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이 살아나는 게 희망의 시작
기진맥진 2025/04/1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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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당탕탕 농촌 유학기
- 이봄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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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 - 20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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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었다. 잘 쓰신 동화라 생각했다. 근데 농촌 유학에 대해 내가 잘 모르는 점이 있다. 온갖 지원을 해주면서 농촌 유학을 유치하는데, 그게 진짜 농촌에 도움이 되는지. 그게 궁금하다. 농촌 유학을 가는 집들 중 “살아보니 좋더라” 하면서 귀촌을 하여 그곳에 정착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 같다. 말하자면 단기간 머무르다 다시 자신들의 도시 터전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움이 될까? 유학을 가는 그 아이와 가정은 결단만 한다면 자연 속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며 확실히 좋을 거다. 하지만 그 아이를 잠깐 품었던 농촌은.... 달라지는 게 있을까? 폐교를 막는 것? 물론 그것도 중요하긴 하지. 일정 수준 이상의 인원이 있어야 유지가 가능하니, 단기간이라 하더라도 그 유지의 역할을 해주는 건 도움이 되는 것일까?
이런 걱정을 뒤로 하고, 실화에 가까운 이 동화의 내용은 참 흥미로웠다. 페이스북 친구 중에 작년과 올해 바로 이 책의 배경인 구례에서 농촌유학을 하고 계신 분이 있다. 그분이 올린 사진을 보며 늘 감탄하고 있던 중이라 도서관에서 이 책을 보고 당장 집어왔는지도 모르겠다. 부러워는 하면서도 나한테도 그런 결단이 가능할까 생각해보면 그건 아닐 것 같다. 일단 온 가족이 터전을 옮기는 것은 불가능해서 부부 중 한 명이 남고 한 명이 자녀를 데리고 가야 하는데, 내가 가는 역할을 맡을 자신이 없다. 촌락에서의 나는 정말 부진아 중의 부진아일 것이고, 벌레 한 마리에도 벌벌 떠는 의존적인 사람일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보니 서울서 나고 자란 나는 진짜 뼛속까지 도시 사람이구나, 나같은 사람이 너무 많은게 바로 문제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 말한 페친분은 부부가 번갈아 휴직을 하며 자녀들을 인솔했고, 주말에는 나머지 한 명이 먼 길을 달려 합류한다. 이와같이 일단 부모의 결단과 실행력이 있어야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책에서는 엄마가 허리디스크로 웹디자이너 회사를 그만두며 제주도 1년살이냐, 농촌유학이냐를 저울질하다 농촌유학으로 결정했다.
이렇게 하여 화자인 려한이와 여동생 리유는 지리산 자락의 한 소규모 학교로 전학을 왔다. 1학년인 리유는 동네 할머니들과 함께 공부를 하고, 5학년인 려한이네 반은 총 4명인데 그중 둘이 농촌유학생이다. 레레라는 여학생은 피부가 검어서 려한이가 “한국말 잘하네. 어느 나라에서 왔니?”라고 물었다가 졸지에 편견을 가진 아이가 되어 버렸다. 레레 엄마가 나이지리아 사람이긴 하지만 레레는 여기서 나고 자란 아이였던 것이다. 레레 아빠는 이 마을 이장님이었다.
기대한 대로 이 학교 학생들은 혜택도 많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과 체험의 기회도 많았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나는 이 학교 교장선생님을 비롯 교사진들이 대단해 보였다. 나처럼 소통 범위가 좁고 평범한 사람에게는 안 맞는 일이었다. 거의 모든 활동이 마을과 연계되어 있었고(벼농사 등등), 자전거 완주 프로그램처럼 나도 못할 일들은 너무 난이도가 높았다.
그래도 부러웠던 것은 지리산과 섬진강이라는 아름다운 자연환경... 퇴직하면 좋은 계절에 이곳부터 여행해보고 싶다. 구례는 나 아주 어릴 적, 전라선 기차를 타고 외갓집인 광양에 가려면 순천에서 내렸고, 그 전 정거장이 구례여서 이름이 옛날부터 익숙했던 곳이다. 하지만 익숙할 뿐 가보지는 못한 곳.... 조만간 꼭 가보고 싶다. 나도 자녀를 이런 곳에서 키워봤더라면 아이들 마음에 평생의 아름다운 기억이 깔렸을 것 같다. 망설이는 분이 계신다면 등떠밀고 싶도록 부러웠다.
주변환경 뿐 아니라 학교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중에, 또 몇명 안되는 아이들끼리 부대끼는 동안 훌쩍 자라나는 려한이의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실수도 많이 하고 실패도 했지만 그 가운데서 일어서고 깨닫고 점차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려한이를 보는 즐거움이 컸다.
매우 구체적인 상황을 그린 동화여서 약간 홍보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는데 워낙 내용이 좋아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홍보여도 좋다. 이 사례가 좀더 많아지면 좋지 않을까. 그리고 그중에 촌락을 사랑하고 그곳에 뿌리를 내리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한다면 그것이 바로 희망의 시작이 될 것이다. 여기가 아직은 희망이 남아있는 나라이길 바라며 이 책을 소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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