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 가자고요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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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기록때문에 역사가 살아 숨쉰다. 미처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작가가 써낸 글 속에서 경험하게 된다. 한 나라의 문화 또한 그렇다. 우리가 무심코 행동해왔던 것들을 다른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게 하나의 문화가 되듯, 누군가의 기록은 필요하다. 그게 부모님의 일일지라도, 그게 자기 고향의 이야기일지라도.

 

고향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다. 마치 여행 에세이처럼 여겨진 제목때문에 읽기 시작했던 책이 하나의 에세이처럼 여겨진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 속 인물들은 굳이 특별한 인물들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우리 부모님들이라고 해야 옳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며 자식들 뒷바라지를 했던 우리의 부모. 자식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남은 건 노인들 밖에 없는 시골. 이곳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이야기들이 하나의 소설집으로 엮였다.

 

작가의 말에서도 언급했지만, 작가는 유달리 자신의 고향집 이야기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소설로 남겨 고향은 흔적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깃들어 있었다. 예부터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들, 달인의 경지에 가까운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많은 사람들을 이끄는 부녀회장이 미워 질투로 인해 욕설을 내뱉는 이야기들이 우리 주변 사람들과 닮았다. 정확히는 시골의 풍경이 그려졌다. 오늘을 사는 시골의 늙은 사람들. 한 마을의 이웃 숟가락 숫자까지도 꿸 수 있다는 시골 사람들의 인심과 과도한 관심이 불러온 이야기들이었다.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는 결국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데, 유달리 자기 가족의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는 하나의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은 작가의 가족에 대한 애정이 엿보였다. 이런 소소한 기록과 이야기들이 뻔한 이야기라 싫은 사람들도 있겠으나 나는 재미있게 읽혔다. 시어머니가 한번씩 말씀하시던 시골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글로 만나는 느낌이었다. 이야기하지 않고는 못배길 그런 이야기들의 집합이었다.

 

 

바쁜 모내기 철이 오기 전 시골 사람들은 여행을 다닌다. 그렇게 해서 간 여행이 도시의 어머니들 못지 않다. 소설의 표제작이기도 한  「놀러 가자고요」는 소설의 많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노인회장 김사또의 아내 오지랖 여사가 마을 사람들에게 여행을 독려하는 이야기다. 방송을 해버리면 간단할텐데 이러저러한 사유로 거절할 사람들을 줄이고자 마을 사람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한다. 어떻게든 30명을 채우고자 분투하는 것인데 놀러 못가겠다는 이들의 사연이 다 제각각이다.

 

평소 남편에게 꼼짝 못하는 오지랖 여사의 기지가 빛난 부분이 있는데, 돼지 잡는 곳에서 꼬박 몇 시간을 기다려 자식들을 위해 갈비를 사왔는데, 오지랖 여사가 그만 태워먹었다. 순간의 기지로 며느리에게 고기를 사오라고 시켜 가족들이 맛나게 먹는데 이 또한 김사또가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 주었지 않았나 싶다.  또한 아들과 며느리에게 친척을 대동하고 온 방문판매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만병통치 욕조기를 사고 싶은 어머니의 속내, 금방이라도 카드를 긁어 어머니에게 사주고 싶은 아들. 그러나 400백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사줄 수 없다고 따지는 며느리의 속내를 밝힌 이야기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심각할 이야기들인데, 김종광의 글로 읽고 있노라면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인생의 많은 부분을 살아온 부모님들의 이야기와 자식들의 이야기. 농촌에 청년회라고 해봤자 50대가 태반인 곳에서 울력을 부치는 애환들까지 위트있게 읽힌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와 동네의 모든 이야기들을 들고 사는 어머니들의 입담이 퍽 재미있었다.

 

책을 읽으며 느낀 게 왜 김종광이라는 작가의 소설을 여태 읽지 못했는가 이다. 물론 익숙한 이야기를 하는 것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작가의 소설이 궁금해졌다. 작가의 출간 작품 중 최근에 출간한 작품이 『조선 통신사』다. 전자책으로 구매한 것 같아 살펴봤더니 구매하겠다고 생각만 했지 아직 미구매 상태였다. 그 책 부터 시작해봐야겠다. 이번 소설집에서 느꼈던 맛깔스러운 문장을 그 소설에서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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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4 13: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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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4 17: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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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4 13: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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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이름은
조남주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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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텔레비젼에서 방영된 드라마가 있었다. 손예진과 정해인이라는 배우가 친구 동생, 누나 친구로 연애를 하는데 꽁냥꽁냥대는 그들의 연애가 예뻐 본방사수하며 챙겨 본 드라마였다. 드라마에서는 아주 현실의 연애를 했는데, 직장 생활도 그 중의 하나였다. 회사의 회식 날 할 수 없이 부장이나 이사 앞에서 탬버린을 치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불러서 오죽했으면 별명도 윤탬버린이었을까. 그런데 남자 친구를 사귀게 되면서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의미로 더이상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과도한 성추행으로 문제시되자 그녀를 응원하는 사람은 한두 명 일뿐, 모두들 한 발 물러서서 윤진아에 대해 수군댔었다. 다른 직원들의 행동이 이해할 수 없었지만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들임엔 틀림없다.

 

소설의 첫 번째 내용이 이와 같은 일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과도한 접촉, 성적 농담, 만나자는 전화. 더이상 두고 볼 수 없어 남자인 팀장에게 상황을 알렸지만 제대로 조사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녀를 나무랐다. 공황장애를 앓으면서까지 여자 주인공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 SNS에 적극적으로 알렸으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차가웠다. 조용히 덮고 넘어간 두 번째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피해자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20페이지)라고 다짐했다. 아마 이 부분을 읽으면서 부터 이 책에 대한 호감도가 쑥 올라갔다고 봐야겠다. 첫 번째 사람이 조용히 넘어갔기 때문에 과장은 똑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자신 또한 조용히 덮고 넘어갔다면 다음 사람에게 똑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소설 속 소진처럼, 드라마속 윤진아처럼 과감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작가는 육십여 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소설 속에 녹아냈다. 직장인으로서 애환을, 누군가의 딸로, 며느리로, 아내로 산다는 것의 애환을 들려주었다.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 자신 혹은 주변 사람들이 겪는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82년생 김지영』의 또다른 변주곡이다.

 

 

여성 직장인으로서 성희롱을 고발하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공기업 퇴직 노동자, 학교 급식실의 조리사로서 정규직 전환을 위해 시위하는 여성이 있는가 하면 이혼을 앞두고 있는 여성, 결혼을 앞두고 이혼을 준비 중인 언니를 바라보는 심정, 이땅의 엄마로서 손녀들을 키우는 애환 등을 담았다.

 

젊어서는 자신의 아이를 키우느라 바빴고, 나이가 들어서는 며느리의 아이, 딸의 아이를 돌봐야 하는 힘겨움을 담았다. 아이들을 챙기다보면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고 사는 오늘의 여성의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딸과 며느리의 아이를 돌봐주지 않겠다고 말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아이들을 봐주는 시어머니는 신경쓰는 며느리, 일하느라 바빠 도통 자신의 시간을 낼 수 없어 사위를 욕해보지만 아들 또한 마찬가지 아닌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엄마가 되지 말 것. 나는 내 모습 그대로 살아갈 것이다. (99페이지)

 

 

나 사실 좀 억울하고 답답하고 힘들고 그래. 울 아버지 딸, 당신 아내, 애들 엄마, 그리고 다시 수빈이 할머니가 됐어. 내 인생은 어디에 있을까. (201페이지)

 

최근에 스치듯 본 드라마에서 어떤 여성이 그러더라. 여자는 아이를 가지면서 자신의 삶이 없다고. 그저 아이 엄마가 된다고. 무시해보려고도 하지만 아이 때문에 모든 것을 걸 수 밖에 없는 여성에 대한 대변이었다.

 

여성으로서 현재를 살아가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음에도 이 소설 속 여성들은 무조건 참지 않는다. 맞서 싸운다. 이처럼 맞서 싸우는 여성들이 있기에 세상이 조금씩 변하는게 아닐까. 어제 보다는 오늘이, 오늘 보다는 내일이 다를 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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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 평전 - 문익환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판 문익환 평전
김형수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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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을 읽는다는 건 한 사람의 생애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 평전이 나왔다는 건 그 사람의 생애가 굉장히 특별하다는 것. 한 나라의 거대한 버팀목 같은 존재였다는 것. 작가들로부터 탄생한 수많은 평전이 존재하지만 문익환 선생의 평전을 읽는다는 건 가슴뿌듯한 일이다. 세계에서 오로지 한국만이 분단 국가다. 햇볕 정책으로 인해 북한과의 관계가 조금 좋아지는 가 싶다가 얼어붙은 정국이었다. 새로운 대통령이 나오고 지금처럼 세계의 이목을 집중하는 경우도 드물다. 통일이 올까. 통일이 아니어도 통일된 상태와도 같은 교류가 있다면 이것 또한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이 아니었을까.

 

통일의 간절한 염원을 담았던 인물이 문익환 선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때 뉴스에서 떠들석하게 나왔던게 문익환 목사의 방북이었다. 그의 통일을 향한 마음으로 방북했으리라 어렴풋이 생각했었다. 방북후 구속되었고, 구속된 사진이 실려 그의 얼굴을 사진으로 보았을 뿐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그를 잊고 있었다. 단편적인 사실은 기억한다. 배우 문성근이 문익환 선생의 아들이라는 것. 재야에서 활동을 했다는 것 정도였다.

 

김형수 작가가 쓴 『문익환 평전』이 전부터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회가 되면 읽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문익환 선생의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판이 출간되니 반가울 뿐이었다. 책의 뒷 부분은  꽤 많은 분량의 사진이 들어있다. 그가 태어났던 북간도에서부터 생의 한 페이지가 차례로 실려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으로 그의 생을 훑어보고 글을 읽기 시작했다. 가슴이 북받치는 감정을 느꼈다. 그의 육성을 듣는 느낌이었다. 

 

『문익환 평전』을 읽는다는 건 한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것과도 같다. 1918년에 태어난 문익환은 윤동주, 송몽규와 함께 자랐다. 일본의 핍박을 받았던 일제 강점기, 나라를 위해 독립을 외쳤던 독립군의 활약들이 문익환의 선조들로부터 이어져 왔다는 사실이다. 여성의 역할이 미미했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에 그의 어머니 또한 아홉달 된 그를 업고 독립을 위한 만세 운동을 나갔다고 하니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지 않았나 하는 감동이 밀려 온다.

 

삶은 흐르는 물과 같다. 삶의 현실은 어디선가 끝없이 샘솟는 강물처럼 흘러와 잠시도 쉬지 않고 세상의 관계들을 재편해놓는다. 자만에 찬 전위들은 낙오의 길을 가고 선지자를 열심히 뒤따르던 이가 홀연히 전위가 된다. (312페이지)

 

 

삶은 선택을 허락하지 않는다. 생生은 명命이다. 살려면 살고 말려면 마는 것이 아니라 살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 따라서 생명은 불가피하게 자라려고 하는 힘을 갖는다. 생명의 마음, 생명의 본능은 내일을 지향한다. 생명은 '지금 있는 것'이면서 '장차 있어야 할 것에 대한 꿈'을 내포하고 있다. (329페이지)

 

통일을 위해 앞장섰던 그가 목사인 건 다들 아는 사실일 것이다. 그 역시 목사의 아들이었으며 프린스턴신학교에서 수학했다. 성서 공동번역위원으로 성서를 번역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으며 우리말 풀어쓰기에 앞장섰다. 또한 분신자살한 전태일의 뜻을 이어 많은 학생들이 기성세대에 대한 항의로 삶을 외면하자 그들에게 향한 언어는 감동이다. '제발 죽지 말고 살아서 싸워!'  그때는 청년들이 우후죽순으로 생을 달리했다.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이런 말을 했을까.

 

저자는 문익환 목사 보다는 문익환 선생이라는 호칭이 더 맞다고 표현했다. 성서를 번역하며 믿음을 강조했던 목사이기도 했지만 우리의 통일을 위해 앞장섰던 민주 투사이기도 했으니 맞는 표현같다. 약자의 편에 서서 민중들을 사랑했고 그들과 함께 했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애써왔던 사람들 중에 신을 섬기는 성당의 신부들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목사 직분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꽤 있었다는 사실은 기억할 만한 일이다.

 

다시금 평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세계의 눈이 우리를 향하고 있으니 이것 또한 좋은 일이 아닐까. 평화와 통일을 위해 애써왔던 문익환 선생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상태에까지 이르지 않았나. 한국과 북한의 정상이 포옹을 하는 장면에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번지고 있다. 역사의 한복판에 서서 민족을 위해 앞장섰던 문익환 선생의 삶의 궤적을 읽는 일이 이토록 즐거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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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4 11: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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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4 2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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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방랑
후지와라 신야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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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에 출간된 여행서적을 읽는다는 건 책이 쓰여진 시대를 안다는 것. 과거의 기록이지만 현재와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에 우리는 감동하고 다시 여행에의 꿈을 꾸기 시작한다. 방랑이라는 말 자체가 틀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을 뜻한다. 후지와라 신야의 400여 일간의 방랑의 기록이자 동양 여행기 3부작 중 마지막 편이다. 한 겨울 이스탄불에서 시작된 여행은 앙카라, 이슬람, 콜카타, 티베트, 버마, 치앙마이, 상하이를 거쳐 홍콩과 한반도 그리고 다시 일본으로 향했던 여정의 기록이다.

 

그의 기록을 보자면 후미진 뒷골목의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번화한 도시보다는 후미진 뒷골목의 사람들의 모습을 살폈다. 사창가의 뒷골목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의 민낯을 찍었다. 가슴을 드러내는 사진도 마다하지 않았다. 창녀들의 벗은 모습을 찍은 사진에서 섹스어필하다기 보다는 오늘을 사는 그네들의 진짜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어느 식당에서 손님의 옆자리에 앉아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거구의 한 여성이 있다. 이 여성은 식당측으로부터 손님의 접시가 비워질때마다 그에 대한 수당을 받는다. 먹고 살기 위해 손님의 음식을 먹어치우는 여자. 그게 신기해 자꾸만 접시를 그 여자 쪽으로 보냈던 후지와라 신야의 호기심을 엿볼 수 있었다. 장사하는 방법도 여러가지다. 또한 음식을 먹어치우는 그 여자에게서 삶의 고단함을 엿볼 수 있다. 

 

후지와라 신야는 한 겨울의 서울, 돼지 머리가 진열되어 있는 시장 한복판에서 순대와 간을 먹으며 사람들을 만났다. 그 전에 택시를 타고 오면서 들었던 한이 서려있는 듯한 읖조림이 판소리라는 것. 판소리는 전라도의 음악이라는 것. 판소리를 듣고 마음을 후벼파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가 방문한 시기가 1981년의 서울이었다. 지금과는 다르게 1981년 서울의 시장은 남루하다. 치열하게 몸싸움하며 달아났던 창부와의 사투에서 어떤 처절함을 엿보았다. 눈내린 한 겨울 서울의 모습은 어쩐지 그 시기 만큼 시린 모습으로 다가온다. 서울을 소울(영혼)이라고 표현한 것에서 그가 바라보는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저 '길을 걷는 자'였고 보고 느낀 것들을 '보고하는 자'에 불과했다. 사진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알아차렸을 텐데, 나는 지난 1년 동안 누구나 들고 다니는 평범한 카메라 한 대와 렌즈 하나만 써서 대부분의 사진을 찍었다. 삼각대도 사용하지 않았다. 삼각대는 기계의 다리지 내 다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477페이지)

 

그가 방랑했던 장소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그 도시의 풍경들에서 드러나는 장면들. 때로는 감추고 싶은 장면일지라도 그가 머물렀던 시간에의 사유로 비춰졌다. 때로는 여행자에 의해 그 도시의 민낯이 드러나는 법이다.

 

고지대 산사에서의 며칠을 묵었던 그의 기록을 보자. 40세가 넘어서도 더이상 승려를 할 수 없다며 떠나는 자들. 열두어 살 먹은 소년 승려의 이탈. 한번 나간 자는 다시는 승려가 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떠날 수 밖에 없는가. 그저 오는 사람을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또한 막지않은 산사에서의 기억은 마지막 노승의 얼굴에서 드러난다. 모든 것을 통달한 자의 모습이 이렇던가. 작가가 이만 산을 내려가야겠다고 했을 때 누운 채 그를 바라보는 승려의 사진 한 장에 갑자기 마음이 먹먹해진다. 산다는 게 이런 것인가. 많은 것을 체념하고 살다보면 이런 얼굴이 될 것인가. 마음이 복잡해진다.

 

 

사람이 살면서 몇 번의 고비를 만나듯이

여행에도 빙점이 있다.

여행 초기의 뜨거웠던 피는 식고

마침내 그것이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얼어붙는다.

눈앞에 무엇이 나타나든 시들하다.

 

(중략)

 

누구에게나 '빙점'은 있다.

반드시 찾아온다.

인간의 빙점을 녹이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의 체온이다.

어쨌든 사귀어보라. (514~515페이지)

 

인간에게 실망하다보면 다시는 인간과 교류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지만 또 마음을 여는 건 인간때문이다. 다시금 인간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되는 그. 사진속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비루한 인간이든, 그들이 창녀든, 시장 사람들이든. 다시금 인간에게 마음을 여는 그의 마음을 우리는 그의 사진 속에서 발견한다.

 

그는 그저 '길을 걷는 자'라고 표현했다. 남루한 일상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그의 글에서 삶의 한 부분을 엿보았다. 일상을 떠난 가까운 여행지에서 이 책을 읽었다. 작가처럼 여행의 기록을 사진과 함께 남기고 싶다. 오래도록 읽힐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그것처럼 좋은 것이 또 어디 있을까. 비로소 나를 만나는 시간, 그것이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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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8-05-31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또 이런 게 나왔군요... 구판이 집 구석 어디에 있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아마 없을 것 같은데...뭐 또 있다고 해도 신판구판 같이 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어쨋든간에 살 궁리만 하고 있는 홍돈입니다.... 일단 장바구니로.....ㅎㅎㅎ

Breeze 2018-05-31 21:20   좋아요 0 | URL
구판 있으면 읽어 보셔도 좋을듯 합니다. 구판 있으면 신판도 구매하게 되더라고요. 감사합니다. ^^
 
눈보라 체이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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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처럼 다작을 하는 작가도 없다. 수많은 작품들을 써왔고, 여전히 많은 작품을 쓰고 있는 작가.

계절에 맞게 출간된 『눈보라 체이스』는 설원에서 펼쳐지는 스포츠 경기를 보는 듯 쫓고 쫓기는 레이스를 펼친다. 현재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창이다. 한국의 효자종목인 쇼트트랙을 비롯해 스피드 스케이팅은 꼭 챙겨보고 있는데, 이와 맞춰 출간된 탓인지 역시 재미있는 레이스를 보는 듯 했다.

 

소설은 세 가지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살인 누명을 쓰게 된 대학생 와키사카 다쓰미와 살인 사건을 수사하게 되는 고스기, 온천있는 스키장의 마을 사람들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먼저 다쓰미는 한 스키장에서 여자의 부탁으로 사진을 찍어주게 되었다. 예쁜 여자라 그녀를 '여신'이라고 칭하며 잘해보고 싶었으나 그녀는 사라지고 말았다. 이름도, 어디에 사는 지도 확실치 않는 그녀의 존재를 찾아야 한다. 살인 누명을 벗을 방법은 그녀 '여신' 밖에 없었던 것. 다행히 고글을 벗은 탓에 그녀의 얼굴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다쓰미에게는 법학과 출신의 친구 나미카와가 함께 해 그의 증인이 되어줄 여신을 함께 찾는다.

 

다른 한편으로 고스기의 시선을 다루는데, 계장의 지시하에 살인 용의자일지도 모르는 다쓰미를 좇는다. 그가 묵었던 숙소에 찾아가 그의 흔적을 찾는 한편, 그들의 차에 잠깐 동승했던 여자가 밝힌 GPS 위치 때문에 다쓰미 일행을 쫓는다. 스노보드 동아리 멤버였던 다쓰미의 사진을 받아 그들을 찾아야 하는데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스키장을 운영하는 온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들은 스키장을 홍보하기 위해 결혼식 행사를 하게 된다. 그곳의 공연 연출가로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 다쓰미가 보았던 하얀색 바탕에 빨간색 물방울 무늬의 스노보드 복을 입은 여자를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형사들은 온천마을 스키장에서 다쓰미 일행을 쫓고, 어떻게든 형사들을 피해 자신의 증인이 되어줄 여신을 찾아야 하는데, 자신들의 뜻대로 될 수 있을까가 관건이다. 스노보드를 즐기는 사람들, 스키를 즐기려는 사람들, 그 속에서 펼쳐지는 추격전은 꽤 흥미로웠다.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는 것보다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해줄 여신을 찾는 부분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었다.

 

다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여느 소설들과는 다르게 반전이 없다. 독자가 예상했던 대로 귀결되는 부분이 조금 아쉬웠다. 느른한 결말이었다고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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