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어주는 한 사람
기진맥진 2025/05/28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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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금 고라니
- 김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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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 - 2025-05-15
: 595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시던 작가님이라고 하는데 그것과 관련있는지 아닌지는 내가 모르지만 만화를 읽는 느낌이 여러군데서 난다. 펜선이 돋보이는 그림체도 그렇고, 인물의 표정과 동작표현에서도 그렇다. 읽기 편하고 슬며시 웃음이 나며 은은한 감동도 있는 그림책이다.
배경이 시골 마을인 것도 좋다. 더구나 호란이네 집은 마당이 있는 1층 단독주택이다. 집을 나서면 논과 밭, 산을 다 볼 수 있는 동네. 어느날 호란이는 혼자서 고라니와 마주쳤다. 하교길인듯 책가방을 멘 채였다. 호란이 눈에 보인 고라니는 ‘황금 고라니’ 였다. 이 말을 하자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가족도 친구들도. 오히려 놀림만 당하고 호란이는 화가 잔뜩 났다.
오직 한 사람 할아버지만이 호란이 말을 믿어준다.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할아버지는 어느 주말 풀이 죽은 호란이에게 산에 가자고 제안하신다. 함께 고라니를 찾으며 할아버지는 황금 고라니를 보면 바로 소원을 빌어야 한다고 알려주신다. 해가 뉘엿하도록 고라니는 눈에 띄지 않고, 돌아가려는 바로 그 때! 두 사람은 보았다. 황금 고라니를! 이번에는 어미와 새끼로 보이는 두 마리였다. 잠깐 눈이 마주쳤던 고라니는 뒤돌아 달려갔다. 깜짝 놀라 정신이 없었던 호란이는 뒤늦게 소원을 안 빌었다는 것을 떠올린다. 하지만
“할아버지는요?”
“우리 호란이 소원이 이뤄지는게 할아비 소원이지.”
이렇게 하여 할아버지는 놓친 손녀의 소원을 되살려 주신다.
황금 고라니의 정체가 무엇인지 작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로 있었다는 것인지, 호란이의 상상이 만들어낸 것인지. 내 느낌으론 오후의 햇살이나 저녁노을에 비친 고라니의 모습이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싶은데.... 말하자면 빛의 예술? 하지만 어느 쪽이라도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다. 손녀의 소원을 지켜주신 할아버지, 아무도 믿지 않을 때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이 되어주신 할아버지의 이야기니까.
“이제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도 괜찮다.” 이 마음이 오기까지가 참 중요하다. 그때까지 그 단 한 사람의 존재는 참 중요하다. 마지막 장은 “내 소원은......” 하며 말줄임표로 끝나는데, 아주 여운이 많이 남는 결말이다. 마주보고 있는 고라니의 땡그란 눈이 궁금해하는 어린이 독자들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혹시 소원을 되살려 주신 할아버지에 대한 소원이 아닐까? 이렇게 마음은 돌고 돈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일 뿐, 얼마든지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겠다.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책이라는 뜻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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