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버스 책읽기 2


 책을 읽으면서 버스내음이나 버스소리를 잊으려고 하지만, 속이 울렁거리면서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서울에 닿기 앞서부터 바람결이 칙칙하다고 느낍니다. 이곳 서울에서 이 많은 사람들은 무얼 보고 마시고 쓰고 먹으면서 목숨을 이을까요. 이곳에서 살아왔고 이곳에서 살아가며 이곳에서 살 사람들한테는 무슨 빛줄기가 도움이 되거나 쓸모가 있을까요. 아니, 빛줄기를 바라기는 할까 모르겠습니다. 빛줄기를 찾기나 할는지 아리송합니다.

 내가 시외버스를 타서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책읽기이고 다른 하나는 잠자기입니다. 그러나, 시외버스에서 잠을 자며 몸이 개운한 적이란 없습니다. 시외버스에서 책을 읽으며 머리가 맑아지는 때란 없습니다. 푸른 들판에 드러누워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 곳이 아니라면 잠을 자더라도 개운하지 않습니다. 푸른 들판 내음과 소리를 맞아들이고 파란 하늘 내음과 소리를 받아들이는 자리가 아니라면 책을 읽더라도 맑거나 밝은 넋이 깃들지 않습니다.

 책을 살짝 내려놓습니다. 한손으로 이마를 짚습니다. 조용히 비손합니다. 부디 나부터, 아무쪼록 내가 먼저, 메마르거나 팍팍하거나 쓸쓸한 곳을 오가는 길이라 하더라도 내 빛줄기를 놓거나 잃거나 내동댕이치지 말자고 비손합니다. 내가 걷는 길에 내 발자국 고이 아로새기고, 내가 쥔 책에 내 손길 예쁘게 어리도록 하자고 비손합니다. 아나스타시아는 나를 돕고, 나는 아나스타시아를 돕습니다. 옆지기가 나를 돌보고, 나는 옆지기를 돌봅니다. (4344.9.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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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지를 먹는 나무


 “이게 뭐야?” “응, 나무야.” “이건 뭐야?” “응, 열매인가? 아니, 꽃이구나.” “꽃이야?” “응, 꽃이야.” “여기도 꽃, 여기도 꽃, 여기도 꽃.” 읍내마실을 나와 우체국 들러 하나로마트로 가는 길목, 아이는 길가에서 자동차 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쓰느라 잿빛이 되고 만 나무와 풀줄기를 바라본다. 잿빛이 되는 푸른 잎사귀를 쓰다듬고, 먼지를 잔뜩 머금은 꽃을 어루만진다. ‘이 녀석아, 손에 먼지 묻잖아.’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다가 파르르 사라진다. 문득, 내가 우리 아이만 한 나이였을 지난 어느 날, 나도 내 아이처럼 이 ‘먼지나무’와 ‘먼지풀’을 살며시 쓰다듬으면서 걷던 일이 떠오른다. 풀잎과 꽃잎에 앉은 먼지를 내 작은 손으로 닦아내던 일이 두 눈에 겹친다.

 아이는 예쁘다. 나 또한 예쁜 아이로 살던 나날이 있다. (4344.9.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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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울


 숨막히는 서울에서 살아가더라도 밭을 일구고 꽃을 돌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온통 자동차투성이라 하지만, 자전거를 달리면서 땀을 쏟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직 돈을 버는 일 말고는 다른 데에 눈길을 돌릴 겨를이 없으나, 착하거나 맑거나 곱게 꿈 한 자락 붙잡는 사람이 있습니다. 끔찍한 서울이지만, 모진 서울이지만, 오로지 돈과 기계와 자가용과 허울좋은 이름값이 넘실거리는 서울이지만, 이처럼 슬픈 서울이 하루아침에 무너지지 않는 까닭이라면, 비틀비틀거리면서도 오순도순 어우러지며 빙긋 웃는 사람이 있는 까닭이라면, 바로 가슴에 사랑씨를 예쁘게 건사하면서 마음밭 보살피는 넋이 곳곳에 살가이 있기 때문일 테지요. (4344.9.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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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시를 탈 때에


 둘째 백날 때에, 둘째를 데리고 모처럼 바깥마실을 나와 두 분 할머니와 두 분 할아버지를 뵈었습니다. 네 어른들하고 바깥밥을 함께 먹는데, 바깥밥을 먹는 곳에서는 시원하게 해 준다면서 에어컨을 틀었습니다. 에어컨을 튼 밥집에서는 땀이 흐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눈이 뻑뻑하고 살이 뻣뻣합니다. 옆지기는 둘째한테 젖을 물리면서 둘째 눈이 에어컨 때문에 벌겋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나 혼자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을 거쳐 춘천으로 옵니다. 시외버스를 두 차례 탈 때에 에어컨 바람이 가득하고, 춘천에 닿아 움직이다가 택시를 탈 때에도 에어컨 내음이 가득합니다. 눈이 몹시 아픕니다. 눈물이 다 말라 뻑뻑하고 골이 띵합니다. 하루 내내 시외버스를 몰거나 시내버스를 몰거나 택시를 몰거나 자가용을 몰거나 짐차를 몰면서 에어컨하고 살아내는 사람들은 눈이나 머리나 몸이 어떻게 될까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에어컨을 이렇게 자주 많이 쐬면서도 몸이 무너지지 않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우리 식구 새로 깃들어 살아갈 보금자리로 먼저 찾아가서 네 식구 알콩달콩 지낼 만한가 돌아봅니다. 앞과 옆으로는 논이랑 밭이고, 논 뒤로는 멧기슭이요 다른 옆과 뒤로는 다른 밭이랑 멧자락입니다. 퍽 멀리 전철길과 찻길이 보이지만 차소리와 전철소리는 아스라히 들릴 뿐, 바람과 풀벌레와 멧새가 들려주는 소리가 가득합니다. 나락을 흔들고 풀을 어루만지는 바람이 살랑살랑 붑니다. (4344.9.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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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숨 책읽기


 목숨을 바치지 않고서야 사랑을 이루지 못합니다. 목숨을 들이지 않고서야 아이를 낳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목숨을 쏟지 않고서야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어마어마하게 따사로운 목숨이 깃든 책 하나를 고맙게 읽습니다. 나 또한 내 목숨을 기울여 쓴 글과 찍은 사진으로 책 하나 일구어 내놓습니다. (4344.9.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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