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사람들 - 양해남 사진집
양해남 지음 / 연장통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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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울 수 없는 사진을 배우는 길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10] 양해남, 《우리 동네 사람들》(연장통,2003)



 아이 사진을 찍을 때에는 내가 낳아서 기르는 아이이기 때문에 한결 사랑스러운 모습을 더욱 즐거이 찍지 않습니다. 내 아이가 아니더라도 아이마다 싱그럽고 맑은 기운을 듬뿍 나누어 주고 있으니, 이 기운을 고이 받으면서 사랑스러운 모습을 즐거이 찍을 수 있습니다. 나와 좀더 가까운 사람을 찍는다고 해서 좀더 부드럽거나 따스한 모습을 찍을 수는 없습니다. 나와 동떨어지거나 낯선 사람을 찍는다고 해서 그예 딱딱하거나 차가운 모습을 찍지는 않습니다.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 숨결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사진인 가운데, 사진기를 쥔 사람 마음결이 소담스레 스며드는 사진입니다.

 사진을 찍고자 하는 분들은 사진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사진을 즐긴다 할 때에는 스스로 좋아하는 사진을 스스로 찾아나서면서 스스로 느끼는 그대로 찍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진은 배울 수 없습니다. 사진을 배운다 할 때에는 스스로 사진을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를 살피지 못하는 가운데 내 눈길이 사진으로 기쁘게 가 닿는가 가 닿지 않는가조차 느끼지 못하면서 셀 수 없이 단추를 눌러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진찍기 일을 하는 분들은 으레 어느 분한테서 사진을 배웠다느니 어느 나라로 찾아가사 어느 대학교에서 사진을 배웠다느니 하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다시금 말씀드리지만 사진은 배울 수 없습니다. 아주 빼어난 스승을 섬기고 있다 한들, 아주 놀라운 나라밖 대학교를 다녔다 한들, 사진을 배웠다고 할 수 없습니다. 렘브란트 님한테서 그림을 배운 사람이란 없고, 반 고흐 님한테서 그림을 배운 사람이란 없습니다. 벨라스케스 님한테서 그림을 배운 사람이 있을까요. 이중섭 님이나 박수근 님한테서 그림을 배운 사람이 있는가요.

 우리한테 생각하는 힘이 있다면 어떤 대단한 분 그림을 들여다보았다든지 어느 훌륭한 분 그림 그리는 모습을 살폈다든지 하고만 살짝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붓을 들고 종이 앞에 섰다 하는 모습만이 그림그리기가 아닙니다. 종이 하나에 다 그려진 그림 하나만이 그림으로 일군 작품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진찍기를 제대로 알고 느끼며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진찍기란 무엇인가를 참다이 바라보고 살피며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얻은 사진 한 장에 어떤 삶이 담겨 있는가를 보듬고 껴안으며 어깨동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사진에는 내가 바라보며 찍은 모습이 담기지 않습니다. 내 사진에는 내가 살아가며 부대낀 이야기를 담습니다. 내 사진에는 고운 얼굴이나 미운 얼굴이 담기지 않습니다. 나와 사귀고 있는 한 사람 삶을 얼굴에 빗대어 담습니다. 내 사진에는 풍경이 담기지 않습니다. 내 사진에는 사람들이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터전을 담습니다.

 내 이야기를 담는 사진이기에 누구한테서 배울 수 없는 사진이지만, 누구를 가르칠 수도 없는 사진입니다. 나는 내 이야기를 담고 당신은 당신 이야기를 담는 사진입니다. 나는 내 이야기를 글로 쓰고 당신은 당신 이야기를 글로 씁니다. 나는 내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며 당신은 당신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립니다.

 다만 한 가지 가르치거나 배울 수 있다면 사진기라는 기계를 다루는 솜씨입니다. 필터를 어떻게 건사한다든지 손수 인화하고 현상하는 솜씨라든지 어떤 세발이를 쓰면 알맞을까 하는 대목은 배우거나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진기를 골라들고 어떤 렌즈를 끼워서 쓰느냐마저 따로 가르치거나 배울 수 없습니다. 스스로 다루어 보지 않은 기계를 누군가 알려준다고 해서 섣불리 쓸 수 없습니다. 나 스스로 지내 보아야 살 만한 보금자리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괜찮은 아파트’라는 광고가 대문짝하게 나온다 해서 이러한 집이 나한테 살 만한 보금자리가 되지 않습니다. 잘생기거나 이름난 연예인이 광고하는 사진기가 내 사진삶에 걸맞을 기계가 되지 않습니다. 250킬로미터까지 달릴 수 있는 자가용을 뽑아야 내가 일터와 집을 오가는 데에 알뜰살뜰 굴릴 수 있을까요. 한 달에 천만 원쯤은 벌어야 뭔가 일다운 일을 하는 셈이라 할 만한지요.

 이리하여 사진찍기를 비롯해서 우리가 하루하루 꾸리는 삶 모든 자리 이야기는 어느 한 가지조차 누가 가르칠 수 없고, 누구한테서 배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사진기를 쥐기 앞서 ‘사진찍기는 혼자서 뒹굴며 즐기는 삶’임을 헤아려야 합니다. 나 스스로 좋아하는 삶이요 나 스스로 즐기는 사진찍기를 이어가고 있다면, 이때에 비로소 사진책 《우리 동네 사람들》(연장통,2003)에 담긴 멋과 맛을 조촐히 느낄 만합니다. 누구나 펼칠 수 있고 누구라도 살 수 있는 사진책 하나인 《우리 동네 사람들》이지만, 아무나 읽어내거나 아무라도 톺아볼 수 없는 사진책 하나인 《우리 동네 사람들》입니다.

 사진책 《우리 동네 사람들》을 일군 양해남 님은 충청남도 금산에서 태어나 자라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사진책에는 금산사람 삶을 금산사람 눈길로 금산사람답게 담아낸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그런데 책이름은 “금산 마을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이라고 붙입니다.

 우리한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운이 조금 남아 있다면, 거듭 생각을 기울일 대목입니다. 최민식 님은 “사람”을 찍었지 “부산사람”을 찍지 않았습니다. 김기찬 님은 “골목길”을 찍었지 “서울골목길”을 찍지 않았습니다. 양해남 님은 당신 삶터에서 금산사람을 찍었으나, “금산사람”이라기보다 “우리 동네 사람”을 찍었습니다.

 양해남 님으로서는 굳이 “금산 마을 사람들” 같은 이름을 붙일 까닭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동네가 금산이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우리 동네에서 살아가며 우리 동네 이야기를 엮었으니까요. 먼 데서 구경 오듯 드나들며 금산을 찍은 사진책이 아닙니다. 고향을 떠나 있다가 모처럼 찾아와서 휘리릭 둘러보며 금산을 담은 사진책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금산에서 부대끼면서 스스럼없이 마주한 사람들을 사진이라는 징검다리로 실어낸 사진책입니다.

 우리는 사진을 배울 수 없음을 깨닫지 못하는 채 사진을 찍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아주 놀랍도록 아름다우며 몹시 훌륭하도록 살가운 이야기를 내 나름대로 내 사진에 깃들여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진을 누구한테서 배울 수 없음을 깨닫고 있다면 다른 이 흉내를 낸다든지 다른 이 솜씨를 베낀다든지 다른 이 사진길을 따라 걷는다든지 하지 않습니다. ‘걸작’이나 ‘명작’을 노릴 까닭이 없을 뿐더러, ‘걸작’이나 ‘명작’이라는 사진이 어떻게 태어나고 왜 이러한 이름이 붙는가를 옳게 헤아립니다. 우리 집 식구들 삶자락을 사진으로 담기만 하여도 얼마나 놀랍도록 아름다운데요. 내 동무와 이웃 삶결을 찬찬히 살피며 나날이 한두 장씩 꾸준히 담아내 본다면 이 사진이 얼마나 훌륭하도록 살가운데요. 아니, 우리는 내 모습을 나 스스로 찍으며 새삼스러운 이야기를 엮을 수 있습니다. 내가 살아가며 마주한 사람들이라든지 내가 돌아다니며 만난 모습이라든지 한결같이 알뜰살뜰 사진으로 담으면서 온누리에 꼭 하나만 있는 싱그럽고 씩씩하며 돋보이는 사진열매 하나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러러 마지 않는 ‘온누리에 손꼽히는 사진쟁이’란 바로 ‘다른 사람 사진길을 뒤따라 걷던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 스스로 느끼며 좋아하고 사랑할 당신 삶을 힘차고 신나게 걸어가며 당신 사진길이 잘났든 못났든 알차든 모자라든 스스럼없이 일군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사진책 《우리 동네 사람들》이 잘 읽히려면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건 다른 나라에서건 이만 한 사진책 하나 살뜰히 읽으며 웃고 울며 기뻐하며 슬퍼할 만한 사람을 사귈 수 있자면 앞으로 한참 멀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나라에서 사진길을 걸어가는 동안에는 이 사진책 하나 푼푼하게 즐길 사람을 사귈 수 없을는지 모르겠습니다. (4343.8.14.흙.ㅎㄲㅅㄱ)


― 우리 동네 사람들(양해남 사진,연장통,2003.11.27./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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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글쓰기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사랑을 글로 담는다. 사랑을 하고 있지 않은 사람은 바로 사랑을 안 하는 내 삶을 글로 담는다. 사랑을 하고 싶으면 말이 아닌 몸으로 하면 된다. 꿈으로가 아닌 삶으로 하면 된다. 사랑은 맑고 따스한 눈빛으로도 나눌 수 있는데, 숱한 몸짓과 목소리로도 사랑을 못할 때가 있다. 사랑은 손길 한 번으로도 오갈 수 있는데, 숱한 돈과 호텔과 자동차와 아파트로도 못할 때가 있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내 삶을 즐기는 사람이고, 내 삶을 즐기는 사람은 굳이 글을 쓸 까닭이 없으나 글쓰기 또한 마음껏 즐긴다. (4343.8.13.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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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럼쟁이 해마 과학 그림동화 29
크리스 버터워스 지음, 존 로렌스 그림, 이강환 옮김 / 비룡소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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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결 아름다운 번역으로 만나고 싶어서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3] 크리스 버터워스·존 로렌스, 《부끄럼쟁이 해마》



 좋은 어린이책을 쓰거나 엮는 이들은 좋은 넋으로 좋은 삶을 일구고 있다고 믿습니다. 나라안에서 살아가든 나라밖에서 살아가든 저마다 다 다른 자리에서 좋은 얼을 빛내며 좋은 사람을 사귀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다만, 좋다고 하는 삶이나 넋이란 모두 똑같을 수 없습니다. 비슷할 수도 없습니다. 이 그림책을 일군 사람은 이러한 테두리에서 좋고, 저 이야기책을 이룬 사람은 저러한 틀에서 좋습니다.

 그런데 번역책을 마주할 때에는 느낌이나 생각을 다르게 품습니다. 틀림없이 좋은 어린이책이요 좋은 그림책이며 좋은 이야기책인데, 이 좋은 책에 담긴 말글은 하나도 좋지 않을 때에는 다르게 생각할밖에 없습니다. 왜 이토록 좋은 책에 좋은 넋을 실은 좋은 말로 이야기를 이루어 내지 못하지?

 번역책이라 해서 말글이 더 나쁘거나 창작책이라 해서 말글이 더 낫지는 않습니다. 번역이든 창작이든, 책을 다루는 사람 매무새와 숨결에 따라 말글이 크게 바뀝니다. 글월이 몇 줄 깃들지 않은 그림책이라 하더라도 틀림없이 글월이 깃들기 마련인데, 글월이 얼마 없다 해서 글을 허투루 쓰거나 다룰 수 없습니다. 글월로 문학을 이루어 가는 이야기책이라고 해서 글을 한결 살뜰히 쓰거나 다루지는 않습니다.

 나라밖 그림책 《부끄럼쟁이 해마》를 보다가 그만 책에 이런저런 자국을 남깁니다. 그림책이나 만화책을 펼쳐 볼 때에는 책에 아무런 손자국을 남기지 않아 버릇하는데, 이 그림책 《부끄럼쟁이 해마》만큼은 어찌할 수 없어서 곳곳에 볼펜으로 죽죽 긋고 새로운 말을 집어넣습니다.

[7쪽] 따뜻한 바다 속 물결치는 해초 속을 보세요.
→ 따뜻한 바다 속 물결치는 바다풀 사이를 보세요.
[7쪽] 과연 누구일까요?
→ 아, 누구일까요? / 응, 누구일까요?
[8쪽] 해마의 머리는 말을 닮았어요.
→ 해마는 머리가 말을 닮았어요.
[8쪽] 수컷의 배에는 캥거루처럼
→ 수컷은 배에 캥거루처럼
[8쪽] 해마 역시 물고기랍니다.
→ 해마 또한 물고기랍니다.
[8쪽] 해마의 학명은 히포캄푸스입니다.
→ 해마는 학명이 히포캄푸스입니다.


 우리 나라는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뒤죽박죽입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와 중·고등학교 교과서와 여느 어른 책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다릅니다. 출판사마다 어린이책 맞춤법을 달리 씁니다. 어른 책을 내는 출판사 또한 저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아이들한테 책을 사서 읽히는 어버이는 출판사마다 살짝살짝 다른 맞춤법과 띄어쓰기로 된 책을 읽고 읽힙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초등학생 때하고는 다른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만납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생이 될 때에는 또다른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마주합니다. 더욱이, 오늘날은 초등학교에 들기 앞서부터 영어를 신나게 가르칩니다. 중고등학생 때에는 영어를 우리 말글보다 훨씬 잘하도록 윽박지르듯이 가르칩니다. 대학생 때에는 아예 영어로만 가르치는 곳이 있습니다.

 번역하는 일을 맡은 사람이 꽤 많은 우리 나라입니다. 번역을 가르치는 학교나 강좌가 제법 많은 이 나라입니다. 그런데, 번역을 가르치는 학교나 강좌에서 우리 말글을 옳고 바르게 가르치는 모습은 거의 찾을 수 없습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담는 우리 말넋과 우리 글얼을 깊이 헤아리며 살피는 분들을 찾아보기란 대단히 힘듭니다.

[10쪽] 하지만 아주 영리해서 배고픈 도미가 간식거리를 찾아 다가와도
→ 그렇지만 아주 똑똑해서 배고픈 도미가 먹을거리를 찾아 다가와도
[10쪽] 우선 해마는
→ 먼저 해마는
[10쪽] 지금은 해마가 보이죠?
→ 이제는 해마가 보이죠?
[10쪽] 그런 다음 몸 색깔을 감쪽같이 바꾼답니다.
→ 그런 다음 몸빛을 감쪽같이 바꾼답니다.
[10쪽] 해마가 주변 환경에 따라
→ 해마가 둘레 모습에 따라
[11쪽] 피부색을 바꾸어 숨는 것을 의태라고 부릅니다.
→ 살빛을 바꾸어 숨을 때에 의태라고 합니다.
[11쪽] 해마의 몸은 딱딱한 가죽으로 덮여 있어요.
→ 해마는 몸이 딱딱한 가죽으로 덮여 있어요.


 모든 사람이 우리 말글을 옳고 바르게 잘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우리 말글을 옳고 바르게 잘하도록 가르치지 못합니다. 아니, 이 나라 국어국문학과라든지 문예창작학과조차 우리 말글이 무엇인가를 밝고 알차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국어학자이든 국어교사이든 우리 말글을 어떤 모습으로 일구거나 보듬어야 아름다운가를 돌아보지 못합니다. 어버이이든 동네 어른이든 지식인이든 우리 스스로 알맞게 쓰면서 우리 아이한테 알뜰살뜰 물려줄 말글을 찬찬히 어루만지지 않습니다.

 ‘우리 말글 바로쓰기’라고 하지만, 정작 ‘바로쓰기’가 무엇이고 어떠한 말을 어느 만큼 바르게 써야 하는가를 깨닫는 사람은 몹시 드뭅니다. 우리 말에 한자말이 어느 만큼 자리하고 있으며, 우리 말에 자리하고 있는 한자말이란 어떤 빛깔이요 어느 푼수이고 왜 이렇게 있는가를 제대로 곱씹는 사람 또한 아주 드뭅니다. 꼭 같은 일을 놓고 토박이말로도 이르고 한자말로도 이르는 모습을 얄궂게 느끼며, 우리가 걸어갈 말길을 참다이 느끼는 사람이란 대단히 드뭅니다.

 한자말이고 영어이고를 떠나, ‘하지만’이나 ‘해서’처럼 쓰는 말투가 옳지 않음을 헤아리며 바로잡으려는 이란 참 드뭅니다. ‘그러하지만(그렇지만)’이나 ‘이리해서(그리해서/저리해서)’라 적어야 올바르고 알맞음을 깨우치는 사람이란 퍽 드뭅니다. 무엇보다, 처음부터 ‘몸빛’이라 말하지 못하고 ‘몸 색깔’이라 말하는 아쉬운 대목을 읽지 못합니다. “의태라고 부릅니다”처럼 적바림하는 말투가 잘못임은 여러 곳에서 짚어 주고 있으나, 여러 곳에서 짚고 있음을 제대로 살피는 사람이 매우 드뭅니다. 토씨 ‘-의’를 넣으려면 어느 자리에 넣어야 하는지를 느낀다든지, 이런 토씨 ‘-의’는 한 마디조차 안 쓸 때에 한결 살가우며 매끄러운 우리 말글로 뿌리내림을 헤아리는 사람이란 더없이 드뭅니다.

[12쪽] 천천히 헤엄쳐 나와 짝을 찾기 시작해요.
→ 천천히 헤엄쳐 나와 짝을 찾아요.
[12쪽] 색이 같아질 때까지 몸 색깔을 바꿔요.
→ 빛깔이 같아질 때까지 몸빛을 바꿔요.
[12쪽] 죽을 때까지 함께 지내는 경우가 많아요.
→ 죽을 때까지 함께 지내곤 해요.
[13쪽] 짝짓기를 하기 전 일주일 정도 함께 어울려 다니며 친해집니다.
→ 짝짓기를 하기 앞서 이레쯤 함께 어울려 다니며 가까워집니다.
[13쪽] 수컷 해마가 갖고 있는 씨앗인 정자와 암컷 해마의 난자가
→ 수컷 해마한테 있는 씨앗인 정자와 암컷 해마한테 있는 난자가
[13쪽] 수컷의 아기주머니 속에서 만나
→ 수컷한테 있는 아기주머니 속에서 만나


 좋은 어린이책뿐 아니라 좋은 어른책을 읽을 때에도 좋은 선물을 받는다고 느낍니다. 좋은 줄거리로 내 삶을 좋은 길로 가다듬으며 좋은 말씀을 얻으니 내 하루하루가 그지없이 알찰 수 있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좋은 어린이책이든 어른책이든 좋은 말이나 좋은 글로 갈무리된 책은 몇 되지 않습니다. 어느 한 구석 빈틈 하나 없이 알차며 싱그럽기는 어려울 테지만, 지나치게 많은 대목이 뒤틀리거나 비틀려 있습니다. 글을 쓴 사람이든 글을 옮긴 사람이든 책을 엮은 사람이든 이와 같이 뒤틀리거나 비틀린 말글을 깨닫지 못합니다. 좋은 책 하나 다루며 느낌글을 신문이나 잡지나 방송에 싣는 분들 또한 좋은 책이 베푸는 좋은 말로 느낌글을 일구지 못합니다.

 어린 나날부터 좋은 말을 익히 듣지 못한 탓일는지 궁금하고, 나이든 뒤에도 좋은 말을 기쁘게 들을 수 없는 터전에서 살아가기 때문일는지 궁금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말을 하고 글을 쓰지만, 좋은 말과 좋은 글이 되도록 가다듬는 길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일까 궁금합니다.

[14쪽] 수컷 해마의 주머니 속은 산소와 영양분이 충분해요.
→ 수컷 해마한테 있는 주머니에는 산소와 영양분이 넉넉해요.
[14쪽] 수컷이 임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물고기랍니다.
→ 수컷이 새끼를 밸 수 있는 하나뿐인 물고기랍니다.
[15쪽] 주머니 안에서 알들을 안전하게 키웁니다.
→ 주머니에서 알들을 알뜰살뜰 키웁니다.
[15쪽] 꼬리는 원숭이를 닮았을 거예요.
→ 꼬리는 원숭이를 닮았겠지요.


 좋은 그림책이라고 느끼는 《부끄럼쟁이 해마》를 보면서 자꾸자꾸 옮김 말투 때문에 걸리적거립니다. 웬만해서는 옮김 말투이든 창작 말투이든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줄거리를 받아들이지만, 이 그림책 《부끄럼쟁이 해마》는 모든 글월이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져 있기 때문에 도무지 그림책 줄거리로 빠져들지 못합니다.

 참말 이렇게까지 옮긴이는 우리 말글을 살피기 힘들었을까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이다지도 옮긴이는 아이들한테 좋은 책뿐 아니라 좋은 넋과 좋은 말을 골고루 베풀어 주려는 마음으로 거듭나기 어려웠는가 모르겠습니다.

 우리 아이가 읽을 책임을 생각하고, 우리 아이 동무가 함께 읽을 책임을 생각하며, 우리 아이가 커서 사랑을 하여 아이를 낳을 때에 먼 뒷날 또다른 아이들이 즐거이 읽을 책임을 생각한다면 그림책 하나에 담는 말글을 훨씬 다르게 보듬을 수 있을 텐데요.

[16쪽] 몇 주 후
→ 몇 주 뒤
[16쪽] 밤낮으로 열심히
→ 밤낮으로 바지런히 / 밤낮으로 힘껏
[16쪽] 수백 마리의 새끼를 낳는답니다.
→ 수백 마리 새끼를 낳는답니다. / 새끼를 수백 마리 낳는답니다.
[17쪽] 짝짓기를 한 후 2주에서 6주 정도 후에 새끼를 낳아요.
→ 짝짓기를 한 다음 두 주에서 여섯 주쯤 뒤에 새끼를 낳아요.


 참삶, 참사람, 참사랑, 참책, 참말, 참글, 참넋, 참얼로 고이 어우러지도록 우리 마음을 한 번 더 알뜰히 쏟아 줄 수 있으면 기쁘겠습니다. 더 많은 좋은 어린이책을 내놓아도 나쁘지 않으나, 한 권 내놓는 그림책이든 이야기책이든 가없이 고우며 믿음직하고 사랑스러운 어린이책으로 자리매기도록 마음을 바칠 수 있으면 반갑겠습니다. 천 가지 만 가지 그림책으로 우리 아이들한테 골고루 기쁨을 베풀어 줄 수 있을 텐데, 천 가지가 아닌 열 가지라도 괜찮고 만 가지가 아닌 백 가지여도 즐겁습니다. 다문 한 권이 있을지라도 이 한 권으로 우리 아이들은 신나고 즐거우며 멋진 삶을 제 나름대로 가꿀 수 있어요.

[18쪽] 아빠 해마의 주위를 헤엄치고 있어요.
→ 아빠 해마 둘레를 헤엄치고 있어요.
[18쪽] 그 모습이 꼭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 같아요.
→ 이 모습이 꼭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해요.
[18쪽] 하지만 일단 아빠의 몸에서 떨어지면
→ 그러나 한번 아빠 몸에서 떨어지면
[23쪽] 폭풍우가 불거나 배가 지나가면서 파도를 일으켜도
→ 비바람이 몰아치거나 배가 지나가면서 큰 물결을 일으켜도
[24쪽] 여기가 해마의 집인가 봐요.
→ 여기가 해마네 집인가 봐요.
[24쪽] 언제나 자기의 보금자리를 찾아
→ 언제나 제 보금자리를 찾아


 옮김 말투 이야기로만 지새웠습니다만, 그림책 《부끄럼쟁이 해마》는 몹시 귀엽고 어여쁩니다. 여느 사람인 우리들로서는 이 땅에서 바다 깊이 들어가 해마하고 사귀거나 놀기는 힘든데, 이 그림책 하나를 펼치면서 우리로서는 쉽사리 마주하기 어려운 바닷마을 동무인 해마하고 살가이 지낼 수 있습니다.

 바닷마을 동무인 해마하고 살가이 사귀는 가운데, 우리들은 우리 둘레에서 해마와 매한가지로 외로운 듯 보이지만 하나도 외롭지 않으면서 제 삶을 곱다시 가꾸는 좋은 벗님을 하나둘 알아채거나 어깨동무할 수 있습니다. 반짝이는 눈이 돋보인다는 해마마냥, 우리 둘레에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맑고 밝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동무가 있잖아요. 다들 반짝이는 눈빛보다는 잘생긴 얼굴이나 잘 빠진 몸매에 눈길이 홀려서 그렇지요. 또 반짝이는 눈빛이 아닌 번쩍이는 금이나 돈에 눈이 멀어서 그렇지요.

[25쪽] 보금자리 주위에서만 돌아다녀요.
→ 보금자리 언저리에서만 돌아다녀요.
[26쪽] 평생 바위에 붙어서
→ 언제까지나 바위에 붙어서
[26쪽] 6개월이 지나면
→ 여섯 달이 지나면
[27쪽] 산호초 속에 숨은 건 누구일까요?
→ 산호초 사이에는 누가 숨어 있을까요?
[29쪽] 멍한 듯 반짝이는 무척 눈이 인상적이에요.
→ 멍한 듯 반짝이는 눈이 무척 돋보여요.


 《부끄럼쟁이 해마》를 아주 어린 아이한테 읽히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어린 아이를 두고 있는 어버이라면 이 그림책을 일찌감치 장만한 다음 어버이 스스로 자주 꺼내들어 펼치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버이 스스로 어버이 둘레 좋은 벗님을 헤아리고, 어버이 스스로 다른 동무한테 살가우며 고운 동무로 지낼 수 있는 고운 삶을 일구겠다는 다짐을 끌어낼 수 있으면 참 고마운 그림책이 아니랴 싶습니다.

 좋은 그림책은 아이한테는 아이 나름대로 새로 일구는 삶에 빛이 됩니다. 좋은 그림책은 이 그림책을 장만하여 아이한테 읽히는 어버이한테 앞으로 주어진 나날을 한결 아름다우며 튼튼하고 씩씩하게 일구는 기운을 선사합니다. 이렇기 때문에 이 그림책 《부끄럼쟁이 해마》를 보면서 꽤나 서운하고 슬픕니다. 왜 이렇게 한결 구지레한 옮김 말투로 책을 어지럽혀야 했을까요. 옮긴이와 출판사 엮은이 모두 우리 삶과 책과 말과 넋을 다시금 돌아보며 새삼스레 다독일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좋은 넋을 좋은 말에 담아 좋은 책으로 일구는 좋은 삶을 사랑하는 좋은 책마을을 꿈꿉니다. (4343.8.12.나무.ㅎㄲㅅㄱ)


― 부끄럼쟁이 해마 (크리스 버터워스 글·존 로렌스 그림,비룡소,2007.5.25./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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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보는 눈 132 : 헌책방에 내놓지 못한 책

 선물받은 그림책 가운데 굳이 우리 집에 놓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은 책을 챙겨 헌책방에 가져다줄 생각이었습니다. 여태까지 늘 이렇게 해 왔습니다. 우리 식구가 다른 분들한테 책을 선물로 드릴 때에 이 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헌책방에 내놓아 주십사 하는 말씀을 덧붙입니다. 우리 또한 우리한테 선물로 책을 주시는 분들 마음은 고맙게 받고 책은 헌책방에 갖다주곤 합니다. 이제는 우리한테 책을 선물로 주시는 분들이 먼저 “마음에 들지 않는 책이라면 헌책방에 내놓으셔도 돼요.” 하고 말씀합니다.

 헌책방으로 챙겨 가기 앞서 아이 어머니보고 한 번 더 살펴보라고 이야기합니다. 아이 어머니는 그림책들을 가만히 넘겨 보더니 이 책은 이런 까닭 때문에 더 보고 싶고, 저 책은 저런 까닭 때문에 그냥 두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리하여 바깥마실을 하며 챙기려던 ‘헌책방에 내놓으려던 책’은 한 권도 없고 맙니다. 헌책방으로 가져갈 책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침을 먹기 앞서 뒷간에 가서 볼일을 보며 생각에 잠깁니다. 아이 어머니 말이 아니어도 저부터 아이 어머니처럼 생각합니다. 처음 선물을 받을 때에는 ‘참, 이 출판사는 무슨 마음으로 이런 그림책을 버젓이 내놓았을까? 게다가 이 그림책은 이렇게 형편없이 그렸는데 무슨 베스트셀러가 되어 수십만 권이나 팔린다고 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옳지 못한 그림에 재주만 잔뜩 부린 그림인데 여느 사람들은 이러한 그림을 ‘귀엽다’고 여기거나 ‘재미있다’고 느끼는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참 잘못 그리거나 엉터리로 그린 그림이라 할지라도 아이들은 이 잘못 그린 그림을 보면서도 재미있어 할 수 있습니다. 엉성궂게 쓴 글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얼마든지 마음이 뭉클하거나 가슴이 촉촉하게 젖어들 수 있으니까요. 맞춤법이 틀리거나 띄어쓰기가 어긋난 글이라 하더라도 줄거리가 아름답다면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맞아들일 수 있어요.

 두 번 세 번 네 번 들여다보면서 ‘엉성궂은 그림’이 담긴 책들이 매우 딱하고 불쌍하다가는 이내 슬프고 안타깝습니다. 곧이어 이와 같은 그림들일수록 더 따숩고 너그러이 받아들이면서 토닥토닥 어루만져야 하지 않느냐 싶기까지 합니다. 그러고 보면 예부터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고 했습니다. 참말 고운 아이한테 떡을 하나 더 주지 않고 미운 아이한테 떡을 하나 더 줍니다. 고운 아이는 떡을 굳이 더 주지 않아도 고운 결을 착하고 참되게 이어갑니다. 미운 아이는 떡 하나 더 낼름 받아먹어도 고마움을 느끼지 못할 뿐더러 더 미운 짓을 하기 일쑤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예부터 미운 아이를 더 귀여워 하거나 아끼면서 보듬어 왔습니다. 굳이 어떤 종교라든지 믿음이라는 틀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뒷간에서 볼일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옵니다. 아이와 함께 밥을 먹고 아이를 씻기고 새 옷을 입힙니다. 빨래한 아이 옷을 햇볕 따사로운 마당가에 널어 놓습니다. 아이가 한 달 두 달 커지면서 아이 옷가지를 빨고 짤 때에 힘이 더 듭니다. 우리 아이는 앞으로 어떤 책을 어떤 마음결로 바라보며 어떤 마음밭을 일굴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4343.8.9.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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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끼와 글쓰기


 저녁을 먹고 바람 쐬러 나오니, 아이가 “손!” 하면서 아빠를 이끈다. 웃마을에서 키우는 토끼집을 보러 가자며 “꼬꼬! 꼬꼬!” 한다. 웃마을에 이를 무렵 아빠 손을 놓더니 “아빠! 안아!” 하며 안아 달란다. 아이를 안으니 손가락으로 더 위쪽을 가리키며 “저기! 저기!” 한다. “어머니 안 보고 싶어?” 하니까, “저기! 저기!” 하며 짐승우리 있는 곳으로 가잔다. 아빠는 자꾸 모기한테 물리니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인데. 이러구러 웃마을 짐승우리 있는 데로 왔더니 입으로는 “꼬꼬!” 했으면서 멧돼지 앞에 한동안 서서 눈을 맞추고 있다. 그러더니 이내 토끼우리로 발걸음을 돌린다. 이제서야 토끼를 보겠다는군. 토끼우리는 살짝 비알진 데에 있어 아이가 혼자 올라가지 못한다. 다시금 “아빠! 손!” 하고 외친다. 아이 손을 잡는다. 아이는 이제 아빠 손을 잡기만 해도 비알진 토끼우리 앞을 잘 타고 올라가서 토끼우리 쇠그물을 붙잡는다. 토끼우리 쇠그물을 한손으로 붙잡은 채 토끼우리 안쪽을 들여다보며 “토끼야! 토끼야!” 하고 부른다. 그러더니 우리 앞에 떨구어져 있는 강아지풀 줄기를 주워서 토끼한테 먹인다. “먹어! 먹어!” 꽤 오래 이렇게 놀고 있자니, 모기가 더 많이 달라붙는다. 아이한테 이제 내려가자고 하지만, “안 가! 안 가!” 한다. 그래, 더 놀아라. 더 놀자. 아이 뒤에 서서 부채질을 해 주며 모기를 쫓는다. 갑자기 아이가 운다. “아빠! 아앙!” 가만히 들여다보니, 토끼한테 먹이를 주다가 그만 토끼가 아이 손가락을 깨물었다. 피가 몽글몽글 솟는다. “괜찮아, 괜찮아. 자, 얼른 내려가서 손 고쳐 줄게.” 아이를 안고 내려서는 길, 아이는 토끼한테 물린 손은 손가락을 삐죽 내밀고, 다른 한손으로는 토끼우리 쪽으로 손을 흔든다. 울면서도 손을 흔들며 “안녕! 안녕!” 하고 외친다. (4343.8.8.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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