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캔>을 쓰신 은경 작가님의 역사동화가 나와서 읽어보았다. 딱 봐도 어린이날에 맞춰 출간했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고 ‘어린이날’을 만든 방정환 선생님이 주인공인 역사동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근데 나의 진부한 예상과는 매우 달랐다. 아주 신선했다는 뜻이다. 방정환 선생님을 염두에 둔 인물이 야학 선생님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성도 달랐고 주인공도 아니었다. 주인공은? 어린이들! 읽고 나니 당연한 것이었는데 읽을 때는 매우 신선했다.
배경은 일제강점기 효창원과 그 주변 마을이다. 이곳에 일제가 골프장을 만들었다는 것도 이 책을 읽고 알았다. 골프라는 운동은 지금도 나에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운동인데, 100년도 전에 만들어졌고 조선의 아이들이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는, 즉 캐디 노릇을 했다는 사실이 참 낯설었다. 역사동화는 이렇게 한가지 단서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 듯한데, 나는 그걸 잘 모르고 있었다는 걸 읽을 때마다 느낀다.^^;;;
이 동네의 아이들 둘이 중심인물로 나온다. 근주와 태용이다. 근주는 부모님이 안 계시지만 나이 차이가 있고 야무진 언니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태용이는 집안의 소년가장이다. 아버지는 독립군으로 추정된다. 할머니는 편찮으시다. 일찍 어른이 된 듯한 태용이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한다. 효창원 골프장에서 일하는 소년도 바로 태용이다.
일하는 태용이에 비해 근주는 아직 어린아이라 할 수 있다. 비가 많이 온 다음날 근주는 떠내려온 서양 인형 하나를 줍는다. 함께 인형놀이를 할 친구가 없어 심심해하던 근주는 골프장 근처 숲에서 또래 소녀 한 명을 만난다. 그런데 하필 일본 소녀였다. 이름은 키코.
얘가 못된 애로 나오면 마음껏 미워할 텐데 그렇지가 않다는거.... 키코는 근주가 주운 인형과 같은 종류의 인형을 갖고 있다고 반색하며 세라(인형이름)가 친구를 만나면 좋아할 거라면서 같이 놀기를 청했다. 그러잖아도 인형놀이 친구가 필요했던 근주는 금방 친구가 되었다. 세라라는 이름은 소공녀에서 따온 것. 둘은 인형을 가지고 소공녀 놀이에 푹 빠졌다. 태용이는 질색을 했지만.
침략국의 아이지만 키코에게도 아픔이 있었다. 오지랖 넓게도 근주는 키코를 도와주고 싶어한다. 태용이는 “불쌍한 건 우리야, 이 바보야.” 라며 화를 낸다.
“나한테 일본인 아이를 도와주라고? 우리 아버지가 왜 집을 떠났는데! 우리 엄마가 왜 일본 사람 집 식모 노릇을 하고, 우리 할머니가 왜 병이 났는데. 내가 학교도 다 못 다니고 일하러 다니는 게 다 뭣 때문인데!”
맞는 말이다. 하지만 세상일이 맞는 말대로만 되던가. 함께 지내며 셋은, 아, 야학 선생님까지 넷은 서로를 이해하는 사이가 된다.
마지막에 편찮으신 태용이 할머니 생신날을 위해 아이들이 잔치(공연)을 준비하는 데서 야학선생님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할머니께 들은 이야기로 우리말의 유희를 잘 살린 말놀이 ‘꼬부랑 할머니’ 공연. 풍자가 담긴 ‘토끼의 재판’ 연극 공연. 거기엔 일본인 소녀 키코도 함께 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인 ‘어린이 만세!’도 함께 외친다.
어린이날 연휴가 시작되는 날 이 책을 읽으며, 시기성도 매우 좋지만 어린이들이 주역이 되어 엮어간 스토리도 새로워서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버티며 성장해 나가는 아이들의 건강함이 느껴졌다고 할까. 그런데 요즘의 아이들은........ㅠㅠ 그래도 아직까지 ‘이야기’가 아이들에게 조금의 희망이지 않을까. 방정환 선생님도 그리 생각하셨듯이. 교직에서 남은 날들 얼마 안되지만 이 역할에 마지막까지 충실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