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 마을책집 이야기


띠앗 (2025.4.19.)

― 부산 〈카프카의 밤〉



  숱한 책이 빽빽한 책꽂이 앞에 서면서 아찔할 만합니다. 어느 책부터 읽어야 할는지 모를 수 있습니다. 아름책을 가려서 읽고 싶은 마음이 들 만하고, 사랑책부터 읽고 싶을 수 있어요. “왜 모든 책이 아름답지는 않을까?” 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만하고, “왜 안 아름다운 책이 이토록 많지?” 싶어 슬플 수 있어요.

  온누리 모든 책은 “그저 책”입니다. 온누리 모든 풀꽃나무는 “그저 풀꽃이고 나무”이고요. 따로 아름풀이나 아름꽃이나 아름나무는 없습니다. 풀과 꽃과 나무는 서로 어울리면서 이 별을 푸르게 감싸고 돌본다고 느껴요.


  그렇다면 왜 “안 아름책”이 있나 하고 갸우뚱할 수 있는데, 우리는 풀꽃나무와 달리 “돈을 벌려고 글을 쓰거나 책을 내”기도 하거든요. “이름을 날리거나 힘을 부리려고 글을 쓰거나 책을 내”는 분도 있습니다. 책장사가 나쁠 일은 없되, 장삿속에만 스스로 갇힌 채 살림노래를 잊은 책이 수두룩해요.


  부산마실을 하노라면 부산버스하고 부산전철을 으레 탑니다. 차분하고 참한 부산이웃도 스치지만, 어쩐지 어깨로 밀치고 새치기를 하는 부산이웃도 스치고, 발을 밟고도 그냥 지나가는 부산이웃도 스쳐요. 이때에 누가 나쁘다거나 좋다고 가를 수 없다고 느껴요. 그저 숱한 다른 사람입니다. 책도 이와 같아서, 그저 하나하나 짚고 헤아리다 보면, 문득 아름책 한 자락과 사랑책 두 자락을 만난다고 느껴요.


  오늘 새삼스레 ‘이응모임(새롭게 있고, 찬찬히 읽고, 참하게 잇고, 느긋이 익히고)’ 열두걸음을 폅니다. 오늘은 다같이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을 읽어 보면서 저마다 마음에 스민 한 자락을 쪽종이에 손수 옮겨적고 읊으며 마음소리를 듣습니다. 이러고서 ‘내 눈’을 글감으로 잡아서 저마다 살림글을 적습니다.


  나는 어떤 눈일까요? 너는 어떤 눈인가요? 우리는 어떤 눈으로 만나고 헤어지면서 오늘 이곳에서 하루를 그릴까요? 나는 아직 아름눈이 아닐 수 있고, 너는 여태 사랑눈이 아닐 수 있어요. 그러나 나도 너도 함께 아름눈길과 사랑눈길을 그리면서 만납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새눈길과 오래눈길을 가다듬으려고 합니다.


  우리말 ‘띠앗’이 있습니다. 이 낱말을 모르는 분도 많고, 아는 분도 많아요. 그냥그냥 외우려고 하면 쉽게 잊습니다. 그러나 ‘띠·끈·줄·금·바’하고 ‘씨앗·씨알·품앗이·알다·아름·안다·아늑’이라는 낱말을 혀에 얹으면 왜 띠앗이 띠앗인가 하고 살며시 녹이든 받아안을 만합니다. 처음에는 작은씨앗 한 톨로 이 별에서 태어납니다. 우리는 처음에 서로 몰랐지만, 천천히 깨어나고 자라는 동안 푸른별을 푸른숲으로 이루는 작은나무로 자라며 어느새 새삼스레 띠앗입니다.


ㅍㄹㄴ


《우정이란 무엇인가》(박홍규, 들녘, 2025.4.10.)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정여울, 김영사, 2019.10.23.첫/2020.1.2.9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렌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김수현 옮김, 미메시스, 2021.8.5.)

#レンタルなんもしない人>というサ?ビスをはじめます #レンタルなんもしない人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마르그리트 뒤라스/윤진 옮김, 민음사, 2018.12.29.첫/2019.11.22.)

#Ecrire #MargueriteDuras

《토리빵 8》(토리노 난코/이혁진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25.4.15.)

#とりぱん #とりのなん子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숲노래·최종규, 철수와영희, 2025.3.28.)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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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딩 아빠다 창비청소년시선 11
정덕재 지음 / 창비교육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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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5.17.

노래책시렁 497


《나는 고딩 아빠다》

 정덕재

 창비교육

 2018.3.5.



  저는 빨리 말하지 못 합니다. 여느 사람하고 대면 꽤 느려서 저더러 충청사람이냐고 묻는 분이 많아요. 그런데 누구나 말을 할 뿐이요, 빠르거나 느리다고 재야 하지 않고, 빠르건 느리건 저마다 다르게 말빛을 펴며 만날 뿐입니다. 어느 분은 저더러 “듣는 사람을 헤아려서 천천히 말씀하나요?” 하고 물어요. 곰곰이 짚자니 이 말씀도 맞겠구나 싶어요. 저는 말더듬이에 혀짤배기라는 몸을 타고난 터라, 조금만 빨리 말하려고 하면 혀가 꼬이거나 쉽게 더듬습니다. 더듬지 않거나 혀가 안 꼬이려면 느릿느릿 말해야 하는데, 느릿말을 하노라니 “둘레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할 적에 언제까지나 기다리는 매무새”가 몸에 배더군요. 《나는 고딩 아빠다》를 읽으며 내내 아쉬웠습니다. 아버지라면 그저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초딩이나 중딩이나 고딩이나 대딩 아버지가 아닌 “그저 아버지”요, “아이곁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어버이”라는 이름이면 넉넉합니다. 아버지로서 아이한테 들려줄 말은 늘 하나예요. 사랑입니다. 아버지로서 살아갈 길은 으레 하나예요. 사랑입니다. 그러나 글님은 자꾸 술 얘기에 ‘네 나이쯤 난 이미 살아 봤으니 알지’ 같은 핀잔이 잇습니다. 아이가 이제부터 살아갈 ‘어진 앞길’을 노래할 수 있는 아버지이기를 빕니다.


ㅍㄹㄴ


술에 취해 비가 내린 날 / 걸어오는지 / 집을 떠나는지 / 낯익은 청년의 그림자가 / 내 앞에서 어른거린다 (비가 온다/21쪽)


이제는 손가락에 침을 바르기 전에 / 돋보기를 먼저 찾아야 할 나이 / 책벌레같이 굴러다니는 / 작은 글자들을 만지작거리면 / 옛날 교실 풍경이 아른거린다 (수업 시간에 소설책 읽기/29쪽)


소주를 얼마나 마시면 취하냐는 / 질문에 / 답을 하지 못했다 (채우니 비우더라/86쪽)


+


《나는 고딩 아빠다》(정덕재, 창비교육, 2018)


세상을 만나는 관계의 시작이 손이다

→ 우리는 손으로 처음 만난다

→ 우리는 서로 손부터 만난다

10쪽


고통의 상처를 남길 때

→ 괴롭게 생채기 남길 때

→ 아픈 자국을 남길 때

11쪽


닳아진 구두

→ 닳은 구두

13쪽


건너편 점멸의 신호는 사춘기를 비춘

→ 건너 깜빡불은 꽃나이를 비춘

→ 건너에서 깜빡이며 꽃날을 비춘

14쪽


반성과 회한의 석고대죄는 아닐지라도

→ 뉘우치고 울며 빌지는 않더라도

→ 돌아보고 아리며 엎드리지 않더라도

18쪽


아들이 폭탄선언을 한 것은

→ 아들이 외친 때는

→ 아들이 소리친 날은

→ 아들이 밝힌 때는

22쪽


1등급 한우만 취급해

→ 으뜸 한소만 다뤄

→ 첫째 누렁소만 팔아

30쪽


참으로 요원한 일이다

→ 참으로 까마득하다

→ 참으로 감감하다

→ 참으로 먼 일이다

35쪽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결정장애다

→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린다

→ 사이에서 망설인다

→ 사이에서 머뭇거린다

38쪽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혜련 양에게라고 적었다

→ 쓰고 지우기를 하다가 마침내 혜련 씨한테라고 적는다

42쪽


단발머리에 약간의 볼 화장을 한 듯 홍조가 예쁜 아이였다

→ 귀밑머리에 볼을 살짝 바른 듯 발갛게 예쁜 아이였다 

→ 몽당머리에 볼을 가볍게 바른 듯 발그레 예쁜 아이였다

44쪽


소주를 얼마나 마시면 취하냐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 불술을 얼마나 마시면 거나하냐 묻는데 말을 하지 못했다

→ 불술을 얼마나 마시면 곤드레냐 묻는데 대꾸를 못했다

86쪽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 파란 하늘을 뒤로

100쪽


들은 복수의 뜻을 나타내는 접미사다

→ 들은 겹을 나타내는 끝가지다

→ 들은 겹겹을 뜻하는 뒷가지다

102쪽


가불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 자주 당겨쓴다

→ 자꾸 먼저 받는다

108쪽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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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고 커다란 아빠 - 2020 가온빛 추천그림책 모두를 위한 그림책 31
마리 칸스타 욘센 지음, 손화수 옮김 / 책빛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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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5.5.17.

그림책시렁 1582


《나의 작고 커다란 아빠》

 마리 칸스타 욘센

 손화수 옮김

 책빛

 2020.7.30.



  제비나비가 날아다니고 깨어난다면, 나비한테 즐거운 터전이 곁에 있다는 뜻입니다. 부전나비가 춤추고 돌아다닌다면, 나비 곁에서 어린이가 마음껏 뛰놀 만한 자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네발나비가 어울리고 살아간다면, 새와 사람과 풀숲이 곱게 함께한다는 뜻입니다. 《나의 작고 커다란 아빠》는 아이곁에 있고픈 어버이 마음이란 어떠한가 하고 들려줍니다. 아버지는 얼핏 덩치가 크고 힘이 세어 보이지만 매우 조그마한 마음입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아무렇지 않게 목말을 태우거나 업거나 안을는지 모르나, 꽃 한 송이를 고스란히 손바닥에 놓을 수 있습니다. 어진 아버지라면 아이를 돌보는 집안일에 힘을 씁니다. 안 어진 아버지라면 아이를 윽박지르거나 때립니다. 착한 아버지라면 신나게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비질과 걸레질을 도맡습니다. 안 착한 아버지라면 집에서 뒹굴며 집안일에 나몰라입니다. 아버지는 배우는 사람입니다. 아이가 일곱 살이라면 아버지는 이제 고작 ‘일곱해 배움길’이에요. 아이가 열두 살이라면 아버지는 이제 겨우 ‘열두해 익힘길’입니다. 온누리 모든 아버지가 기쁘게 아이곁에 서면서 언제나 노래와 춤으로 집살림을 일구기를 바라요. 아이들은 웃고 이야기하는 수다꾼 아버지를 바랍니다.


#Livredd i Syden (2013년)

#MariKanstadJohnsen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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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5.13. 누가 스승



  말밑(어원)으로 보아도, 말뜻으로 보아도, 또한 우리나라뿐 아니라 이웃나라 살림길을 보아도, ‘스승’이라는 사람은 남한테 안 시키되, 누구나 스스로 하도록 스스럼없이 선보이면서, 늘 이슬받이처럼 몸소 일으키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푸른별(지구)에서 스승인 사람은 누구나 그 삶터에서 ‘어른’이더라. 우리는 스스로 ‘스승길 + 어른길’로 걸어가는 ‘사람길 + 사랑길’을 일굴 일이라고도 느낀다. 언제나 ‘스승’과 ‘어른’이라는 낱말을 마음에 놓는다. 너도 어른이고 나도 어른이다. 우리는 아직 “덜 어른스러울” 수 있지만, 아이곁에서 철든 어른으로 살림하는 길을 걸어가면서 사랑을 그리는 하루를 살아가야지 싶다.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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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살림말 / 숲노래 책넋

2025.5.14. 띄우고 나서



  흔들흔들 덜컹덜컹 시골버스를 타고서 고흥읍으로 나오는 길에 노래를 두 꼭지 쓴다. 이 가운데 한 꼭지를 흰천에 옮겨적어서 경기 파주로 띄운다.


  시골 읍내로 나오는 버스에서 멧자락을 돌아보고 여러 마을 사이를 지나는데 오동꽃에 개오동꽃에 국수나무꽃에 늦봉꽃이 한창이다. 그리고 뭉텅뭉텅 줄기와 가지가 잘린 나무, 풀죽임물을 뿌려대는 사람들 …….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 아니라 보고 싶은 빛을 헤아리며 작은책 《그래봤자 꼴랑 어른》(한주형, 글이, 2020)을 읽는다. 아이랑 주고받은 말을 담은 꾸러미가 싱그럽다. 아이한테서 배우고, 아이랑 살림짓는 길을 익히기에 비로소 어른이다.


  문득 생각해 본다. “한국에서 아름다운 책”이란 뭘까? 우리는 아름책은 모르거나 등지거나 멀리하면서 이름책에 사로잡힌 굴레이지 않을까? 아름책을 주머니 털어서 사읽고서 아름글을 여미는 삶길이 아닌, 이름책에 얽매여서 이름글을 똑같이 낳는 젯바퀴이지 않은가?


  저잣마실을 앞두고서 볕바른 자리를 찾아간다. 마음글을 두 자락 쓰고서 보금숲으로 돌아가자.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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