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10 서울편 세트 - 전2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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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어온지 이십 년쯤 되는 것 같다. 중간에 몇 권을 빼고는 계속 읽어오고 있는데, 이 책만큼 우리의 문화의식을 높이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일단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화유산을 새롭게 보는 시각을 갖게 한다. 더불어 우리 문화유산과 함께 역사적 사실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문화유산 속에 깃든 우리 선조들의 얼이 가슴깊이 스며드는 느낌을 갖는다. 그래서 답사 회원을 모집할 때면 가고 싶은 마음에 두근대기도 했으나 거리상의 이유로 단념한 적도 있었다. 남도 답사기에서부터 일본편 그리고 제주편에 이어 이번 신작은 서울편을 담았다.

 

몇년 전 가족들과 함께 서울 여행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고궁 답사부터 시작했는데, 서울이라는 도시가 무척 넓어 2박 3일의 기간동안 다 돌아보는데 한계가 있었다. 고궁 답사도 경복궁만 자세히 돌아보았을 뿐, 함께 걸었던 일행들 때문에 창덕궁과 창경궁 그리고 덕수궁을 걷기는 했으나 수박 겉핥기 식의 관람을 마쳤을 뿐이었다. 일단 지쳐있기도 했지만, 각 궁궐에 스민 이야기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다른 건 둘째치고라도 경복궁은 제대로 관람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먼저 관람한건데, 이 책을 읽고나니 각 궁별로 하루의 시간을 별도로 할애해야 제대로 돌아볼 것 같았다. 이토록 많은 궁궐과 각 궁궐에 속한 건물들의 유래를 찾아가다보면 하루의 시간으로도 부족할 듯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이 좀더 빨리 나왔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과 이제라도 자세히 읽었으니 다시한번 궁궐 투어를 떠나야겠다는 다짐같은 걸 하게 되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은 아주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이처럼 자세하게 창덕궁이나 창경궁에 얽힌 이야기를 읽는다는 건 우리의 역사를 아는 일이기도 해서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이토록 아름다운 문화유산과 함께 하고 있으니 얼마나 복받은 일인가.

 

제1권에서 첫 번째로 소개하는 문화유산은 종묘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세계 문화유산애 등재되었을 뿐만 아니라 종묘제례는 유네스코 세계 무형유산에 제일 먼저 등재되었던 곳이다.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에게 제사를 지낸 곳으로 유교의 종교의식인 동시에 국가의 존립 근거를 확인시켜주는 국가 의식이라고 했다.

 

종묘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된 창덕궁을 이어 소개하는데, 저자는 서울의 5대 궁궐을 모두 등재하도록 노력해 볼 만하다고 피력했다. 실제로 경복궁보다 창덕궁에서 기거했던 왕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권위적인 경복궁에 비해 인간적인 분위기가 짙은 창덕궁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10만 평에 이르는 산자락의 골짜기를 그대로 정원으로 삼고 계곡 곳곳에 건물과 정자를 지어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정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후원 때문에 창덕궁이 아름다운 궁궐이라고 했다. 창덕궁 후원의 아름다움을 사진 속에서 보고는 기회가 되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후원을 걸으며 우리 역사의 한 공간에 있는 감정은 다른 나라 사람들은 느끼지 못할 감정이 아니겠는가.

 

창덕궁과 함께 동궐이라 불렸던 창경궁은 왕이 모셔야 할 어머니와 상왕으로 물러난 아버지가 기거할 전각의 필요로 만들어진 곳이다. 세종이 즉위하면서 상왕으로 물러난 태종을 모시기 위해 창덕궁 곁에 수강궁을 지었는데, 이것이 창경궁의 시작이라고 한다. 고종 황제를 폐위시켜 덕수궁에 남게 하고 순종 황제를 등극시킨후 순종 황제를 위로한다는 구실로 창경궁을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제2권에서 소개하는 문화유산은 한양도성과 자문밖, 덕수궁,동관왕묘와 성균관이다. 서울 사람이 아니라서 한양도성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성곽이 전란을 대비해 쌓은 성곽인데 반해 한양도성은 수도 한양의 권위와 품위를 위해 두른 울타리라는 사실도 새롭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 경호시설인 북악산을 개방했던 사실도 말했다. 도성길 걷는 걸 상당히 좋아하는데, 언젠가 마음잡고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곳이다.

 

다음은 자문밖을 소개하는데, 지방에 거주하는 우리들에게는 생소한 장소다. 한양도성의 북소문인 창의문의 별칭이 자하문인데, '자하문 밖'을 줄여 자문밖이라고 부르는 곳이라고 한다. 연산군이 운평, 흥청들과 놀았던 탕춘대가 있는 곳이다. 한양의 옛향기가 서린 부암동의 유래와 저자의 작품  『안목』에서 알게 되었던 조선시대 마지막 내시 이병직과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과 현진건의 집터를 만날 수 있는 곳을 만날 수 있다.

 

중국이나 대만 쪽에서 많이 만날 수 있는게 관우 사당이었다. 이 책에서 왜 관우의 묘인 동관왕묘를 소개할까 궁금했었는데, 임진왜란때 조선에 출병한 명나라 장수들에 의해 지어진듯 한데, 전국에 꽤 여러 곳이 있다고 한다. 한때 드라마에서도 방영되었듯이 성균관에 대한 건물과 역사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가 마흔 살에 공부한 곳이기도 해 여러모로 인연이 깊은 곳이라서 그의 애정이 엿보인 부분이었다.

 

우리의 역사를 알아야 지금 우리의 존재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저 스치고 지나갈 건물 하나하나에 깃든 우리 선조들의 아름다움의 가치를 일깨울 수 있는 책이다. 돌저귀에 새긴 문양 하나에서도 어떤 의미로 새겼는지 알게 된다. 문화유산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흉물로 전락할 수도 있는 일임을 우리는 안다. 이처럼 우리 문화유산을 제대로 알고, 그것에 얽힌 역사를 생각한다면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우리 역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꼭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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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6 - 너구리 잠든 체하기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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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전 딸아이가 가족 회의도 거치지 않고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분양해왔다. 아토피가 있어 털 알레르기도 걱정되고 반려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키울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분양해 온 고양이를 어쩌지 못하고, 딸아이는 자기 방에서 키웠다. 고양이가 궁금해 딸아이 방에 들어가보면 낯설어서 그런지 책상 뒤로 숨어버렸다. 한달 정도가 지나자 점점 거실쪽으로 나오더니 이제 거실을 활보하고 다녔다. 딸아이가 없을 때 밥을 챙겨주고 집에 들어가면 반갑다고 애교를 부리는데 저절로 마음이 갔다. 손목만한 크기의 아주 작은 고양이에서 이제는 사진에서처럼 많이 자랐다. 밥을 챙겨주려고 서성거리면 먼저 달려가 자기 밥그릇 주변에서 기다린다. 신랑 말로는 내가 넘버 투에서 넘버 원으로 승격이 되었다나 어쨌다나. 그래도 딸아이가 우리집 고양이의 집사이긴 하다.

 

집에서 고양이를 키워서일까. 키우기 전에 보았던 콩고양이 만화가 더 정답게 다가왔다. 그림 하나의 세부적인 면들이 공통의 관심사가 되어 더 자세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고양이들이 하는 행동들마저 공감이 가는 것이다. 다만 만화속에서 아기 고양이들이 둘인데 반해 우리집엔 고양이 하나 뿐이라 외롭다고 느낄수도 있겠다 싶었다.

 

지금까지 6,7권에 이르기까지 콩고양이들을 직접 기르는 부부 일러스트레이터들의 만화다. 처음 아기 고양이들을 데려온 집사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할아버지와 엄마, 아빠, 오빠들 모두 처음엔 고양이를 기르는데 반대해왔지만 키우다보니 나처럼 어느새 고양이들과 친해진 모습을 보인다. 할아버지 가발을 가지고 노는 고양이들은 주로 할아버지 방에서 잠을 자는 장난꾸러기다. 

 

 

 

집에는 자기가 고양이인줄 아는 개 두식이가 있다. 번역하기를 군대식 말투로 해서 굉장히 재미있는 부분이다. '~~하지 말입니다' 혹은 '~~ 했사옵니다'라고 말한다. 두식이와 콩알이, 팥알이는 이 집안의 귀염둥이이다. 말이 없는 아버지 조차 매일 두식이와 공원 산책을 한다. 아무래도 동물들이 많아서 일까. 너구리가 찾아와 두식이의 밥을 홀랑 다 먹어버리는 가 하면, 커다란 회색 고양이 한 마리가 찾아와 역시 두식이의 밥을 빼앗아먹고, 두식이만 보면 으르렁거린다. 아무래도 개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듯 하다. 반면 아기 고양이들인 콩알이와 팥알이를 무척 챙긴다. 그래서 가족들도 회색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갈데 없으면 키울 생각까지 한다. 그래도 혹시 주인이 찾을까 싶어 그림을 그려 전단지를 만들어 붙인다. 

 

나 같으면 길고양이를 키울 생각도 하지 못할텐데, 이 집 가족들은 동물들을 무척 좋아하고 있는 듯 하다. 팥알이와 콩알이 그리고 두식이가 할아버지 방에서 함께 잠을 자는 걸 보며 우리집 고양이를 생각해본다. 우리집 고양이는 아기때 어미로 부터 홀로 떨어져서그런지 이가 나기 시작할 때 사람들을 무는 습성이 있따. 특히 졸릴때는 더욱 물어 성가실 정도다. 잠을 잘때도 혼자 떨어뜨려 놓았다고 거실문을 통해 발코니 창에 다가와 들어오고 싶다고 운다. 방충망을 오르며 애처롭게 쳐다보는데 안쓰러울 정도다. 팥알이와 콩알이처럼 형제가 함께 자라면 더 나을 듯 싶었다. 

 

반려동물을 키우다보니 저절로 애정이 간다. 어렸을적에 고양이는 무섭다고 생각했었는데, 고양이처럼 애교가 많은 동물도 없는 것 같다. 소파나 식탁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면 꼭 가까이 다가와 체온을 닿게 하고 벌러덩 누워 자는 모습을 보면 무척 예쁘다. 언젠가는 딸이 분가할때 데리고 나갈건데 신랑은 벌써부터 내 걱정을 한다. 보내놓고 어떻게 살겠느냐고.  

 

역시 반려동물을 키우며 반려동물에 대한 책을 읽는 것과 키우지 않으며 읽는 것은 전혀 다른 감정을 갖게 한다. 그나마 반려동물에 대한 책을 읽어서인지 거부감은 덜해서 다행이었달까. 전과는 다르게 더욱 공감하게 되었으며 앞으로도 기대하게 만드는 콩고양이 시리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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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as 2017-08-29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물들이 사람 맘 여는 마법을 부리는 것 같아요:) 좋은 인연 축하드려요:);):)
 
드림랜드
신정순 지음 / 비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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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미국은 꿈과 희망의 땅이었다. 그러다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세탁소나 수퍼마켓, 접시 닦는 일을 하며 지낸다는 이야기에 이민에 대한 생각들이 모두 우리의 판타지 였음을 알게 되었다. 누구나 꿈꾸는 이민이었다가 그래도 내 나라가 좋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달까. 그럼에도 우리나라의 제도와 정치는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했기 때문일까. 필요에 의해 외국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들의 삶이 모두다 행복하지는 않으리라.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화려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몇몇이라는 걸 우리는 이제 안다.

 

외국에서의 생활 중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일까. 간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은 언어적인 문제가 클 것이고, 경제적인 문제 혹은 이민 2세들은 인종간의 편견과 갈등 때문에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그곳의 생활을 청산하지 않는 건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다른 면들을 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현재의 삶을 버리지 못하듯, 생활의 터전을 이루고 사는 삶이기 때문일 것이다.

 

제목에서처럼 신정순의 소설들은 꿈을 향한 미래를 그리는 사람들을 말하는 글이다. 현재는 아프고 상처투성이의 삶이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소설에서 보여지는 이민자로서의 삶은 아파보였다. 미국인들보다는 오히려 같은 한국인에게서 상처받는 경우가 많았고, 꿈을 찾아 떠난 곳에서 제대로 된 꿈을 펼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총 다섯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영주권 때문에 아이에게 폭력을 가했다는 죄를 뒤집어 쓰고 감옥에 몇개월간 들어간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드림랜드」와 멕시코계 남편인 산체스의 사고로 백만 달러의 보험금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한 여자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폭우」이란 소설이 있다. 쌍둥이 오빠의 모든 운을 빼앗았다는 것 때문에 엄마로부터 차별을 받다 엄마의 죽음앞에 마주해 화해하기 되는 이야기  「선택」, 한센병에 걸려 사라진, 친형 보다 가까운 형을 우연히 만나게 되어 그가 걸어왔던 삶의 자취와 신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는 신학생의 이야기  「살아나는 박제」 그리고 인디언 보호구역의 '태양의 눈'을 바라보며 아픈 마음을 치유하게 되었다는 한 남자를 가이드했던 이야기  「나바호의 노래」가 있다.

 

 

 

 

왜, 발목을 잡는 덫이란 게 있잖아요. 아무리 피하려 해도 피해지지 않는 그런 운명 같은 거요. 여기 온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운명의 덫에 걸려 여기 온 것 같아요. 안 그래요? (40페이지,  「드림랜드」 중에서)

 

 

 

다섯 편의 소설의 주인공 모두에게서 소설 속에서 나타난 그들에게서 아픔과 상처를 보았다. 하지만 아픔만 간직하고 있는 건 아니다. 감옥 안에서 백인 남편을 총으로 쏘아 죽인 한국인 여자를 만나 자신의 삶을 좀더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겠다고 마음 먹고 '드림랜드'라 불리지만 언제 흑인들이 총을 들고 침입해 들어올지도 모른 곳에서 불안하지만 그 삶에 도전하는 여자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두려움은 늘 우리 주변에 내재하는 것. 두려움을 이기고 새로운 삶에 대해 도전하다보면 자존감은 살아나기 마련이리라.

 

이미 가졌을 때 느끼는 기쁨보다 가지게 될 거라고 희망하고 있을 때 기쁨이 더 크잖아요. 제게 있어서 미국은 그러니까 ..... 희망, 그래도. 아직 가지지는 못했지만 앞으로는 가지게 될 거라는 희망을 주는 곳이에요. (110~111페이지,  「선택」 중에서)

 

우리는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미래에 고요한 적막만 가득하다면 금새 삶을 포기해버릴지도 모른다. 현재는 힘들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기에 오늘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희망마저 없다면 그 삶은 견디기 힘든 상처고 고통이다. 여전히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육성으로 듣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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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의 딸 (양장)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이영의 옮김 / 새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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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독서』에서 유시민 작가도 말했지만, 그 유명한 시인 푸시킨의 시를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너무도 흔하게 어디서든 볼 수 있었던 시 한 구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라는 시를. 유시민 작가처럼 어딘가를 갈 때마다 푸시킨의 시가 적힌 액자가 벽에 걸려져 있었다. 그래서 습관처럼 외우고 있던 시. 얼마나 시가 좋았으면 그렇게 흔하게 사용했을까. 삶이라는 단어 때문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청춘의 독서』를 읽고 그가 소설가 이기도 했음을 알게 되었다. 어디선가 『대위의 딸』이라는 제목을 분명히 본 것 같은데 이 작품이 푸시킨의 작품인줄은 몰랐다.

 

작가는 『대위의 딸』이란 작품에서 표트르 안드레이치라는 청년 장교와 그의 사령관의 딸 마리야 이바노브나의 사랑 이야기와 다른 한편으로 농노 제도를 둘러싸고 반란을 일으킨 푸가초프을 내세워 러시아 역사를 말하는 소설이었다. 성장 소설임과 동시에 러시아 역사소설이었다. 유시민 작가도 말했지만, '로맨스를 빙자한 정치소설'이었던 것이다.

 

수많은 소설에서 그 나라의 역사를 본다. 그 시대가 가진 암울함, 지배계층을 바라보는 농도들의 생각과 정치인들의 사리사욕과 구태의연함을 바라본다. 이런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과감하게 나선 사람들이 역사속에서는 항상 있어왔다. 작가는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소설 속에 나타냈다. 하나의 에피소드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구할 수 있으며, 한 여자를 생각하는 지극한 마음과 변절자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게 되는 과정들이 주인공의 신념으로 이겨내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소설은 꽤 재미있게 읽힌다. 태어났을 때부터 군대의 중사로 등록이 되어있었던 표트르 안드레이치가 열일곱 살이 되자 장교가 되라는 아버지의 명을 받고 군대로 향하는 여정은 상당히 희극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떠날때 나이 든 하인을 한 명 데리고 갔다가 한밤중 눈보라에 길을 잃었다. 그때 자신들에게 여관까지 길을 안내해 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표식으로 토끼털 외투(그 남자와 전혀 맞지 않은)를 주었다. 그는 농노제도에 대한 반란을 일으킨 푸가초프였다.

 

 

 

한 번의 선의가 자신의 목숨을 살리는 역할을 했다. 마리야를 사랑하는 표트르 안드레이치는 그녀를 구하려 신부의 집에 숨겼을 뿐만 아니라 마리야의 부모님의 죽음을 막을 수 없어 안타까워했다. 소설에서 요새의 사령관 부인이 그 곳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었다. 사령관인 남편과 젊은 장교들의 숙소와 행동 하나까지 관여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예나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 또한 들었던 게 사실이다.  

 

소설은 마치 로맨스 소설의 공식처럼 해피엔딩을 다룬다. 우연히 들른 곳에서 한 여성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표트르 안드레이치를 감옥에서 구하고, 처음에 반대를 했던 그의 부모에게까지 인정을 받았다. 이런 고전 작품을 읽으며 느끼는 것이 190여 년 전에 쓰여진 소설이지만, 현대 소설 못지 않게 재미있다는 사실이다.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일 것이다.

 

잘가거라, 표트르. 충성을 다해 복무해야 한다.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아첨을 해선 안 된다. 또한 공을 세우려고 함부로 나서도 안 되지만, 근무를 게을리해서도 안 된다. '옷은 새것일 때부터 아끼고, 명예는 젊어서부터 지켜야 한다'는 말을 깊이 새기도록 해라. (18페이지)

 

위 문장에서 보면 아버지는 아들에게 삶의 지혜가 될 만한 말을 한다. 군인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하지만 굳이 경거망동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국가의 특성상 모든 작품은 검열을 받았다. 쇼스타코비치가 만들었던 음악도 공산주의 체제에 어긋나지 않는가 검열을 받아야 했고, 푸시킨의 소설 또한 마찬가지였다. 검열을 거치고 난 작품이라 푸시킨이 말하고자 하는 정치적 내용이 많은 부분 삭제되었을 거라는 생각은 어쩌면 당연했다. 아울러 책의 뒷편에는 소설에서 생략된 장이 수록되어 있어 상상했던 일들을 읽어볼 수 있게 했다. 좋은 작품을 선별해 읽어야 한다는 것. 우리가 왜 고전을 읽는지 그 의미를 일깨우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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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스페셜 에디션)
박민규 지음 / 예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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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억이란 얼마나 믿을 것이 못되는가. 기억들은 때로 자신의 생각대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똑같은 상황에서 같은 경험을 했어도 그때의 내가 어떻게 생각했느냐에 따라 기억 조각들은 다르다. 같은 장소에 있었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역시 조금씩 다르다는 걸 경험할 수 있다. 하물며 책도 마찬가지다. 8년 전에 읽었던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만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작가가 나타내고자 했던 내용, 즉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였다는 거. 그때의 느낌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었다는 거. 작가에 대한 호감을 높였다는 거.

 

이런 기억들을 가지고 작가의 스페셜 에디션을 읽는 즐거움은 기억을 확인하는 작업 혹은 그때의 감동을 다시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나는 8년전과는 다른 또다른 감동을 느끼게 된다. 잊고 있었던 감동, 가슴뭉클함. 이런 이야기를 빚어낸 작가의 필력에 다른 감정들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책 내용과는 별도로 그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다른 감정들을 보게 된다. 아빠에게 버림받았던 남자, 버림받은 거나 마찬가지였던 요한, 그리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늘 고개를 수그리고 다녔던 한 여자의 아픈 삶이 못내 가슴에 와닿았다.

 

이런 소설을 읽을 때면 드는 생각이 내가 이 소설 속 상황에 있다면 못생긴 여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나 또한 소설 속 다른 여자들처럼 그녀를 무시하고, 그녀와는 말 한 마디 섞지 않을 것인가. 나 또한 이성을 바라볼 때 다른 것 보다는 외모를 먼저 보게 되는데. 친구들에게 농담처럼 얘기하지만, 나는 잘생긴 사람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란 걸. 마치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나도 소설 속 백화점에 근무하는 여자들처럼 속물이었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분명히 잘생긴 남자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처음 만났던 장면을 다시 읽으며 나는 잠시 충격에 빠졌다. 남자가 여자가 너무 못생겨서 그를 얼어붙게 만들었던가. 내 기억이 잘못되었던가 싶었다. 못생긴 그녀이지만, 자꾸 눈이 가는 거. 그것이 그에게는 사랑이었을까. 요한의 말처럼 동정이 아니었을까. 누구라도 요한처럼 질문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남자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못생긴 여자였으니까.

 

그 친구를... 좋아하고 싶은 거니, 아니면 좋아해주고 싶은 거니? (131페이지)

 

잠시 여기서 생각해봐야할 게 있다. 물론 배우로서 다져진 이미지겠지만, 나는 못생긴 배우 유해진을 좋아한다. 어떻게 보면 진짜 못났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가 가진 진정성, 그가 가진 유머를 사랑하는데 못생겨도 어필하는 매력이 있다는 것을 안다. 못생겼지만 여자는 책과 음악에 대한 깊이가 있었다. 많은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감정들을 그것들과 나눴던 것이다. 그녀와 그를 이어주는 요한이 셋이서 늘 만나던 켄터키 옛집에서의 대화. Beer를 Bear로, Hof를 Hope로 잘못 표기된 그곳에서 그들은 성장을 했다.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희망을 찾아 떠나는 길처럼 그곳은 그들의 희망을 향한 기착지였다. 우정과 사랑, 사랑과 사랑에 대한 끝없는 질문을 했던 곳이었다.   

 

 

「시녀들, 벨라스케스, 1656」

 

지금 이 시대는 외모지상주의다. 초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부터 성형수술을 하며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높이고자 한다. 사실 거의 대다수의 남자들은 못생긴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성격이 나빠도 예쁜 여자만을 좋아하는데, 오죽하면 남자가 따지는 조건 중 첫 번째도 이쁜 여자, 두 번째도 예쁜 여자일까. 아이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부모는 아이의 성형수술을 해주는 것 같다. 처음 읽었을 때도 든 생각이었지만, 다시 읽을 때도 드는 생각이 여자가 성형수술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물론 1985년도라는 소설의 시점상 성형수술은 지금과는 다른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그 여자가 가진 경제적 상황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마 여자가 가지 자신감 결여, 수군대는 남자들의 시선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려는 그녀가 안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부끄럽지 않은지, 또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곧 부끄러워지는 게 아닐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저 나 자신을 납득하기가 힘든 거예요. 문제가 많은 여자죠. 그리고 두려워요. 굳게 잠긴 그 방에 누군가 찾아온다는 것이... 들어올 것 같다는 것이... 언젠가 문을 열게 된다면 이제 다시는 그 문을 닫을 수도, 잠글 수도 없다는 걸 느끼고 있는 거예요. 문이 활짝 열린 채로 버려진 방을 가져야 한다면 그래서 다시 그곳에 혼자 남게 된다면... 세상의 빛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211~212페이지)

 

그녀의 말 중에 아프게 다가오는 말이, '부끄럽지 않느냐'는 말이었다. 못생긴 여자와 함께 다니는 그가 부끄럽지 않을까.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곳 보다는 없는 곳을 거닐었던 여자의 심정이 못내 아팠다.

 

누군가를 사랑한 삶은

기적이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았던 삶도

기적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361페이지)

 

한 남자의 절절한 고백이 마치 액자소설처럼 쓰여졌다.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지만, 희망(hope)으로 포장했던 그 사랑이 그래도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싶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질문을 건네받을 수 있다. ' 못생겼어도 나를 사랑해 줄 건가요?' 아내의 이 질문으로 인해 탄생한 소설. 이 질문에 대한 여러분의 답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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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7-08-10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근래 소설가 중에 박민규를 좋아하는데, 아니 했는데... 표절 시비가 나와서 조금 시들해져버렸지 뭔가요 ㅜ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정말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2017-08-10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1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10 1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eeze 2017-08-10 11:10   좋아요 0 | URL
네에. 다시 읽어도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

물감 2017-08-25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을 최근에 읽어서 그런지 리뷰만 봐도 아련해져요... 잘 읽고 갑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