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풍에 걸린 할머니를 병원에 입원시키려고 모시고 갔다가 그만 거절당하고 말았다. 만 5년동안 입원 의뢰를 해 왔고, 단 한차례도 거절한 적이 없던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병원이었다. 나는 그때 거절당한 아픔을 참을 수가 없었다. 개신교에는 무의탁 노인들과 부랑자,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병원이 없어서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무료병원에 환자들을 모셔가는 일을 사명처럼 알고 묵묵히 해오던 터였다.
나는 병들고 가난해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서 성실하게 섬김과 나눔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회봉사단체들끼리 협력하는 모습이야말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교파는 다르지만 서로 격려하면서 자신들이 못 하는 일을 해주거나, 당연히 자신들이 해야 할 어려운 일들을 하고 있다면서 서로에게 신뢰와 존경을 보내는 맘으로 하는 듯 했는데, 그만 뜻하지 않은 사건이 터지고 만 것이다.
사실 초창기부터 나느 무척 마음이 아팠다. 격려해주거나 환영해주는 사람 하나 없는 성당에 찾아가서 별별 소리 다 들으며 겨우 도장을 받아서 어려운 환자를 가톨릭 무료병원에 입원시키고 오는 날이면 자존심은 있는대로 구겨진 채 정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피곤에 지치곤 했다. 그래도 마땅히 해야 할일을 할 뿐이라고 여겼다. 상한 갈대를 꺽지 않는 그분의 마음으로,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그분의 눈으로, 무의탁 노인들과 부랑자들을 먹이고 입히며 그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내면의 아픔마저도 끌어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무료병원 하나 없는 개신교의 현실에 대해 나는 아무도 모르게 가슴앓이를 하곤 했다. 그러던 처에 병원에서 할머니를 거절하며 던진 말에 나는 급소를 찔린 사람처럼 주저앉고 말았다.
"목사님, 이 할머니를 우리 병원에 입원시킬 수 없습니다. 목회자의 부인이셨다면서요? 개신교는 뭘 어쩌자는 겁니까? 평생 목회하다가 돌아가신 목사님 부인을 이렇게 가톨릭 무료병원에 보내도 되는겁니까? 천주교는 돈이 많아서 이 병원 저 병원 운영하는 줄 압니까? 도대체 개신교는 돈만 생기면 예배당 짓고, 예배당 짓고나면 교육관짓고, 돈만 생기면 건물 짓고 땅 사들이기 바쁘니, 언제 이분들을 위해 무료병원을 세울겁니까? 다일공동체도 문제가 없는 게 아닙니다. 길거리에 쓰러진 사람들, 의지할 곳 없는 사람을 업고 오시면 할일 다 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이제라도 정신들 차리시고 무료병원을 세워야 할 것 아닙니까? 동네마다 골목마다 수십억, 수백억씩 돈 들여 지은 예배당은 그렇게 많으면서 어쩌자고 무료병원은 하나도 없는 겁니까?"
쌀쌀하게 문을 닫고 돌아선 담당 수녀의 뒷모습만 바라보다 병원복도에 풀썩 주저앉아버린 그때 일은 지금도 때때로 클로즈업되면서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곤 한다.
살아갈 날들을 위한 기도, 최일도, 참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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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도 목사님의 그 무지막지하게 큰 무료병원 개원소식을 들은 것이 언제였나... 그당시 우리성당 신부님은 이렇게 대단한 일을 한 사람이 개신교목사라는 것을 안타까워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니 참으로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 매정한 수녀님의 말 한마디가 지금의 엄청난 병원을 존재하게 했구나, 생각도 들고.
수녀님의 말이 틀린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 심한 말을 내뱉었어도, 결국은 할머니를 받아줬어야 한다. 어찌보면 세속에 대한 많은 것을 끊는 것이 정확해야 하는 성직자, 수도자들이 매몰찰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해본다.
'참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상황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일수도 있고,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 고통과 아픔을 겪어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감히 뭐라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