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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부시향덕
  • 함부로 사랑하고 수시로 떠나다
  • 변종모
  • 12,150원 (10%670)
  • 2020-04-13
  • : 219

<함부로 사랑하고 수시로 떠나다>는 저자가 전세계를 누비며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꼈던 모든 감정들을 시, 수필, 편지, 사진의 형태로 담아놓은 여행 에세이다. 저자는 이 책을 두고 '사람들에게 부치는 엽서'라고 했다. 글의 길이도 실제 엽서에 담길 만한 정도다. 온전한 감정을 담아내는데 사실 긴 말이 필요 없다. 작가는 여행을 하며 마주친 감정들을 72장의 엽서에 채집해 이 책을 엮어냈다.


표지를 보면 예쁘다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바다, 구름, 하늘. 이런 대상은 경이로움, 무한함, 영원함을 떠올린다. 구름은 하얀색이 아닌 붉은 빛을, 바다는 파란색이 아닌 노란 빛을 띄어 노을녘임을 짐작케하고 상단부의 홀로그램에 반사된 프리즘 편광이 무지개를 보고 있는 듯 하다. 이 디자인은 무엇을 말하고 싶을까. 아마도 이 책을 보는 독자들은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여러 이유로 당장 쉽게 떠날수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정신없이 지나간 하루의 끝에 이 책을 들었을 때 만큼이라도 드넓은 바다와 무한히 펼쳐진 하늘을 보며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 표지에 담긴 것은 아닐까. 여행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유와 여유의 눈길로 위로하고 있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인용이나 주석으로 채워진 책의 끝부분에는 작가가 여행하며 함께했던 노래 목록이 실려있다. 곡들을 눈으로 훑으니 세계를 다니는 여행가답게, 제목에 한국어 말고도 영어, 중국어, 불어, 스페인어 등도 보인다. 내가 아는 노래들이 더러 보여 반갑다. '월량대표아적심'은 영화 <첨밀밀>의 주제가였고, 'Quando, Quando, Quando'는 영화 <화양연화>의 주제가였다. 작가도 나처럼 옛날 홍콩영화를 좋아했나보다. 가사가 없는 노래 중에는 '인생의 회전목마'처럼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주제가도 있다. 가사가 있는 노래도, 가사가 없는 노래도 다양하게 보인다.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라는 곡은 얼마전 카페에서 우연히 알게되어 좋아하게 된 노래다. 이 책을 읽으며 여기 소개된 곡들을 하나씩 들어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



책 디자인이 아름답다고 소개했는데 그 내용은 더 아름답다. 남성 여행 작가지만 그 속에는 감수성 터지는 십대 소녀가 있는지 글은 너무도 서정적이어서 시집을 보고 있는 것 아닌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책의 구성은 72편의 글을 4장으로 나누어 놓았다. 책을 넘기면 좌측에 글이 우측엔 사진이 위치하고 있고, 때로는 지면이 우측으로 넘어가거나 좀더 극적인 효과를 느끼도록 앞 두면은 글로 뒷 두면에 사진을 싣는 구성을 취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 글들이 독자들의 마음이기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실제로 그의 글 속에는 한때 내가 느껸던 나의 마음도 들어있었고 내가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책은 시집과도 같아서 작정하면 하루만에 다 읽어낼 양의 글자이지만 그렇게 책을 봤다면 봐도 본 것이라 할수 없을 것이다. 말로 차마 다 담아 낼수 없는 감정들을 짧은 글 속에 압축시켜 놓았기 때문에 암호를 풀듯 읽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암호를 푸는 열쇠는 나의 기억에 있다.


이것은 마치 열린 결말의 영화와 같다. 작가가 던지는 짧은 글은 모두 우리 기억으로 재해석되어야 하는 메타포다. 글은 작가가 썼지만 읽고 있는 글은 더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다. 작가의 글을 빌어 과거 내가 갔던 곳들, 거기서 느꼈던 에피소드나 감정들, 내 추억들을 읽고 있는 것이다. 열사람이 본다면 열사람 다 다르게 읽혀질 책이다. 그래서 짧은 글임에도 작은 책임에도 내용이 풍성하다 할 수 있다. 타인이 쓴 글이지만 오래된 나의 일기를 읽는 기분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혼자라도 외로울 일 없으니 어디든 떠날 수 있다."

혼자 여행하는 것이 외롭거나 두렵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저자는 자신의 첫 여행을 떠올린다. 그것은 다름아닌 그의 초등학교 입학. 작가는 여행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길을 찾고 스스로를 보호하고 다스리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입학전 아이는 매사 엄마와 함께 했고 엄마 없이 집을 떠난 적이 없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며 혼자 등교하고 스스로 친구를 사귀며 자기만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해 간다. '스스로' 말이다. 우리는 여행이 휴가를 내고 비행기 티켓을 끊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작가는 결국 스스로에 의지해서 살아가야하는 삶 자체를 여행으로 본다. 홀로 여행하는 것이 외롭거나 두렵지 않냐는 질문에 되묻고 싶다.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야하는 인생도 어차피 외롭고 두려운 일들의 연속이 아니던가요? 그럼에도 씩씩하게 잘 살아가는 당신이기에 언제든 여행도 두려워할 것 없이 떠날 수 있습니다' 라고. 인생을 살아내고 있는 모든 사람은 어디든 떠날 자격이 있다. 그러니 그대여 너무 걱정하지 말라.


"결국은 여행도 사람이다."

같은 곳을 여행하더라도 그곳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여행으로 오는 감흥이 장소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사람으로 판가름난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학생 때 배낭여행을 가면 호텔은 언감생심,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직장을 다녀 주머니가 더 두터워 졌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게스트하우스를 찾았다. 싼 값이 아니라 사람들과 벽없이 말날수 있는 아지트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게스트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금방 친구가 된다. 좋은 음식도 필요없다. 공짜로 나온 식빵과 잼을 앞에 두고 한참을 이야기 할수도 있다. 그렇게 만난 이들과 다음날 하루를 함께 다니고, 그 하루는 그 이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짧은 기간이지만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가 된다. 그 중 몇몇은 일주일 함께 했던 인연으로 10년 넘게 이어지는 이들도 있다. 결혼하기 전까지만해도 여행은 늘 혼자 떠났다. 혼자 공항에서 시작해서 혼자 공항에서 끝나는 여행이었다. 사람들은 혼자 외롭지 않냐고 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여행은 시작과 끝만 혼자일 뿐 과정에서는 늘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을. 저자는 말했다. "홀로 길을 떠난 사람들아. 혼자가 좋아서라는 말은 하지 마라. 당신은 오늘도 누군가 돌아올 자리를 비워놓고 길을 나선다." 그렇다. 영화 <김종욱 찾기>에서처럼 우리는 여행을 떠나며 여행지에서 만날 낯선 인연을 꿈꾸지 않던가, 그게 연인이든, 친구이든. 그러니 쿨하게 혼자 떠나는 사람도, 두려움에 주저하는 사람도 떠나라, 그러면 곁에 누구든 함께 하고 있을 것이다. 오직 필요한 것은 열린 마음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들이 가능한 이곳은 불편을 여러 번 지나와야 겨우 닿을 수 있는 곳."

이 문장은 저자가 베트남 사파의 한 숙소에서 쓴 글이다. 사파는 해발 1650m에 있는 고원지대로 저자가 누워있는 숙소 아래에는 구름이 안개처럼 스믈스믈 떠다닌다. 저자는 숙소에 누워 담배를 피우며 '구름 위에 누워 구름 같은 연기를 만든다'라고 말했다. 옆에 금연 딱지는 있지만 그 아래 주인이 갖다 놓은 재떨이 또한 있다.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니 과거 인도 기차 안에서 피웠던 담배가 기억난다. 목적지까지 12시간이 소요된다던 기차는 연착에 12시간, 정차에 12시간, 총 목적지까지 36시간만에 도착하는 기염을 토했다. 정전으로 밤새 서다 가다를 반복하던 기차에 고개를 내민 햇살이 부시시 나를 깨우던 아침, 낮은 기온과 새벽 이슬에 유리는 없고 창틀만 있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정면으로 나를 때리고 주변 사람들은 얇은 천을 휘둘러감고 얼굴만 쏙 빼놓은 채 하얀 눈과 치아로 나를 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었는지 알수 없는 호기심 가득한 청년들은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기차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광경이 사뭇 낯설지만 괜찮다는 그들의 말에 우리 일행들은 담배 한대 씩을 물고 불을 붙였다. 창문으로 들어온 먼지에 까맣게 된 서로의 얼굴은 그야말로 몰골이었고 담배연기로 웃음을 가린다고 가렸으나 가렸을리 만무했다.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일들은 여러 불편을 지나와야만 해볼 수 있는 곳은 사파가 아니가 인도 기차안에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무어라 요구하지 않는 일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좋은 사람일 수 있을 것이다."

"숨을 가다듬고 나면, 삶에 치여 잠시 자신을 잊고 사는 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조차 버릇처럼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을 안다."

"그 어딘가는 어디에 있지 않다. 바로 지금 곁이거나 내 안에 있다."

연거푸 세 문장을 가져왔다. 위의 문장들은 각각 다른 세 편의 글에서 가지고 온 것인데, 모두 마음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어 묶어봤다. 여행을 다닌 시간과 거리만큼 인생의 통찰도 생기는 것일까. 작가는 마음을 쿡쿡 터트리는 글들을 아무렇지 않게 글 중간중간에 던져놓았다. 요구하지 않고 사는 삶은 바라지 않는 삶, 모든 갈등은 바람, 요구에서 온다. 그래서 모든 현자들은 그토록 바라는 마음과 욕심을 경계하라 했던 것이다. 숨을 가다듬으면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말은 명상을 떠올린다. 쫒기듣 살아가는 바쁜 일상 속에서 몸 따로, 마음 따로 정신없이 살아가지만 호흡을 매개로 몸과 마음을 하나로 연결한다는 것은 명상의 정의가 아니던가. 놀란 가슴을 쓸어 낼릴 때도, 분만을 코 앞에 둔 초초한 임산부도 본능적으로 깊은 호흡이 우리의 마음을 제자리로 돌려 놓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을 강조한 마지막 문장도 존경받는 고승들의 법문에서 얼마나 많이 마주했던 내용이던가. 하고싶은 일, 가고싶은 곳, 바라던 꿈, 해야겠다는 많은 것들을 우리는 늘 '다음에, 다음에', '이거 끝나면, 저거 끝나면' 단서 달고 차일피일 미루며 살아가지만 끝내 못했던 일들, 기억은 나는가. 우리의 삶은 지금 여기에 있다. '이번 생은 조졌으니, 다음 생에서...'라는 것은 없다. 어딘가는 어디에도 있지 않고 언젠가는 언제까지나 오지 않는다. 오직 지금, 여기에서 하고 찾아야 한다. 작가의 문장 하나하나가 주는 깊은 울림들이 조금은 전해지는가.


이렇게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전에 들었던 이야기, 읽었던 책들의 구절구절들이 생각나고 내가 갔던 과거 여행지들의 기억들도 소환된다. 작가의 글에 내 글을 덧대니 마치 작가의 엽서에 답장을 쓰는 기분마저 든다. 작가가 책 머리에 누군가의 마음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렇게 내 마음의 이야기들이 책의 피릿소리 맞추어 꿈틀거리며 솟아올랐다. 여기에서 다 다룰수 없어 못했지만 엄마의 사랑을 해를 건져올리는 것에 비유한 것과, 마을의 불빛이 어느 다른 행성에서는 별로 비춰질 것이라는 비유들은 상상력 마져 돋보인다. 여행하는 음유시인이 되려면 감성 뿐만 아니라 머리도 좋아야 하나보다.


"과거를 만드는 유일한 일은 피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문장도 벽에 걸어두고 싶은 글이었다. 이미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받아들이지 못해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스스로를 괴롭히며 살아왔던가. 일어난 일이 분명 일어난 일이 아닌 것이 될수 없음에도 어리석은 우리들은 그런 일을 일어나지 말았어어야 한다는 생각에 여전히 상처 가득한 과거가 현재를 잠식하도록 내버려 둔다. 과거를 더 이상 현재의 생명을 주지 말자. 과거를 과거로 사라지게 내버려 두자. 직시된 과거는 제아무리 혹독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림 속의 호랑이가 나를 헤칠수 없듯이 그저 과거이게 된다. 작가는 내가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길게 풀어놓은 말을 저렇게 예쁜 한 문장에 담아놓았다.



지혜로운 말을 무심한듯 툭툭던지는 작가도 왜 괴로운 일이 없고, 오래도록 혼자서 전세계를 누비고 다녔다고 한들 왜 외로움이 없겠는가. 머리로는 아닌 것을 백번 알아도 마음의 충동 한번 이기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다. 2만km 지구 반대편은 자유롭게 다녀도 머리와 가슴사이 고작 1m 남짓 거리를 마음대로 좁히지 못하는 게 사람인 걸 어떡하나. 작가의 "아! 지랄 같음 마음이여"라는 탄식 속에 저 모든 감정의 괴리와 번민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말이나 글로는 누구라도 예수고 부처다. 하지만 진짜는 실천에 있다. 사람들이 어제도 그제도 술로, 약으로 세상을 잊으려 애쓰는 것도 이성과 감성사이, 머리와 가슴사이의 거리를 좁히지 못해 그런 것 아니던가. 저자는 남이 내 마음 알아주기도 욕심, 내가 남 마음 알아주기도 욕심, 그저 평생 내가 내 마음 제대로 알고 살아도 잘 산것이라 말한다. 그래, 평생 그렇게 아둥바둥 살지마는 결국 죽을 때는 두 가지, 자기 마음 알고 죽는 사람, 자기 마음도 모르고 죽는 사람 둘 뿐이지 않을까.


나는 술을 못마신다. 내가 술을 마실수 있다면 상 하나 깔아 두고 맞은 편에 이 책을 놓고 소주한잔 마시며 다시 한장 한장 읽어보고 싶다. 만약 마음 맞는 술친구가 있다면 이 책의 한장 한장 이야기를 안주거리 삼아 추억과 알콜에 뒤엉켜 여행과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진득한 허세도 부려보고 싶다. 비록 다음날 깨고 나면 회색 빛 일상으로 되돌아가야 하더라도. 작가의 말 처럼 "더난 줄 모르게 떠났다가, 돌아온 줄도 모르게 나타나" 지난 밤 허세를 용기삼아 "일상을 힘껏 껴안"아 보고싶다. 그리고 잊지말았으면 좋겠다. 그 어딘가는 그 어디에도 있지 않듯, 여행지에도 결국 여행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늘 여행하고 있으니까, 우리의 삶은 지금 여기에 있으니까.


P.S. 엉뚱한 이야기를 하나 해보고 싶다.<함부로 사랑하고 수시로 떠나다>라는 제목에서 동사를 수식하는 부사를 살펴보자. '함부로'나 '수시로'나 '주저함 없이 자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어감이 비슷하다. 하지만 '함부로'에는 '조심성 없이 마구마구'라는 의미가 있다. 사랑앞에 너무 주저해서도 안되겠지만 무책임하게 마구마구해서도 안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수시로 사랑하고 함부로 떠나다'라는 말로 뒤바꿔 보고싶다. 연인의 사랑에 국한됨 없이 나와 인연된 모든 것들을 '수시로 사랑'할 것이며 장소의 떠남에 국한됨 없이 나를 괴롭히고 얽매는 모든 집작과 욕심으로부터 마구마구 '함부로 떠날'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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