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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진맥진님의 서재
  • 우리들의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 율리 체 외
  • 13,500원 (10%750)
  • 2024-07-10
  • : 7,086
두 분의 작가는 모두 법학 전공자이다. 그리고 헌법재판소 판사라고 한다. 그런 분들이 쓰신 동화라... 역시 자신들의 분야를 잘 살려냈다. 재판의 과정과 역할을 잘 알 수 있고, 아이들 사이의 문제와 관계를 그려낸 서사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추리 쪽으로는 좀 시시했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이긴 한데, 범인이 너무 예상 가능했다. 심지어 나는 독자들의 눈을 돌려 놓으려는 트릭으로 배치한 조연이겠지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 인물(?)이 바로 범인이었다니. 가만있자. 그러고보면 내가 당한 건가? 역시 작가들이 한 수 위?ㅎㅎㅎ 어쨌든 추리로서의 재미는 미흡했다. 하지만 이 책은 탐정동화가 아니니까.

독일 어느 학교의 6학년 교실이 배경이다. 반장인 마리에는 엄마가 거의 작품 수준으로 매일 공들여 싸주시는 샌드위치에 엄청난 자부심이 있다. 다른 아이들 샌드위치가 땅콩버터나 누텔라를 바른 수준이라면 마리에 것은 전문점 수준이랄까? 여기서 궁금한 점. 이렇게 엄마들 솜씨가 비교되게 집에서 샌드위치를 싸온다니. 독일 학교는 급식이 없나? 전국이 일괄적이지 않은걸까? 어쨌든 우리나라처럼 급식에 진심인 나라는 없다고 본다. 그러니 지나친 요구보다는 감사히 먹는 태도가 더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도시락을 싸와서 먹게 한다면 이로 인한 엄청난 부정적 담론들이 쏟아져 나올테지. 다른 나라들이 훨씬 허술(?)하구나 느낄 때가 많은데 이것도 그중 하나.

이상은 작품에서 그닥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고, 지금부터가 시작. 마리에의 그 훌륭한 샌드위치가 없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리에는 인기도 있고 리더십도 있는 학생이라 이 사건은 금방 학급 전체의 관심사가 된다. 경찰의 아들인 토르벤은 수사를 자청해서 나섰고, 슈퍼걸 삼총사는 호들갑을 떨며 주변을 맴돈다. 이들은 콘라트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얼마전에 전학왔고, 말이 없고 친구도 없는 아이였다. 그는 인정도 변명도 자기변호도 하지 않는다.

아이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설정이겠지만, 작중 교사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사건을 의뢰해도 도움을 주지 않고 기본적인 수업도 제대로 못해 시간을 때우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어떤 교수님이 독일 교육을 그렇게 극찬하던데 어째 저렇게 허술한게 가능하지? 난 저렇게 대책없이는 불안해서 학생들 앞에 절대 못서는데, 물론 우리나라에도 수업준비 미흡한 교사가 없진 않겠지만. 어쨌든 이야기속 학교의 모습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의외인 점이 무척 많았다.

부각되는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의 고민과 생각, 시도와 교정, 실천의 힘으로 마지막까지 무사히 이르렀다는 점이다. 그 사이 아찔한 점이 무척 많았다. 특히 범인으로 지목된 콘라트에게 행해진 차별과 폭력은 그 양상이 너무 심각했다. 언어폭력, 사이버폭력, 심지어 나중엔 신체폭력까지 가해졌다. 이 모든 것을 콘라트가 묵묵히 감내하고, 나중에 누명이 벗겨지고 관계가 회복되는 것에 만족하며 용서하고 넘어가는데 이것은 어떻게 봐야할까? 늘 이런 면에 노심초사하면서 살아가는 소심한 교사라선지 그냥 넘어가지지 않는 장면들이 꽤 있었다.

뭐니뭐니해도 이책의 백미는 후반부. 아이들이 재판을 열기로 합의하면서부터이다. 처음엔 반장인 마리에가 판사를 맡았다가 정당한 이유로 취소되고 그동안 전혀 부각되지 않았던 베니샤가 판사로 추대되는 과정도 인상적이다. 평소에 학급일에 거의 관여가 없던 미카가 변호인으로 나서서 활약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재판의 과정에서 아이들은 그동안 자신들의 속단과 그에따른 행동이 너무 성급하고 단계가 무시되었다는 것을 깨달아갔을 것이다.

두번째 백미는 이야기 뒤의 부록이다. 이 부분은 정보(비문학)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분량이 제법 된다. 재판 절차와 법 개념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어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많은 참고가 되겠다.

이 책을 읽으며 교과전담으로 6학년 사회를 가르치던 추억이 떠올랐다. 2학기 정치 단원 '법원의 역할' 차시에서 모의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을 하느라고 시나리오를 써서 진행하던 기억. 이책이 있었다면 조금 더 잘 쓰지 않았으려나.ㅎㅎ 이 책 확인해보니 내 짐작보다 판매지수가 상당히 높은데, 여러 독자들을 만족시키는 요소들이 다양하게 있어서인가보다. '법없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이 일반적 사람을 칭하는 것이 아닌 바, 인간 세상에서 법과 재판은 인간의 한계 내에서 최선의 제도라 하겠다. 다만 절대적이지 않으니 개선의 고민이 지속적으로 있어야 하겠지. 이 책은 사회의 제도를 처음 배우는 어린 시민들에게 재미있고 유용한 책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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