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그림·사진


 누구나 날마다 보고 들으며 겪은 그대로 글을 쓰든 말을 하든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할 뿐입니다. 누구도 더 빼어난 그림이라든지 한결 훌륭한 글이라든지 훨씬 아름다운 사진을 찍지 못합니다. 누구라도 이제까지 살아온 결을 고스란히 드러내어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나타냅니다. 잘 찍은 사진 한 장이란 없고 잘 쓴 글이란 없으며 잘 그린 그림이란 없습니다. 스스로 잘 살아왔으면 어떠한 글·그림·사진이든 잘 빚은 이야기입니다. 스스로 잘못 살아왔으면 어떠한 글·그림·사진이든 잘못되거나 엉뚱한 이야기입니다. 학교를 오래 다닌들 나아질 수 없는 글·그림·사진입니다. 거룩한 스승한테서 배운들 조금도 거룩해지거나 발돋움할 수 없는 글·그림·사진입니다. 나 스스로 내 삶을 일구어야 비로소 한 걸음씩 거듭나는 글·그림·사진입니다. 이런 글·그림·사진을 자꾸자꾸 책으로 배운다든지 학교에서 배운다든지 스승을 찾아 배운다든지 하려고 드니까 자꾸자꾸 엉터리 글·그림·사진만 쏟아집니다. (4343.9.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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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나이를 먹는다고 모두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나이를 먹었다고 모두 어르신으로 섬길 수 없습니다. 책을 읽었다고 모두 깨닫거나 배우지 않습니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더 잘 깨닫거나 더욱 많이 배우지 못합니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기에 굳이 우러를 만하다거나 대단하다고 바라볼 까닭이란 없습니다. (4343.9.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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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철에서 책읽기


 혼자 움직인다면 전철에서고 버스에서고 홀가분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아이랑 함께 움직이자면 조금도 홀가분하지 않는데다 책을 읽을 수 없다. 어쩌면, 아이하고 다닐 때에는 책이 부질없을는지 모르지. 아니, 부질없다 할 만하지. 아이하고 눈 마주치고 부대끼는 일이 바로 책읽기 아닌가. (4343.8.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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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에서 버스 타기


 집에서 시간표를 들여다본다.
 짐을 꾸린다.
 뛰노는 아이를 붙잡아 마당으로 나온다.
 시골길을 걷는다.
 푸른 물결 논을 바라본다.
 나비와 벌레한테 손을 흔든다.
 어느덧 시골버스역에 닿는다.
 기다린다.
 아이 어줌을 누인다.
 버스삯을 챙긴다.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드디어 버스가 보인다.
 손을 흔든다.
 아이를 안고 올라탄다.
 돈을 내고 창문 바람 쐬며 달린다.
 우리 식구한테는 택시 같은 시골버스이다.
 시외버스 타는 곳에 닿는다.
 버스표를 끊는다.
 언제쯤 서울 가는 버스가 들어오나 헤아리며 기다린다.
 시외버스역이자 구멍가게인 곳 아저씨가 우리를 부른다.
 표를 팔며 깜빡했는데 서울 가는 버스는
 우리가 오기 앞서 금세 지나갔단다.
 여느 때에는 10분이고 15분이고 늦게 오던 버스가
 오늘 따라 꼭 7분만 늦은 채 들어왔단다.
 1분 사이로 놓쳤다.
 표를 물리고 다른 표로 끊는다.
 성남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다리가 아프다. (4343.8.30.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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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36 : 빗소리를 못 담는 책

 꽤 잘나간다고 하는 사진쟁이 ㄱ님이 쓴 책 하나를 읽다가 속이 메스꺼웠습니다. 처음에는 속이 메스꺼웠으나, 이내 씁쓸했고, 곧이어 슬펐습니다. 이토록 모자라고 못난 생각과 삶으로 사진찍기를 돈벌이로 삼을 뿐 아니라, 당신 이름값을 드높이며 우쭐거리는 모습을 책으로 마주하자니, 더할 나위 없이 안쓰럽습니다. 꽤 잘나간다는 사진쟁이 ㄱ님은 가장 비싸다 하는 사진기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습니다. 사진을 이야기해야 할 책에서 당신이 갖춘 몇 천만 원 몇 억에 이르는 사진기 얘기를 불쑥불쑥 집어넣습니다. 부산을 사랑한다 하고 스스로 부산 토박이라 밝히지만, 정작 부산 옥상마을을 한 번조차 가 보지 않았으며 옥상마을 같은 데는 형편없이 지저분하리라는 생각을 품고 있기까지 합니다.

 사진쟁이 ㄱ님은 참 잘나갑니다. 사진쟁이 ㄱ님이 내놓은 책은 퍽 잘 팔립니다. 사진쟁이 ㄱ님이 찍은 사진은 꽤 멋들어진 작품이라고들 얘기합니다.

 사진쟁이 ㄱ님은 ‘세 박자 골고루 갖추어 누리’는 삶이니까 더없이 아름답거나 훌륭한 나날일까 궁금합니다. 사진쟁이 ㄱ님은 이름과 돈과 힘 세 박자를 신나게 누리는 요즈음 사진쟁이 보람을 마음껏 느끼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진쟁이 ㄱ님 이야기를 꺼냈으나, 사진쟁이 ㄱ님만 이러하지 않습니다. 사진쟁이이든 글쟁이이든 그림쟁이든 ‘돈·이름·힘’이라는 세 박자에서 홀가분한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사랑·믿음·나눔’이라는 세 박자이든 ‘착함·참됨·고움’이라는 세 박자이든 스스럼없이 어루만지거나 얼싸안는 따스한 사람은 참 드뭅니다.

 큰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 큰 비바람은 인천에 발을 디딘 다음 서울로 들어섰습니다. 큰 비바람은 인천 구석구석을 사납게 할퀴고 나서 서울을 모질게 할퀴었습니다. 텔레비전이 없는 제 살림살이인데, 모처럼 인천 어느 분 댁에 마실을 와서 큰 비바람 이야기를 함께 바라봅니다. 방송국에서는 ‘서울 소식 먼저 오래’ 보여준 다음 ‘서울보다 훨씬 크게 생채기가 났다는 인천 소식을 나중에 짤막히’ 보여줍니다. 그래요, 아직 인천에는 방송국 지사이든 지국이든 없습니다.

 비가 오며 빗소리를 냅니다. 바람이 불며 바람소리를 냅니다. 비가 오기 때문에 글쟁이는 글에 빗소리를 담습니다. 바람이 부니까 그림쟁이는 그림에 바람소리를 싣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기에 사진쟁이는 사진에 비바람을 찍어 넣습니다.

 다만, 한국땅 글쟁이와 그림쟁이와 사진쟁이 가운데 빗소리를 빗소리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껴안으며 글을 일구는 분은 몇 되지 않다고 느껴요. 그림쟁이나 사진쟁이 또한 어슷비슷합니다. 나라안에서 잘 팔린다는 책은 있으나, 세계명작으로 손꼽을 만한 작품은 잘 안 보입니다. 나라안에서 이름나고 돈벌이 잘하는 그림쟁이와 사진쟁이는 수두룩하지만, 세계명작으로 우러를 아름다운 그림이나 사진은 도무지 찾아보지 못합니다. 부디, 비오는 날에는 빗소리와 비내음와 비무늬와 비그림자와 비빛깔과 빗결을 글과 그림과 사진에 수수하고 투박하며 꾸밈없이 그려 낼 줄 아는 사진쟁이 ㄱ님으로 거듭나고 글쟁이 ㄱ님으로 태어나며 그림쟁이 ㄱ님으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부처님 이름으로 비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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