구나. 먼저 떠난 아이가 바란 꿈을 이루려고 온몸과 온마음과 온삶을 바친 넋이 이제 마음을 고이 쉬면서 눈물로 젖는구나.

 창밖을 바라본다. 멀미 기운은 가라앉지 않는다. 머리는 그저 어지럽다. 가을 볕살 받으며 천천히 누렇게 익는 나락이 바람이 흩날린다. 눈물이 핑 돈다. 내 어머니가 머잖아 하늘나라로 간다 할 때에도 이렇게 눈물이 핑 돌겠지. 내 아버지도 어머니와 함께 하늘나라로 갈 때에 이처럼 눈물이 젖겠지.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여든한 살까지 살아갈 수 있으면 앞으로 열 몇 해쯤 뒤가 되겠지.

 세 사람 이름이 나란히 떠오른다. 세 사람은 세 나라에서 많은 이들한테서 어머니라는 이름을 들었으리라. 메어리 해리스 존스, 다나까 미찌꼬, 이소선. 《마더 존스》와 《마더 죤스》, 《어머니의 길》, 《미혼의 당신에게》 네 가지 책은 모두 새책방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고요히 잠든 씨앗은 언제쯤 싱그러이 새잎을 틔울 수 있을까. (4344.9.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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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 2012-01-05 15:46   좋아요 0 | URL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를 읽으면서 많이 울었는데...ㅠㅠ
 

 

 발가락으로 읽는 책


 나즈막한 책상에 책을 잔뜩 쌓은 아이가 책상 한쪽에 걸터앉아서 조그마한 그림책을 무릎에 올려놓는다. 책을 읽으면서 발가락은 꼼지락꼼지락. 발레 하는 아이 모습을 담은 그림책이라서 그림책 아이마냥 발가락을 요리조리 움직이나. 책을 들여다보는 눈길은 발가락에서 춤을 춘다. (4344.9.4.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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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 헌책방


 춘천으로 보금자리를 옮긴다. 네 식구 곱게 살아갈 살림집을 찾으러 여러 차례 오간 끝에 참 예쁜 멧자락을 낀 예쁜 집을 얻었다. 예쁜 멧자락을 낀 예쁜 집을 얻었으니 홀가분하다. 도서관 책을 옮길 마땅한 자리는 아직 못 찾았지만, 식구들이 마음을 붙이면서 오순도순 어우러질 좋은 보금자리를 찾았으니 기쁘다. 가벼운 마음으로 춘천 중앙로2가 94-3번지 〈경춘서점〉으로 찾아간다. 그동안 춘천을 오가면서 이곳까지 들르지 못했다. 살림집과 도서관이 새로 깃들 자리를 찾지 못했으니 마음이 무거워 차마 찾아갈 수 없었다.

 춘천 시내 두 군데 헌책방 가운데 하나인 〈경춘서점〉에서 춘천 시내에 자리한 초·중·고등학교와 대학교 졸업사진책 일흔 권을 장만한다. 〈경춘서점〉 책꽂이에서 좀처럼 새 임자를 찾지 못한 채 먼지를 곱게 먹는 졸업사진책을 한꺼번에 장만한다. 춘천에서 문화와 교육과 역사와 삶을 사랑하면서 책을 아끼는 분들은 이러한 옛 자료에는 눈길을 두기 힘들었을까. 어쩌면, 졸업사진책이 어떠한 값과 뜻과 넋이 깃든 책인가를 아직 모르니까 눈길을 못 두었다 할 만하겠지. 1960년대에 춘천국민학교가 어떤 모습이었고, 1970년대에 춘천에서 중학교를 다닌 아이들 옷차림과 머리 모양과 신이 어떤 모습이었는가를 헤아리려는 사람이 있다면, 비로소 이 졸업사진책에 서린 값과 뜻과 넋을 짚을 테지. 나처럼 고향이 인천인 사람이라면, 1950∼70년대에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반공바람’에 휩쓸리면서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동상 밑으로 와서 사진을 찍겠다며 수학여행을 오는 모습이 사진으로 담긴 졸업사진책에 어떤 값과 뜻과 넋이 감도는가를 헤아릴 테지.

 나는 춘천에 있는 춘천 헌책방이 좋다. 나는 인천에 있는 인천 헌책방이 좋다. 나는 제주에 있는 제주 헌책방이 좋다. 나는 서울에 있는 서울 헌책방이 좋다.

 나는 춘천이나 인천이나 제주나 서울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이들 도시에 헌책방이 있기 때문에 이곳 헌책방을 좋아하고, 헌책방을 아끼며 즐겨찾는 사람들 손길과 발걸음을 좋아한다. (4344.9.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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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꽃 2011-09-03 10:20   좋아요 0 | URL
춘천으로 오시네요. 어디예요? 저도 춘천 토박이가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이제 곧 종규님이랑 예쁜 아가들, 예쁜 아가엄마를 볼 수 있겠네요~~

파란놀 2011-09-03 20:08   좋아요 0 | URL
신동면 증3리 멧골자락에 깃든 작은 집이랍니다 ^^
나중에 춘천에서 뵈어요~~~

울보 2011-09-03 11:15   좋아요 0 | URL
어! 저 고향이 춘천인데 요즘도 한달에 두번은 춘천에 가려고 노력하는데 친정이 소양댐밑 샘밭이란곳에 있거든요,
어디로 가실까 ㅡ,
만일 춘천으로 가시게 된다면 나중에 한번 찾아가 봐야겠어요,,

파란놀 2011-09-03 20:08   좋아요 0 | URL
네, 놀러오셔요~
살짝 깊이 들어가는 멧골자락에
아주 조용하게 품에 안긴 집이랍니다~
 
베르너 비숍 Werner Bischof 열화당 사진문고 7
클로드 쿡맨 지음, 이영준 옮김, 베르너 비숍 사진 / 열화당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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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이 무엇을 사랑하는가를 사진으로 담기
 [찾아 읽는 사진책 50] 베르너 비숍·클로드 쿡맨, (열화당,2003)



 1916년에 태어나 1954년에 숨을 거둔 베르너 비숍(Werner Bischof)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한국땅에서 슬픈 피비린내가 나던 때에 이 나라에 찾아와서 ‘슬픈 피비린내’ 사진이 아닌 ‘사랑스러운 사람들 사랑스러운 삶’ 한 자락과 이 삶 한 자락을 뒤틀려는 가녀린 몸짓을 사진으로 담기도 했습니다.

 조그마한 사진책 《베르너 비숍》(열화당,2003)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작은 사진책은 영국 파이돈(phaidon) 출판사에서 내놓은 책을 옮긴 판입니다. 인터넷책방에서 살펴보니 영국에서 나온 판이 외려 한국에서 옮겨진 판보다 값이 쌉니다. 거꾸로 되었네 싶고, 이런 줄 미리 알았으면 영국 책으로 장만했을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진책으로 찍은 빛느낌이나 종이느낌은 한국 책이 영국 책을 아직 못 따르거든요. 더욱이, 굳이 ‘사진쟁이 삶을 풀어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사진마다 옆에 붙인 ‘덧말’을 읽는다 해서 사진을 더 잘 읽어낼 수 있지 않아요. 그래도, “1943년, 비숍은 ‘가난과 싸우고 자유를 사랑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것을 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임무이며, 우리 일생의 임무라고 생각한다’라고 썼다(6쪽).” 같은 글월을 한글로 읽을 수 있으니 고맙습니다. “비숍은 일부러 어린이들을 택했다. 그 나라 지도자들의 죄가 어떤 것이건 간에, 어린이들은 전쟁의 무고한 희생자들이었다. 또한, 핵전쟁의 발발에 위협받고 있는 그들의 미래는 현재보다 황폐할 것 같았다(8쪽).” 같은 글월을 읽을 수 있는 일 또한 고맙습니다.

 다만, 애써 이러한 글월을 읽지 않더라도 ‘사진으로만 보았을 때’에도 베르너 비숍이라는 분이 어떠한 사진을 좋아하면서 어떠한 사진길을 걸으려 했는가를 환하게 느낄 만해요. 사진은 사진이기 때문에 사진으로 읽습니다. 사진은 사진이기 때문에 사진으로 찍습니다. 사진은 사진이기 때문에 사진으로 나눕니다.

 사진을 읽을 때에는 사진으로 읽습니다. 글을 읽을 때에는 글로 읽어요. 사랑을 읽을 때에는 사랑으로 읽습니다.

 사랑을 다른 테두리나 눈길로 읽을 수 없습니다. 그림을 다른 테두리나 눈길로 읽을 수 없어요. 사람은 사람 그대로 바라보면서 마주합니다. 내 앞에 선 사람을 이이 그대로 맞아들이며 사귈 뿐, 이이를 다른 누구로 삼거나 여기거나 견줄 수 없어요. 이이는 오직 이이 한 사람이요 이이 한 목숨입니다.

 베르너 비숍 님 사진을 읽으면서 차근차근 느낍니다. 베르너 비숍 님은 ‘사람들이 무엇을 사랑하는가를 사진으로 담는 사람’이구나 하고 느낍니다. 뉴욕을 찍은 사진이든 조개껍데기를 찍은 사진이든 쿠스코로 가는 길을 찍은 사진이든 모두 매한가지입니다. 베르너 비숍 님은 ‘당신이 찾아가서 만나는 사람’이 살아가는 터전에서 ‘이들이 무엇을 사랑하면서 껴안는가’를 가만히 지켜봅니다. 가만히 지켜보고 나서 살며시 사진기 단추를 누릅니다.

 더 좋다거나 더 나쁘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베르너 비숍 님 당신이 느끼는 결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담습니다. 사람들이 착하게 살면 착하게 사는 얼거리를 사진을 담습니다. 사람들이 바보스레 살면 바보스레 사는 줄거리를 사진으로 담아요.

 저는 골목길을 천천히 거닐며 사진을 찍을 때에 늘 느낍니다. 내가 찍는 골목길 사진은 더 예쁘게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내가 찍는 골목길 사진은 이 골목길을 이루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예쁜 살림 예쁜 빛깔 예쁜 꿈넋 예쁜 손길을 고루 건사하면서 나누기 때문에, 이 모든 예쁜 모습을 내 사진으로 담아 예쁜 이야기를 꽃피울 수 있을 뿐입니다. 서로서로 사이좋게 어깨동무하는 이웃이기에 나 또한 즐거이 사진을 찍습니다. 예쁜 사랑으로 예쁜 웃음을 짓기에 예쁘구나 하고 느낄 만한 사진입니다. 억지로 예쁜 척할 수 없는 사진입니다. 예쁜 그림을 따로 만들거나 꾸밀 수 없습니다. 예쁜 삶은 예쁜 결로 묻어납니다. 만드는 사진은 티가 납니다. 살아가는 사진은 사랑이 묻어납니다.

 자그마한 사진책 《베르너 비숍》에 베르너 비숍 님 모든 삶이나 사진이나 사랑이 깃들지는 않습니다. 꼭 이만큼만 깃듭니다. 그런데, 이만큼이든 저만큼이든 삶이나 사진이나 사랑은 달라지지 않아요. 사진을 더 많이 찾아볼 수 있으면 더 잘 읽을 수 있겠습니까. 사진을 꼭 한 장만 볼 수 있으면 제대로 못 읽겠습니까.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사진 한 장으로 모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사진 한 장으로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진쟁이는 사진 백 장을 그러모아서 또다른 이야기를 싱그러이 들려줍니다. 꿈을 노래합니다. 빛을 나눕니다. 넋을 보살핍니다. 흙을 사랑합니다. 한국땅 사진쟁이들한테 베르너 비숍이 착하고 해맑게 읽힐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4344.9.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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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주신 선물 10
노자키 후미코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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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어머니가 아이 앞에서
 [만화책 즐겨읽기 59] 노자키 후미코, 《신이 주신 선물 10》



 국민학교를 다니던 지난날, 학교에서는 해마다 ‘장래희망’을 적어서 내도록 했습니다. 아이들한테 조금이나마 쉽게 이야기를 하면 좋으련만 언제나 ‘장래희망’이라고만 했어요. 그러니까, ‘앞으로(將來)’ ‘무엇을 하고 싶으냐(希望)’는 소리요, ‘네 앞날 꿈이 무엇이냐’는 소리잖아요.

 이때에 동무들이 으레 적어 낸 꿈 가운데 하나는 ‘대통령’이었습니다. 대통령이 되면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돈이든 힘이든 이름이든 내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내 마음대로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건만, 나를 비롯한 여느 아이들로서는 ‘대통령 자리에 선 사람이 하는 양’을 보면 언제나 당신 마음대로 하니까, 하나같이 ‘가장 힘이 센 자리’에 올라서고프다고 이야기했구나 싶어요. 그래서, 왜 대통령이 되고 싶냐고 담임선생이 물으면 ‘돈을 많이 버니까요’라든지 ‘마음에 안 들거나 날 못살게 군 녀석들을 죽이거나 감옥에 넣을 수 있으니까요’라고 대꾸를 하곤 했어요.

 나라고 내 앞날 꿈이 그리 예쁘거나 빛나지 않았습니다. 3학년 무렵에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라 말한 적이 있지만, 4학년이나 5학년이나 6학년 때에는 장난스레 적어서 내곤 했어요. 뭐랄까, 벌써부터 ‘어떤 돈벌이 일자리를 생각하기’가 내키지 않았고 재미가 없었어요. 국민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든 뒤에는 ‘가정주부’라 적기도 했습니다. 적성검사라고 하는 무슨 조사를 했을 때에 나한테 가장 어울리는 ‘앞날 일자리’는 집에서 일하거나 살림하는 몫이었어요.


- “무슨 말씀인지.” “엄마 아빠 관심을 끌기 위해서 그래요. 자긴 이제 뭐든지 혼자 할 줄 아니까 엄마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 하지만 한편으로 아직 어리광도 피우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을 알아 달라는 거죠.” (10쪽)
- “너희 부모님도 오셨었잖아. 무지 큰 플래카드까지 만들어 오셔서 한바탕 난리를 피우셨지. 그게 무슨 큰 대회라고.” “그래도 매번 난 무지 긴장했었어. 아마 굉장히 힘드셨을 거야. 날 대학까지 수영시키느라. 맞다! 그러고 보니, 난 중1 때가 반항기였는데, 그땐 굉장했지. 엄마가 재혼한다는 얘기가 있어서 가출까지 했었잖아. 가출해서 간 데가 혼자 사는 남자 선배네 집이어서 난리가 났었잖니!” “어머나!” “덕분에 엄마 재혼 얘기는 쏙 들어가 버렸지. 나, 굉장히 몹쓸 짓을 했던 것 같아!” (18∼19쪽)


 문득문득 어린 나날을 돌아보노라면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어쩌면 나는 내 중학생 무렵에 저절로 마음에서 우러나와 적바림한 ‘가정주부’라는 이름 그대로 살아간다 할 수 있거든요. 내 중학생 때는 1988∼1990년입니다. 이때라고 무언가 남녀평등이나 성평등이 더 나아지지는 않았고 더 나빠지지도 않았습니다만, 아들아이를 높이고 딸아이를 낮추는 흐름은 틀림없이 있었고, 이무렵에도 집일은 오직 여자가 할 몫이요 딸아이한테 가르쳐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국민학교 적 여자 동무들은 언제나 집일을 많이 거들고 심부름까지 잔뜩 해야 했어요. 남자 동무들은 집일을 하지 못하게 했고, 집을 하는 남자 동무들을 놀리기도 했습니다.

 이러는 말이 오가던 그때에 나는 좀 달리 느꼈습니다. 그무렵 섣불리 입으로 내뱉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말을 내뱉으면 뻔히 동무들이 입방아를 찧으며 놀리거든요. 그저 마음속으로 말했습니다. ‘왜 집일을 여자만 해야 하지? 왜 집일을 남자가 안 하지?’ 하고 여겼습니다. 명절이나 제사 때 큰집인 우리 집에 찾아오는 작은아버지들이나 작은아버지들네 사촌동생들이 ‘집일을 하나도 거들지 않으며 그저 놀고 먹으며 까불기’만 하는 모습이 아주 못마땅했어요. 나는 마음속으로 자꾸자꾸 욌습니다. ‘나는 앞으로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겠어.’ ‘나는 앞으로 집일을 거뜬히 하는 아버지로 살겠어.’ ‘나는 어머니 곁에서 어머니 일을 잘 지켜보면서 어떻게 일하는가를 배워야겠어.’


- “노조미, 너무 나쁜 애라 미안해!” “노조미!” “엄마, 미안해! 미안!” “노조민 나쁜 애 아냐. 엄마는 노조미를 사랑해.” (29∼30쪽)
- “젖은 안 돼! 넌 이제 밥 먹어야 돼.” “엄마! 너무 싱거워.” “노조미, 주워 먹지 마! 아가는 싱겁게 먹어야 돼. 이게 뭐하는 짓이야! 이거 만드느라 1시간이나 걸렸는데.”  (39쪽)


 언제였는가 잘 떠오르지 않는데, 중학교였던가 국민학교였던가 고등학교였던가, 아마 국민학교가 아니었나 싶은데, “내가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 이때 담임선생 말투대로 하자면 “내가 존경하는 위인”을 적으라 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에 나는 아주 씩씩하게 ‘집에서 일하는 어머니’ 비슷하게 적었습니다. ‘가정주부’라고 적었는지 ‘살림꾼’이라고 적었는지 또렷하게 떠오르지 않습니다만, 나는 내가 생각하는 가장 훌륭한 사람으로 ‘집에서 일하는 여자’만큼 더 훌륭하다 싶은 사람이 없다고 여겼어요.

 이무렵 나는 학교에서 퍽 개구진 아이였습니다. 담임선생은 내가 적은 쪽글을 살피며 또 장난을 치는구나 여겨 꿀밤을 먹였습니다. 그렇지만 장난이 아니었어요. 내 참마음이었습니다. 앞날에 이루고픈 꿈을 적으라 할 때에 어리석게 ‘대통령’ 따위를 적은 적이 있기는 했으나, 참말 내가 우러르며 좋아하고 이루고픈 꿈이요 사랑스러운 사람이란 ‘집에서 일하는 어머니’였습니다.

 2011년 9월 3일 새벽나절, 오늘 하루도 어김없이 글쓰기로 하루를 열다가 얼핏 ‘서울시장에 나오겠다고 밝히는 박원순 님과 안철수 님 이야기’를 읽습니다. 꽤 예전부터 이 두 분은 서울시장이든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하는 정치꾼 자리에 들어서려고 나서리라 느꼈습니다.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이분들한테 물으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셨으나, 이분들이 당신들이 정치꾼 자리로 나설 알맞을 때를 노리며 기다린다고 느꼈어요.

 왜냐하면, 이분들은 ‘집에서 일하는 어머니’ 같은 사람을 높게 여기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거든요. 이분들 스스로 ‘집에서 조용히 일하고 살림하며 아이하고 어울리는 삶을 사랑’하지 않았거든요. 바깥에서 바깥일을 많이 하고, 사회운동이나 문화운동이나 회사일이나 이런저런 데에서 돋보이는 모습을 보이기만 했거든요.


- “너희 아버지가 말한 게 사실 나도 원하는 거긴 하지만, 다들 자기 생활이 있다는 거, 알기도 하고, 나 또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산 경험이 있어서 안다. (너희들하고 함께 살) 건물 같은 거 안 지을 테니까 안심들 해라.” (78쪽)


 판에 박혔다고 하는 정치꾼이든, 여태껏 정치하고는 울을 쌓았다고 하는 시민모임 대표나 안철수백신회사 대표이든, 크게 다르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두 자리 분들 모두 정치꾼이라는 ‘높은걸상’만 생각하잖아요. 서울시장이 되어야 더 많은 일을 하거나 더 아름다운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대통령이 되거나 교육감이 되거나 국회의원이 되어야 우리 터전이나 우리 보금자리나 우리 마을이나 우리 나라를 아름답거나 해맑게 고치거나 바로잡을 만한가요.

 해방이 되고 난 뒤, 김구 선생님 같은 분이 대통령이 되었다 하더라도 이 나라가 나아졌으리라 느끼지 않습니다. 여운형 선생님 같은 분이 대통령이 되었다 하든, 조봉암 선생님 같은 분이 대통령이 되었다 하든, 하나도 달라지지 않아요. 나라가 달라지려면 마을이 먼저 달라져야 합니다. 마을이 달라지려면 조그맣게 살림을 이루어 살아가는 작은 사람들 삶이 먼저 달라져야 합니다. 한 사람 삶이 아름답게 거듭나면서 마을 살림살이가 아름다이 거듭날 때에 비로소 나라 얼거리가 아름다이 거듭납니다. 정치꾼 노릇을 하는 한두 사람 힘이나 슬기로는 나라가 거듭날 수 없어요.

 아무래도, 이런 이야기는 들을 수 없을 테지만, 나는 누군가 한 사람쯤 이렇게 외치기를 기다립니다.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겠습니다.” 하는 외침이 아니라 “집에서 내 아이들과 내 사랑하는 옆지기를 알뜰히 보살피면서 예쁘게 살아가겠습니다.” 하는 외침을 씩씩하게 들려주면서 푸른 들판과 파란 하늘을 누리는 고즈넉한 시골자락으로 작은 집을 마련해서 살아가겠노라 밝힐 ‘이름난 지식인’이나 ‘이름난 글쟁이’나 ‘이름난 정치꾼’이나 ‘이름난 교수’나 ‘이름난 경제꾼’이 다문 한 사람이라도 나오는 날을 기다립니다.


- “어? 노조미는 아직인가 봐요? 오늘은 보육원 애들 거의 다 수두 걸려서 쉬는 것 같던데.” “그래요?” “병원도 엄청 밀리는 것 같네. 온 동네에 수두가 유행인가 봐요.” (108쪽)


 일본 만화쟁이 노자키 후미코 님이 베푸는 예쁜 만화책 《신이 주신 선물》 10권을 읽습니다. 이 책은 진작에 판이 끊어졌습니다. 헌책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마, 국립중앙도서관이라든지 이 나라 어느 도서관이라든지, 만화책 《신이 주신 선물》 열아홉 권을 곱게 갖춘 데는 없으리라 봅니다. 있을까요? 도서관에서 만화책도 곱게 건사하나요? 만화책도 곱게 건사한다면, 《신이 주신 선물》도 건사하는가요?

 여러 해 앞서 이 만화책 《신이 주신 선물》 아홉 권을 헌책방에서 어렵게 찾았습니다. 뒷 권까지 찾지는 못해 아쉬웠으나 아홉 권이라도 찾을 수 있어 기뻤습니다. 이러고 여러 해가 지난 얼마 앞서, 드디어 열아홉 권 모두 짝을 맞추어 새롭게 찾았습니다. 참 여러 해를 기다린 끝에, 누군가 이 만화책을 헌책방에 내놓아 주었기에 고맙게 한 권씩 되읽고(1권부터 9권까지) 10권부터 기쁘게 읽습니다.


-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엔 어딘가로 가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도 당연하겠지만, 어쨌든 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야. 햇볕 좀 쬐고 싶다.’ (159∼160쪽)


 만화책 《신이 주신 선물》이란 “하늘이 내린 고마운 선물인 아이들”을 사랑스레 낳아서 사랑스레 돌보며 사랑스레 살림을 꾸리는 수수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더 있지 않으나 덜 있지 않은 살림이요, 더 잘나지 않으나 더 못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저 꾸밈없이 아름다운 사람들입니다. 있는 그대로 서로를 아끼면서 있는 그대로 서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에요.

 어떤 돋보인다 싶은 이야기나 고빗사위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루하루 부대끼는 삶자락을 만화로 옮길 뿐입니다. 대단하다 싶은 이야기라든지, 역사책에 적바림될 만한 이야기는 한 줄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아주 마땅하겠지요?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삶을 역사책에 적바림할 지식인이나 학자란 아무도 없습니다. 아이를 낳는 어머니 마음, 아이를 몸속에 열 달 동안 모시면서 아끼는 어머니 넋, 아이를 바깥누리에서 마주하면서 차근차근 사랑하고 어루만지는 어머니 몸짓, 이 어머니와 아이 곁에서 온갖 궂은 일과 집일을 도맡으면서 내 살붙이를 예쁘게 사랑하는 길을 바야흐로 느끼면서 하나씩 새삼스레 배우는 아버지 삶이란, 누가 거들떠보지 않더라도 아름답습니다. 굳이 누구한테 내보일 까닭이 없습니다. 살붙이들 스스로 곱게 누리면서 즐길 나날입니다.

 아이 앞에 서는 아버지입니다. 아이 앞에 서는 어머니입니다. 두 사람은 사랑하는 마음을 싱그럽게 믿으면서 어깨동무를 합니다. 나는 내 아이와 내 옆지기하고 살아가는 동안 할 일로도 즐겁고 뿌듯하며 보람차기 때문에, 서울시장이든 충주시장이든 춘천시장이든 바라지 않습니다. 국회의원이 되거나 대통령이 된들 무슨 값이나 빛이 있겠어요. 신문을 읽을 일이란 없습니다. 텔레비전을 켤 일이란 없습니다.

 풀벌레 소리가 고운 빛깔 신문입니다. 바람결 무늬가 예쁜 목청 텔레비전입니다. 멧새 노닐며 날갯짓하는 소리와 몸짓과 눈망울이 착한 이야기입니다.

 길디긴 비가 그치면서 따사로이 내리쬐는 햇살을 먹는 나락이 노랗게 노랗게 노랗게 익습니다. 익는 벼는 고개를 숙인다지요. 참 그래요. 익는 벼는 고개를 숙여요. 벼는 왜 고개를 숙이나요. 익은 벼를 손에 낫을 쥐어 벨 때에는 왜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되면서 웃음꽃이 필까요. (4344.9.3.흙.ㅎㄲㅅㄱ)


― 신이 주신 선물 10 (노자키 후미코 글·그림,이유자 옮김,서울문화사 펴냄,2011.6.20./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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