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사람이고, 나도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람이죠.

모두 흙에서 만들어졌죠.

로마, 비잔틴, 십자군, 터키, 영국 모두 이 땅을 차지했었죠.

지금 그들은 어디 있죠?

모두 사라져 버렸죠.

지금 소련은 어디 있죠?

사라져 버렸죠.

우리 모두는 사라집니다.

이 많은 변화를 일으키는 건 하느님의 힘이오.

오직 하느님만이 위대하시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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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사코의 팔레스타인을 읽다가 묵상을 해본다. 신앙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이 말을 받아들이는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무척 의미있는 말로 느껴진다. 시온주의자들이 내뱉는 욕에도 굴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의 힘'만을 믿고 하느님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는 그런 믿음이 내게는 없지만, 모든 것이 내 안에 있지 않고 하느님에게 있는데 왜 이 어리석은 인간들은 사라져 갈 모든 것에 집착을 하고 총을 겨누고 서로 빼앗으려고 하는지...
모두가 똑같은 사람이며, 흙에서 났으며 흙으로 돌아가는.. 언젠가는 사라져갈 사람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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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4-10-25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인디언 추장의 말과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찾아왔어요.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이래요.

"우리가 땅을 팔지 않으면 백인들은 총을 들고와 빼앗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늘을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대지의 온기를 사고판단 말인가?
신선한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단 말인가?
소유하지 않은 것들을 어떻게 저들에게 팔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 또한 우리의 일부분이다.
들꽃은 우리의 누이고 사슴 말과 얼룩독수리는 우리의 형제다.
바위투성이의 산꼭대기, 강의 물결과 초원의 꽃들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이 모든 것은 하나이며 모두 한 가족이다.
시내와 강에 흐르는 반짝이는 물은 우리 조상들의 피다.

백인들은 어머니 대지와 그의 형제들을 사고 훔치고 파는 물건과 똑같이 다룬다.
그들의 끝없는 욕심은 대지를 다 먹어치우는 것도 모자라
끝내 황량한 사막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인디언들은 수면 위를 빠르게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한낮의 소낙비에 씻긴 바람의 향기와 바람이 실어오는 잣나무 향기를 사랑한다.
나의 할아버지에게 첫 숨을 베풀어준 바람은 그의 마지막 숨도 받아줄 것이다.
바람은 아이들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

생명의 거미집을 짜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그 안의 한가닥 거미줄에 불과하다.
생명의 거미집에 가하는 행동은 반드시 그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한 부족이 가면 다른 부족이 오고,
한 국가가 일어나면 다른 국가가 물러간다. 사람들도 파도처럼 왔다 가는 것이다.
언젠가 당신들 또한 우리가 한 형제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chika 2004-10-26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에니어그램 2
리처드 로어 지음, 윤운성 옮김 / 열린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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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회심에 대한 성서의 표현은 라틴어로 revolutio(완전히 바뀜), 그리스어로 metanonia(마음의 변화)입니다. 내가 에니어그램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일은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 나는 에니어그램을 단지 심리학적인 논리로 잘못 해석하여 영적 혁명능력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실망했습니다. 나는 에니어그램이 비단 마음의 도구가 아니라 영혼의 도구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에니어그램의 목표와 방향은 영적 변화입니다. 은총의 힘에 내어맡기는 체험이 없다면 해결책도 없습니다.
.... 에니어그램은 변화의 범위와 규모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에니어그램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변화되거나 더 나아져야 합니다. 당신은 가슴깊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삶을 변화시킬 준비가 되어있지 않고 자신의 동기에 대해서 의문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아직 에니어그램을 만날 준비가 안된것입니다.
- 리차드 로어, 에니어그램 2 서문에서 따옴

새삼 에니어그램 책을 다시 읽어볼때마다 재미있다. '아~ 그래서 이런 행동을 보였던거였나?' '음, 왜 저런말을 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해'라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유형이 다른 우리들 각자의 입장과 생각을 털어놓으며 수다를 떨기도 한다. 그것 역시 재미있다.
이 책은 작년에 내가 했었던 에니어그램 피정프로그램과 비슷하게 진행된 것을 구체적으로 풀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에니어그램의 유형을 알고 다른 유형의 특징들에 대한 정보가 있는 상태에서 읽어봐야 좀 이해가 될 수 있는 책이라고 해야할까? 어쨋든 에니어그램은 혼자서 파고드는 것보다 자신과 같은 유형의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눠보는 것이 자신을 이해하는데 좀 더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의 얘기를 듣다보면 공감이 가고, 같은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싫어하는 행동양식을 그 사람에게서 발견할수도 있고 어쩌면 그것이 나의 모습이라는 걸 깨닫게 될 수도 있으니.

이 책은 성격유형에 관심이 있다고 모두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닐 듯 하다. 저자 리처드 로어 신부의 '에니어그램은 아주 강력한 영적도구'라는 말처럼 에니어그램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성격유형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책을 읽을 때는 지식을 얻기 위한 흥미로운 이론서로서가 아니라 의식을 변화시키는 도구로서 에니어그램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연구해 보기 바랍니다. 에니어그램은 영혼을 위한 양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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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 날들을 위한 기도
윤구병, 이해인 외 지음 / 화니북스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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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살아갈 날들을 위한 기도는 나를 위한 기도일까, 너를 위한 기도일까. 아니 우리를 위한 기도인것인가?

얼핏 낯익은 분들의 에세이모음집이다. 더구나 몇몇은 이름 석자만으로도 꽤나 유명한 분들이다. 책을 펴면서 그냥 흔한 얘기들이 적혀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조금 있기는 했지만 역시 함께살기를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의 말은 아주 큰 설득력이 있다.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 느껴져 좋은 글들이다.  '살아갈 날들을 위한 기도'라는 제목에 걸맞게 함께살기뿐만 아니라 절망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희망을 갖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조금씩 조금씩 나를 감동에 젖어들게 하는 글이 담겨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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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풍에 걸린 할머니를 병원에 입원시키려고 모시고 갔다가 그만 거절당하고 말았다. 만 5년동안 입원 의뢰를 해 왔고, 단 한차례도 거절한 적이 없던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병원이었다. 나는 그때 거절당한 아픔을 참을 수가 없었다. 개신교에는 무의탁 노인들과 부랑자,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병원이 없어서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무료병원에 환자들을 모셔가는 일을 사명처럼 알고 묵묵히 해오던 터였다.
나는 병들고 가난해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서 성실하게 섬김과 나눔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회봉사단체들끼리 협력하는 모습이야말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교파는 다르지만 서로 격려하면서 자신들이 못 하는 일을 해주거나, 당연히 자신들이 해야 할 어려운 일들을 하고 있다면서 서로에게 신뢰와 존경을 보내는 맘으로 하는 듯 했는데, 그만 뜻하지 않은 사건이 터지고 만 것이다.
사실 초창기부터 나느 무척 마음이 아팠다. 격려해주거나 환영해주는 사람 하나 없는 성당에 찾아가서 별별 소리 다 들으며 겨우 도장을 받아서 어려운 환자를 가톨릭 무료병원에 입원시키고 오는 날이면 자존심은 있는대로 구겨진 채 정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피곤에 지치곤 했다. 그래도 마땅히 해야 할일을 할 뿐이라고 여겼다. 상한 갈대를 꺽지 않는 그분의 마음으로,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그분의 눈으로, 무의탁 노인들과 부랑자들을 먹이고 입히며 그들의 상처를 치료하고 내면의 아픔마저도 끌어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무료병원 하나 없는 개신교의 현실에 대해 나는 아무도 모르게 가슴앓이를 하곤 했다. 그러던 처에 병원에서 할머니를 거절하며 던진 말에 나는 급소를 찔린 사람처럼 주저앉고 말았다.
"목사님, 이 할머니를 우리 병원에 입원시킬 수 없습니다. 목회자의 부인이셨다면서요? 개신교는 뭘 어쩌자는 겁니까? 평생 목회하다가 돌아가신 목사님 부인을 이렇게 가톨릭 무료병원에 보내도 되는겁니까? 천주교는 돈이 많아서 이 병원 저 병원 운영하는 줄 압니까? 도대체 개신교는 돈만 생기면 예배당 짓고, 예배당 짓고나면 교육관짓고, 돈만 생기면 건물 짓고 땅 사들이기 바쁘니, 언제 이분들을 위해 무료병원을 세울겁니까? 다일공동체도 문제가 없는 게 아닙니다. 길거리에 쓰러진 사람들, 의지할 곳 없는 사람을 업고 오시면 할일 다 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이제라도 정신들 차리시고 무료병원을 세워야 할 것 아닙니까? 동네마다 골목마다 수십억, 수백억씩 돈 들여 지은 예배당은 그렇게 많으면서 어쩌자고 무료병원은 하나도 없는 겁니까?"
쌀쌀하게 문을 닫고 돌아선 담당 수녀의 뒷모습만 바라보다 병원복도에 풀썩 주저앉아버린 그때 일은 지금도 때때로 클로즈업되면서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곤 한다.

살아갈 날들을 위한 기도, 최일도, 참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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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일도 목사님의 그 무지막지하게 큰 무료병원 개원소식을 들은 것이 언제였나... 그당시 우리성당 신부님은 이렇게 대단한 일을 한 사람이 개신교목사라는 것을 안타까워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글을 읽으니 참으로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 매정한 수녀님의 말 한마디가 지금의 엄청난 병원을 존재하게 했구나, 생각도 들고.
수녀님의 말이 틀린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 심한 말을 내뱉었어도, 결국은 할머니를 받아줬어야 한다. 어찌보면 세속에 대한 많은 것을 끊는 것이 정확해야 하는 성직자, 수도자들이 매몰찰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해본다.

'참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상황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일수도 있고,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 고통과 아픔을 겪어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가 감히 뭐라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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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식탁에는 아직 음식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무료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앞쪽 식탁의 백인 여자가 다가오더니 실례한다고 말하며 자기의 부탁을 하나 들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자기 아들은 한국에서 입양한 아이인데, 자기 부부는 아이가 출신 나라의 문화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말이면 아이를 데리고 한국 식당에 온다는 것이었다. 먼저 음식 맛을 알아야만 다른 전통문화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자기들이 젓가락질을 가르쳐도 아이가 잘 하지 못하니 아무래도 자기들의 젓가락질 방법이 좋지 않은 것 같아 나에게 부탁을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그때 나는 열과 성을 다하여 그 부부와 까아만 눈동자의 황인종 아이 앞에서 진지하게 젓가락질 시범 공연을 해보였다. 아이의 젓가락질이 이제는 능숙해졌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속 깊이 남은 것은 나의 시범을 본 다음 그 백인 어머니가 한 말이었다. 나의 젓가락질을 자세히 본 다음 그 어머니는 아이가 쉽게 이해하고 기억하라고 "젓가락은 두개로 이루어져 있지? 그러니까 음식을 집어먹기 위해서는 꼭 두개의 젓가락이 평형을 이루어야 한다. 알았지?"라고 요약을 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날 무언가를 배운 것은 그들이 아니라 바로 나였던 것 같다. 인생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더불어, 사랑이라는 것의 성실성에 대해 오히려 내가 그들로부터 배웠다.
그녀의 말처럼 젓가락은 말할 필요도 없이 두 개가 한 쌍이고, 그것이 평형을 이루어야 우리가 음식을 집어서 입 안으로 넣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또 두 개가 평형을 이루지 않으면 입 속으로는 아무것도 넣을 수가 없다. 인생이란 것도 젓가락과 마찬가지의 원리로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일찌기 불가에서 말한 것처럼 생은 시와 더불어 이루어져 있고 희망은 절망과 더불어서, 기쁨은 슬픔과 더불어서, 성공은 실패와 더불어서, 늙음은 젊음과 더불어서 있는 것이다. 크게본다면 그 둘이 크게 다를 것도 없고, 또 싫다고 해서 둘 중하나를 쫓아버릴 수도 없다. 무엇보다도 젓가락질을 할 때처럼 그 둘 사이의 심리적 평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래야만 우리가 그 무엇보다도 가장 집고 싶어하는 행복이라는 양식을 집어 마음의 속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말이 생각나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만 해도 아무도 당신을 낙오자라 부르지 않을 것이다"

-김승희, 젓가락과 사랑 중에서 / 살아갈 날들을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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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Pei 2004-10-22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hika님, 내가 이 글을 읽어 용기를 얻었어요. 감사해요.

chika 2004-10-22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애써 글 올린 보람이 있네요. 같이 힘내자구요. 홧팅~!! ^^

숨은아이 2004-10-22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