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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양심
  • 우주 순양함 무적호
  • 스타니스와프 렘
  • 14,400원 (10%800)
  • 2022-02-25
  • : 726

정말 아주 오랜만에 멋진 SF소설 한 편을 읽었다. 지금까지 읽었던 SF 소설 중 최고는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와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이었는데, 여기에 스타니스와프 렘의 <우주 순양함 무적호>(민음사, 2022)를 동일선상에 올려놓을 수 있겠다. 장르 소설에서 보기 드물게 인간 존재론에 대한 심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어서다.

 

이 작품이 출간된 때는 1964년도다. 60년대에 이러한 구상을 하고 이러한 외계 생명체를 설정할 수 있다는 자체가 경이롭다. 빈말이 아니라 진짜 2025년 동시대의 작가가 발표했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세련된 이야기다. 특히 행성 레기스3의 자연환경과 일체화가 된 외계 생명체는 기상천외했다. 에일리언과 같은 우주 괴물이나 UFO를 타고 오는 외계인도 아닌 자연 그 자체와 비슷한 무생물 기계가 진화한 결과물이라니.

 

소설 초반 순양함 무적호가 레기스3 행성에 온 이유가 적시되어 있다. 이곳 행성에 와서 연락이 두절된 콘도르호의 비밀을 밝히고자 온 것. 순양함 무적호는 아주 많은 전문가와 엔지니어들이 탑승한 거대 우주선(신기술의 집합체)이다. 이 우주선이 레기스3 행성을 탐사하면서 한 두 명씩 사라지거나 죽는 전반부 이야기는 어떤 행성에서 우주 괴물이 나오는 영화(에일리언)와 비슷하다.

 

우주선에 탑승했던 승무원이 하나씩 괴물에 당하여 없어지는 이야기와 흡사하다는 거. 그래서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어 나갈 수 있다. 탐사를 나가면 여지없이 승무원들과 엔지니어들이 실종되거나 백치가 되어서 구조된다. 왜 그렇게 되는지 모르다가 점차 콘도르호를 부숴뜨리고 승무원들을 죽이게끔 하는 실체가 드러난다.

 

헌데 그 끔찍한 사고의 원흉이 에일리언과 같은 지적 생명체가 아니라 태풍이나 지진과 같은 구름 모양의 알갱이들이다. 더 정확히는 구름과 암석에 기생하는 아주 작은 기계들. 소설에서는 처음에 ‘파리’를 언급할 정도로 작고 검은 둥근 기계로 묘사된다. 비정형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기계 소립자. 1차원적이지만 이들은 파괴되지 않고 영원히 움직이는 자연의 일부이다.

 

이 소설의 백미는 저자 렘이 설정한 이 외계 '무생물체'에 있다. 렘은 레기스3 행성의 지배자를 생물이 아니라 무생물(구름 기계)로 설정했다. 레기스3 행성은 바다도 있고 바다에 많은 생명체가 살며 산소도 지구보다 많다. (물론 메탄이 다량 섞여 있긴 하지만) 소설에서는 바다 생명체가 육지로 올라와 번성하지 못하는 이유가 구름 기계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괴상한 외계 무생물체를 무적호 승무원들은 어떻게 하면 없애버릴까를 궁리한다. 검은 구름에 휩싸이면 사람들의 지적인 부분이 완전히 사라져 백치가 되기 때문. 왜 그런지 모르지만 백치가 될 뿐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 그래서 무적호 엔지니어들과 전문가들은 이를 어떻게 퇴치할지 모색한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이 소설의 주인공 로한은 이 구름 기계를 생명체가 아닌 자연으로 생각한다. 없애버릴 적이 아니라 그 자체로 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저자 렘은 로한을 대신해서 자연과 인간의 대비를 통해 우주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의미를 진지하게 되묻고 있다. 자연재해로 인해 수만 명의 사람들이 죽게 되면 이를 어떻게 없애버릴지 궁리하는 게 얼마나 비논리적이고 우스운 생각인지 이야기로 되묻기 때문.

 

“죽은 사람에게서 레이저 총을 가져온 자신이 돌연 우습게 느껴졌다. 더욱이 무생물체만 생존할 수 있는 완전한 죽음의 계곡에서 스스로가 불필요한 존재로 여겨졌다. 여태껏 그것들은 살아 있는 생명체의 눈으로는 절대 볼 수 없었던 기이한 의식을 치렀다. 그는 방금 일어난 일에 동참했다는 사실을 공포가 아닌 경이로 받아들이면서 얼떨떨해했다. 과학자들 중 누구도 자신과 공감하지 못하리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제 로한은 실종자들의 비극을 알리기 위해서, 더불어 이 행성을 지금 상태 그대로 놓아두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기 위해서 함선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모든 것이 모든 장소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야. 그는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p316)

 

자연이 지배하는 행성에서 인간의 문명은 보잘것없고 의미가 없는 것이다. 작가 렘은 로한을 대신해서 ‘만물 영장설(은하계 중심설)’을 비판하고 있다. 무생물체만 생존할 수 있는 우주에서 인간 존재는 극히 미미하고 우스운 존재들인데 그들이 자신들만의 생각으로 자연을 정복하고 우주를 정복하려고 노력한다. 렘은 모든 장소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로한을 통해 재차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과 비슷하거나 이해가능한 것만을 추구하라는뜻이 아니라, 인간의 몫이 아닌 일, 즉 인간과 관계없는 사안에 간섭하지 말라고 주장한다. 우주의 빈 공간은 차지해도무방하지만, 수백만 년 동안 이미 생존의 균형을 이루어 실재하는 대상을 공격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방사력과 물질력을 제외하고 누구한테도,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는 이 행성의 활발하고 적극적인 존재는, 동물이나 사람이라고 불리는 단백질 복합체와 비교해서 월등하지도, 그렇다고 열등하지도 않다.” (p253)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자연(우주) 앞에서는 한갓 우스운 ‘사물’일 뿐이다. 자연을 착취하고 정복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면 결국 파멸할 수밖에 없음(‘콘도르호’처럼)을 소설은 이야기로 잘 보여준다. 그렇게 구성이 치밀한 작품은 아니지만, 재미있는 이야기 구조 속에 ‘인간 존재론’에 대한 철학적 주제를 다시금 환기해 볼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일독할 가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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