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시즌 모중석 스릴러 클럽 44
C. J. 박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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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와이오밍 주, 수렵감시관으로 일하는 조 피킷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오픈 시즌』은 우리가 여태 읽어왔던 추리소설의 범주를 벗어났다. 독특한 직업, 여타의 추리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가정적인 남자. 수렵감시관으로 근무하고 있음에도 조준을 해 쏘는 총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남자다. 그렇다고 수렵감시관으로서 완벽한 남자도 아닌 것 같다. 글쎄 사냥 시즌이 아닌 때 사냥을 하는 남자를 붙잡았다가 그만 총을 뺏기고 만 남자다. 총도 제대로 못 쏴, 이래가지고 수렵감시관으로서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러한 일로 조 피킷은 웃음거리가 되었다. 조사가 진행중이어서 조만간 정직될지도 몰랐다.

 

조 피킷의 큰 딸 셰리든이 밤새 괴물이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악몽을 꾸었다며 본격적인 소설이 시작된다. 셰리든이 꾸었던 꿈이 꿈이 아닌 실제로 일어난 사실이었다. 조가 총을 빼앗겼던 남자가 자신의 집 장작더미 옆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몸에 피를 흘린 채. 그는 아이스박스를 한 개 가지고 있었으며, 아이스박스 안에는 동물의 분비물로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셰리든은 장작더미 옆에서 동물들 몇 마리를 발견하고, 가족에게 아무말 하지 않고 자신의 애완동물로 키우고자 한다. 먹을 것을 부모 몰래 남겨 이름을 지어준 애완동물들에게 가져다 주었고, 동생과 둘이서만 알게 된 비밀이 되었다.

 

 

조 피킷은 오티 킬리의 죽음이 의심스러워 조사에 임하게 되고, 그와 함께 수렵감시관 일을 배웠던 웨이시와 바넘 보안관의 지휘 아래 보안관 대리와 함께 캠프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총에 맞은 클라이드를 발견하고 무슨 일에 연루되었음을 직감한다. 나름의 방법대로 조사를 시작하는 조. 수렵감시관이 살인 사건의 전말을 조사해도 되나 싶지만, 바넘 보안관은 크게 저지하지 않는다.

 

캠프에서 왜 살인 사건이 벌어졌는가 조사를 시작한 조 피킷은 사냥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스치듯 말을 듣는다. 멸종 위기종의 동물이 발견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만약 멸종 위기종의 동물이 발견된다면 사냥은 금지될 것이다. 이로써 피해를 보는 사람이 많아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누군가 이를 저지하기 위한 일을 벌였단 말인가. 그 누군가가 누구일까가 중요한 관건이다.

 

 

 

 

C.J. 복스는 그러한 독자의 허를 찌른다. 사건을 제대로 조사할 지 몰랐던 수렵감시관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사건의 중심에 가까이 서게 만든다. 또한 조 피킷의 가족이 타깃이 되어 피해를 입는다. 약간은 어수룩하게 보였던 가정적인 남자 조 피킷에게서 동물적인 수사 감각이 있을 줄 어떻게 알았으랴.

 

그러고보면 여자들은 사람에 대한 아주 날카로운 감각을 지닌 것 같다. 조 피킷의 아내 메리베스가 사람을 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조 피킷이 주변 인물들과 꽤 가깝게 지냈었는데 그 중의 몇몇 인물들에게는 눈쌀을 찌푸렸으니 말이다. 물론 소설 속 여자들이 메리베스처럼 지혜롭거나 현명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사냥에 대해 관심이 없기에 초반엔 조 피킷의 매력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휘몰아치듯 사건이 진행되는 바람에 소설에 쏙 빠지게 되었다. 아울러 다른 사람에게는 볼 수 없는 조 피킷 만의 사건 해결법에 빠졌달까. 동물에게 조용히 다가서듯 사건을 해결했다. 그것도 통쾌하게. 아마 그가 보안관이 아닌 수렵감시관이었기에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조 피킷의 다음 행보가 기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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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남 오빠에게 - 페미니즘 소설 다산책방 테마소설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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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을 읽으며 여성으로서의 삶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예전부터 그래왔으니까, 어쩌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런데 조남주 작가가 조목조목 따지는데, 여태 감춰두었던 감정들이 솟구쳤다. 여성으로서 차별받았던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이 책을 읽은 여성들은 깊이 공감하며 분개하는데, 정작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다는 남성들은 불편한 감정을 갖는 모양이다. 공감할 수도 없으며 재미도 없다고 여기는 듯 하다. 어쩌면 당연한 감정인지도 모른다. 본인들은 그런 차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테니까. 

 

『82년생 김지영』 소설에 이어 페미니즘 소설이 출간되었다. 일곱 명의 여성 작가들이 모여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 소설이다. 내가 한두 번쯤은 읽어왔던 작가들이 쓴 소설이라 반가움이 앞섰다. 구병모 작가의 출간된 소설은 거의 다 읽었으니 그 기대가 컸음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조남주, 구병모 작가 뿐만 아니라 최은영, 김이설, 최정화, 손보미, 김성중 작가까지 가세해 소설집을 훨씬 풍성하게 만들었다.

 

「현남 오빠에게」같은 경우 지방에서 살다가 대학을 위해 서울로 온 여자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던 선배가 사실은 자기를 한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았던 것을 깨닫게 되며 청혼 거절을 하는 편지 형식의 내용이다. 아마도 이 작품이 소설집의 첫 편에 있었기에 이 소설의 주제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고, 앞으로 이어질 소설에 대한 예감을 했었다. 최은영의 「당신의 평화」 또한 우리와 우리 어머니 세대에 대한 통찰을 담은 글이었다.

 

유진의 엄마 정순은 마치 엄마를 보는 듯 했다. 치매에 걸린 시할머니를 모셨던 엄마, 그렇다고 아빠한테 제대로 된 대접도 받지 못했다. 새로 결혼할 아들과 며느리에게 그 한을 풀어보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자기 속내를 딸에게 말했으나 딸 조차 그런 엄마를 피하는 형식이다. 주변에서 많이 보기도 하고 들어왔던 일들이라 공감이 더 컸다. 이외에 중학생 아들을 둔 갱년기에 접어든 한 여자의 이야기 또한 묵직한 울림을 준다. 엄마의 소원대로 의대에 가겠다는 아이가 여자애들과 성관계하는 걸로 공부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소위 다른 엄마들처럼 내 자식만 챙기겠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서로 합의하에 했다지만 여자 아이들이 아들을 좋아했으면 어쩌려나 걱정을 했다. 여자 아이들을 만나볼까. 보통의 엄마인 아들을 걱정하기 보다 오히려 여자애들을 걱정하는 점이 특별했다.

 

 

 

아들과 잔 여자 아이는 공부도 못하는 애들일 것이며 내 딸은 절대 그런 애가 아니라는 이중잣대를 재는 것들을 꼬집었다. 부모가 범하기 쉬운 오류가 내 자식은 그럴 애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 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른 여자 아이에 대한 편견은 그릇된 행위다. 그러한 감정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세상이 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여성 차별은 존재한다. 현재의 내가,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야 할 우리 자식들의 세상엔 여성 차별이 없었으면 싶지만, 모를 일이다. 차별을 받았던 사람이 아이를 키우며 자신도 모르게 차별하며 키우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므로. 작가 노트에서 읽었던 말이 떠오른다. 무심코 남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게 더 쉬웠다는 생각들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자니 걸리는게 있었다는.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여자 형사는 섹시해서도 안되며 여성적이어서도 안된다는 우리의 편견을 꼬집었다.

 

여기서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다. 여자 작가가 쓴 어떤 장르에 관한 소설은 남자 작가가 쓴 것보다 못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여자이면서도 말이다. 페미니즘 소설을 읽었다고 해서 단번에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조금씩 변해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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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링 -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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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란 대물림되는 것일까. 자라면서 보고 배우는 것일까.

곰곰 생각해보면 날 때부터 폭력적인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내가 가진 게 없어서. 예를 들면, 남들 다 있는 부모가 없거나, 재산이 없거나, 부모가 있어도 사랑받지 못하거나 할 때 드러나는 감정들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것이 폭력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 같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울분,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어 제 마음을 대변하듯 혹은 그런 마음을 들키기 싫어 타인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다. 주변에서 보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했던 것 같다. 매 맞는 아이가 나중에 자라서 제 아이를 매로 때리는 부모가 되듯. 어쩌면 폭력은 대물림되는 것 같다.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자라서 부모가 된후 자식에게.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처럼 때리는 사람들. 습관처럼 몸에 배어버리는 것 같다.

 

 

여기, 한 사람의 폭력의 역사를 만났다.

그가 경험했을 처음의 폭력은 아마 열일곱 살의 엄마로부터가 아니었을까. 열일곱 살의 나이에 화장실에서 난 아이. 어린 엄마는 미혼모들이 기거하는 센터에 있었을 것이며, 새로 태어난 아이는 어느 누군가에게 입양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시점. 어린 엄마가 정신을 차렸는지, 자신의 아이를 키우겠다며 데려가던 그 시점부터 아이는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제대로 된 집도 직장도 없었던 엄마가 곧 자신을 버릴 것은 당연했으므로. 그런 그가 고아원에서 자랐고, 고아원에서 가까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반 구성이란. 고아원 아이들이 몇명, 한 부모 아이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아이들로 구성된 반이라니. 처음엔 느끼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에서부터 느껴지는 차별 또한 그들의 피부에 금방 와닿았다.

 

 

수많은 차별 중에서 고아원 아이들만큼 차별받는 아이들도 없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반 아이 중 예쁘장하게 생긴 아이가 있었는데, 애들이 고아원에 있는 아이라고 수군수군댔던 것처럼, 주인공 장태주의 반 아이들도 그렇게 수군댔다. 소심한 아이였던 장태주는 말없이 조용히 앉아 책 읽는 아이였다. 그가 어느 순간에 폭력성이 드러났던 건, 자기를 놀리는, 그러니까 태주가 기르는 새에게 해꼬지를 하는 아이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자신도 알수 없었던 폭력이 내재되어있었다는 것. 그에게도 새로운 발견이었다.

 

 

어느 순간 폭력의 한가운데, 아니 정점에 있었던 태주에게 중학교 입학은 또다른 폭력의 장에 빠지는 것과도 같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학교의 짱이니 하는 것처럼. 그를 자기의 발 아래에 두고 싶었던 아이도 결국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판박이였다. 권력의 중심에 있는 사람. 상납받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 곁에 있다보니 그가 배운 것 또한 그런 것 뿐이었다. 내 발 아래에서 기어라, 뒤를 봐줄테니, 같은.

 

 

고아원과 폭력의 한가운데서 살아갈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는데, 그에게도 인생의 단 한 사람, 그를 챙겨주는 사람을 만났다. 소년원에서 만난 담임 공민수가 그였다. 그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생겼던 것이다. 그가 담임을 따라나섰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담임은 그에게 권투를 가르치고 싶어 했다.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람으로부터 권투를 배우게 했다. 담임의 아내와 할아버지와 담임과 함께 네 사람이 밥상의 네 면에 앉아 식사하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서로 자기 말만 하는 것 같으면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와 의견을 나눌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사람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누군가와 싸우며 즉 권투를 하며 돈을 버는 것도 가족과 함께 있으니 가능했고,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가족의 기쁨이 자신의 기쁨이었다.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없었다. 담임, 누나, 할아버지만 있으면 되었다. 그렇지만 세상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가 승승장구할 때의 불안함이란. 왠지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느낌. 대부분의 사람이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게 힘들지,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한순간이다. 그가 꼭대기의 정점을 향해 달려갈 때부터 불안했다.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은. 소위 막장 같은. 우리가 수많은 영화나 소설 속에서 많이 봐온 것 같은 불안감. 아니나 다를까,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는 소설이 좋다. 우리의 예상과 너무도 딱 맞아버리면 허무할 때가 있다. 이렇게 되면 너무 신파같잖아. 요즘엔 어디서 봄직한 신파같은 소설 그다지 별로라고 말하지만, 소설을 손에서 놓을 수는 없었다. 그가 끝을 향해 달려가는 걸, 그곳이 혹은 지옥의 불길이라도, 나아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 그가 가장 소중히 여겼던 것들만 있었다면 그의 생은 달라졌을까. 불구덩이를 향해 나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잠시 쉬며 살아갈 수 있었을까. 

 

 

너무나 익숙한 내용이면서도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었던 건 장태주라는 인간의 어떤 모습까지 보게 될까라는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부러 그 길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가 폭력을 다시 휘두르기 시작했던 것도 결국엔 가지지 못한 것,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그가 빛의 한가운데서도 두리번거리며 찾아 헤맸던 것은 결국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그것,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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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엔 가난하지만 행복한 사람들과 부자여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 가난하면서 불행한 사람들이 있다. 현재의 내가 그렇게 살고 있지 않다고 해서 우리 주변을 외면하는 건 옳지 않은데도, 주변에 시선을 돌리는 걸 주저하게 된다. 만약 쌈닭 소녀 찰리가 나에게 찾아온다면 그 아이를 온통 사랑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찰리의 이모, 버서처럼! 아니면 어떤 위탁 부모처럼 아이의 마음에 들지 않은 점만 꼬집으며 얼른 나가기를 바랄까.나에게 다가오는 아이에게 거스와 버서처럼 해야겠다, 생각했다. 따뜻한 마음을 건넬 수 있는 어른, 버서를 보며 배운 게 많았다.

 

바바라 오코너의 소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읽지는 않았으나 매우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들어, 작가의 이름만으로도 이 책이 읽고 싶었던 이유였다. 얇은 책에 청소년 용으로 나온 책이지만, 우리는 소설 속 인물인 찰리와 하워드가 내 아이들 인것처럼, 혹은 내 이웃의 아이들인것처럼 느껴지는 건 그들이 무척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는 행동들 하나에 마음이 쓰이며 어떻게 될까,,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결말이지만, 그래도 감동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수많은 일들에서 감동을 받기 원하는 것 같다. 사람의 마음 하나에 서운하기도 하고, 감동을 받기도 하는 것처럼,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며 느끼는 어쩔 수 없는 감정들. 우리는 그 속에 살고 있다.

 

곧 열한 살이 되는 쌈닭 소녀 찰리는 교도소에 갇힌 쌈닭 아빠와 우울증에 걸린 엄마 때문에 이모와 이모부가 있는 시골로 오게 되었다. 언니와도 헤어져 혼자 살게 된 찰리는 누군가 건들기만 하면 쌈닭으로 변하게 된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 자신에게는 없는 것들을 바라보면 저절로 울화통이 터져 나온 것이다. 버려졌다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친구 집으로 가게 된 언니와 함께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족이 함께 모여 살고 싶었던 찰리는 늘 엄마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 했다. 그래서일까. 소원을 빌 수 있는 것만 보면 소원을 빌었다.

 

 

무언가 보일 때마다 소원 빌기를 하는 찰리는 같은 반 여자아이의 단정한 모양새, 엄마에게 사랑받고 있는 모습이 좋아보이지 않는다. 질투가 난다고 해야겠다. 자기에게 다가오는 여자 아이를 밀치거나 해서 화풀이를 하게 되는데, 화가 날 때마다 '파인애플'을 외치라는 빨강머리 소년 하워드가 찰리가 곁에 있었다. 찰리는 다리가 불편한 아이였다. 위아래로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다녔지만, 아이들이 놀려도 개의치 않는다. 하나둘 상대하면 모든 아이들을 상대해야 하므로 무시하고 있다. 가난한 집 아이지만 엄마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아이다. 그래서 찰리는 하워드가 부러웠고, 하워드네 집에 놀러가도 마음이 편해졌다. 자기 또한 사랑받고 있는 듯한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상처를 감추려고 다른 사람과 싸우거나 다치게 할 때가 있다. 찰리가 그런 아이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하워드네 집에서 사랑받는 아이들을 보고, 이모와 이모부가 자신에게 주는 사랑을 받으며 점점 미안함을 느낀다. 왜 있잖은가. 그전에는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것을 생각지도 않았는데, 왜 그렇게 말했을까 후회하고 어떻게든 사과의 말을 건네려고 하는 것 말이다. 늘 자기가 살던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습관처럼 소원을 빌고 말해왔는데도 찰리의 마음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함께 할 수 있는 것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의 차이를 어느새 깨닫고 말았다.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깨닫게 되는 것을 보면 감정의 동물이 맞는 것 같다. 오히려 어른 보다도 아이들이 그런 감정을 더 빨리 느끼는 것도 같다. 자신이 살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 스스로 깨닫게 되는 과정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이가 바로 찰리가 단 하나의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하워드 라는 것. 자신에게 친구가 되어 줄거라는 것.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게 되는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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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코미디 - 유병재 농담집
유병재 지음 / 비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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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이자 코미디언이라는 유병재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그저 스쳐지나가듯 텔레비젼에서 본 게 다다. 뭐랄까. 많이 웃기기 보다는 그의 책 제목처럼 블랙코미디에 가까웠달까. 한마디로 웃픈 코미디를 하는 사람이라 여겼다. 짙은 쌍커풀, 탈색하듯 염색한 머리칼. 그 외에 그에 대해 아는게 뭐가 있을까, 곰곰 생각해봤다.

 

그리 두껍지 않은 짧은 책이다. 글도 짧다. 하지만 짧은 글에서 유병재 만의 날선 감정들을 만날 수 있다. 때로는 기대하지 않았던 문장으로 정곡을 찌른다. 어수룩한 모습 뒤에 감춰진 명민한 그의 생각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사건들에 대해서도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자기가 느낀 감정 그대로 표현한 글 들에서 어쩐지 통쾌함이 느껴졌다.

 

잘난 사람들 따라 살 필요 없어. 그렇게 못 산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고, 애당초 너나 내가 여태 살아온 가닥이 있는데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겠냐? 분수 맞춰 사는 거야. 너무 멋있는 사람 따라가려고 하지 말고. (20페이지, 「멘토」중에서)

 

그도 이처럼 술을 마시며 후배에게 일장연설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본인이 멘토로 삼았던 인물들에게 들었던 말일까.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들일까. 자기의 경험에서 나오는 말들속에서 시니컬함을 느꼈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돈을 잃으면

대개 명예와 건강도 잃는다.  (32페이지)

 

부정하고 싶지만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기에 그의 글에 딴지를 걸 수 없다. 예전의 명언은 예전의 명언일 뿐. 현재와는 맞지 않다. 글 속에서 세상 살아가는 어려움이 엿보인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문장들. 이렇게 생각하는게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이렇게 느끼고 사는 구나, 싶다. 글에는 그 사람이 생각이 드러난다. 어떤 것을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것을 바라보는 지, 그 사람의 시선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이 당신을 겁내는 건

당신에게 대단한 카리스마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당신은 그냥 쉽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상처받게 될 나를 겁내는 것이지,

당신을 겁내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대단한 카리스마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101페이지)

 

그의 말 그대로 블랙코미디다. 웃으면서 말하지만 어쩐지 슬퍼 보이는 감정들. 세상을 사라보는 그의 생각들이 담겨 있어서 그럴까. 방송 작가로 일했던 탓인지, 그의 글에서 자연스러움이 묻어난다. 까고 있지만 그의 진정성이 엿보였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과 마음속으로 품고 있는 생각들이 이렇게 다르다. 우리는 여태 그의 피상적인 것만 바라보았나 보다. 내면의 것을 바라보려고 하지 않았다. 아마 우리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하루하루는 바쁘고, 타인을 생각할 마음의 여유라고는 없으니.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권에 책에서 다른 사람을 알게 된다. 무관심했던 사람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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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1-10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꼭 묘비처럼 나왔어요 ㅋㅋㅋ 정말 블랙코미디다

Breeze 2017-11-16 17:53   좋아요 0 | URL
ㅠ.ㅠ 묘비처럼 나오게 하려는게 아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