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작가다.
실키라는 작가의 다른 책 제목들도 낯설다.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난 후 다른 책들이 궁금해졌다.
단어와 세상을 보는 시선이 상당히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집이란 한글도 집(集)이자 집(house)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책 구성도 집 모양 속에 여덟 구역으로 나누었다.
현관에서 다락방까지 이어지는 공간 속에 자신의 단어를 풀어낸다.
사람마다 각자의 단어 사전이 있다는 인식 속에서 만들어진 단어집이다.
일정 부분 공감할 수밖에 없는 표현이다.
작가는 한국을 떠나 여러 나라에서 머물렀다.
현재는 프랑스에서 거의 20년을 머물고 있는 것 같다.
이 오랜 세월 동안 외국에 머문 사람이 느끼는 감각들이 단어를 통해 드러난다.
집(house)에 대한 글에서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이 단어를 새롭게 보게 한다.
읽으면서 수많은 단어의 정의에 고개를 끄덕인다.
간결하게 표현되고, 도치된 문장은 한 박자 늦게 동의한다.
그림으로만 표현된 단어에서는 잠시 숨을 고를 수밖에 없다.
작가가 이해하고 표현한 것과 나의 이해 사이의 괴리 때문이다.
이런 경우 더 오랫동안 그림을 들여다보고 이런저런 상상을 한다.
하나의 단어가 나라와 문화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랑데뷰’의 경우 그가 생각한 것과 단어의 의미가 다르다.
길게 설명이 들어가는 것은 자신의 이해를 풀어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산책’을 “명상, 다리를 움직이며.”라고 할 때 칸트가 떠올랐다.
실제 나에게 산책은 팟캐스트나 음악을 듣는 시간이다.
‘안부’를 읽고 보면서 오랜만에 전화를 한 친구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매주 만났던 사이가 이제는 몇 개월에 겨우 한 번 전화하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잘 지내지?” “잘 지내”란 단어만으로 충분한 경우도 많다.
나의 경우는 생각하는 방식의 차이보다 삶의 조건들이 바뀌었다.
‘김치’의 정의를 읽다가 한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아내가 중국 여행 갔을 때 한국에서 김치를 먹지 않던 아이들이 김치를 먹었다는 것이다.
중국 음식이 맞지 않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변한 것이다.
“당연하지 않게 되고 나서야,”란 문장은 ‘공기’란 단어로 떠올려주었다.
‘배움’이란 단어에서 나의 현실을 그대로 느낀다.
그리고 배움 대신 ‘신간’을 넣으면 나의 탐욕과 불안감이 드러난다.
다 읽지도 못할 책을 사 모은 나의 탐욕.
책 광고에 혹해 빨리 읽어야 할 것 같은 불안감.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읽는 내내 숨을 고르면서 나의 단어장을 돌아본다.
도서관이라고 한 번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