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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er than day before
  • 아메리고
  • 슈테판 츠바이크
  • 15,030원 (10%830)
  • 2025-06-19
  • : 605


 

공교로운 타이밍에 다른 출판사에서 같은 책이 출간됐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아메리고>가 하나는 이화북스에서, 또 다른 하나는 이글루라는 출판사에서 나왔다. 나의 픽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들을 꾸준하게 내고 있는 이화북스였다. 문득 슈테판 츠바이크의 저작권이 소멸됐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50쪽 남짓한 <아메리고>는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자 아니 인식자로 알려진 피렌체 출신의 항해사이자 지리학자, 사실은 상인이었지만, 아메리고 베스푸치에 대한 이야기다. 궁금하지 않은가? 모두가 인류의 네 번째 대륙으로 알려진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라는 걸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아메리카 대륙이 콜럼비아가 아닌 아메리고 베스투피의 이름을 딴 아메리카란 말인가.

 

역시 서양 인문학에 조예가 깊은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 연원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사실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발견한 아메리카 대륙을 아시아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대항해 시대, 콜럼버스가 이끈 선단의 최종 목표는 아시아로 가는 최단 거리의 항로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콜럼버스는 자신이 발견한 대륙이 아시아라고 죽는 날까지 믿었다고 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겠지. 대항해 시대 모든 탐험가들의 목표는 항료가 넘쳐나는 말루쿠 제도에 가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달랐다. 콜럼버스에 비해 후발주자였던 베스푸치는 15세기 말 경, 아메리카 대륙의 남반부인 브라질에 상륙하면서 그곳이 아시아의 목적지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파악했다. 바로 이런 명징한 인식이 그를 신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베스푸치는 계속되는 오해와 우연의 작동으로 문두스 노부스(Mundus Novus, 신세계)를 발견한 레전드가 되었다.

 

츠바이크는 베스푸치가 그럴만한 업적을 이룬 위인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논증한다.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작동하는 법이라고 전설적 전기작가는 말한다. 아무리 뛰어난 업적을 이룬 영웅이라고 하더라도, 무명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는가 하면 바로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경우처럼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주변의 조건과 상황들 덕분에 역사적 인물이 된다는 사실 말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는 참 다이내믹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불공평하지만 동시에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메리고 베스푸치를 전설로 만든 일련의 저작들이 당시 인쇄업자들의 농간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츠바이크는 지적한다. 1497년의 항해는 1499년의 실제 항해기록에서 파생된 왜곡된 저작이라는 점이다. 그런 모순들 때문에 베스푸치는 당대 저명한 라스 카사스 사제 같은 이들에게 신랄한 비판과 공격을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베스푸치가 직접 나서서 콜럼버스의 성공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깎아 내렸던가? 그것 역시 사실이 아니다. 그 둘은 서로를 인정하는 사이였다는 점이 서간을 통해 밝혀졌다.

 

신대륙 발견 이래, 콜럼버스를 필두로 한 스페인 정복자들이 현지에서 저지른 악행들과 수탈의 역사들이 용서되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아메리고 베스푸치에 의해 강탈(?)된 대륙 이름의 어쩌면 원주인일 수도 있는 콜럼버스에 대한 재평가의 과정을 거치고, 이번에는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역습을 당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속도감 있게 다루어진다.

 

내가 주관적으로 판단해 볼 때,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역사의 무대에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자리에 오해와 우연 그리고 타의에 의해 올라간 대표적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이룬 업적에 비해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아메리카” 대륙에 이름을 붙일 정도는 아니었단 말이다. 물론 당대의 라이벌이었던 콜럼버스가 하지 못한, 새로운 대륙에 대한 인식은 탁월했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모든 것을 고치겠다고 아메리카 대륙을 콜럼비아라고 부르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않을까. 잘못된 것도 역사의 한 부분으로 수용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광기와의 우연의 역사> 시리즈에서 츠바이크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자신의 놀라운 관찰력과 분석력을 보여준 바 있다. 이번 <아메리고>에서도 오해와 우연이 빚어내는 놀라운 역사의 드라마에 대한 자신의 접근 방식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내가 이래서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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