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오쿠다 히데오를
기진맥진 2025/05/31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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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웰컴 투 탄광촌 이발소
- 오쿠다 히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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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 - 2025-02-07
: 1,278
동네 도서관에 신청책이 들어왔다고 문자가 와서 찾으러 간 김에 신간코너를 살펴봤다. 담주에 휴일도 있으니 소설책 좀 빌려볼까 하고. 그랬더니 오쿠다 히데오가 눈에 띄는게 아닌가. 나는 소설을 잘 안읽는 편이지만 오쿠다 히데오는 여러 권 읽었다. <남쪽으로 튀어>를 제일 먼저 읽었고 <인더풀>, <공중그네>로 옮겨갔는데 공중그네 읽으면서 어찌나 웃기던지 그 느낌이 생생하다. 리뷰를 안써놔서 내용은 다 까먹고 와, 뭐가 이렇게 재밌어 하던 느낌만 남아있다.
이 책을 대출해놓고 보니 개정판이네. <무코다 이발소>라는 제목으로 8년 전에 나온 책을 다시 펴냈다. 작가의 다른 책들에 비해선 인기가 적은 책이었던 것 같은데 왜 개정판이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눈에 띄어 읽게 되었네. 전작들만큼 유머가 세진 않지만 은은하게는 깔려 있었고 재미도 은근히 있었다. 공감할 것도 많았다. 구판을 검색해보니 평점도 별로 안좋고 재미없다는 반응도 꽤 있는데, 세대가 다른 것 아닐까? 주인공 야스히코 같은 중늙은이(50대) 또래라면 대부분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위로는 연로하신 어머니가 계시고, 아래로는 좌충우돌하는 젊은 성인 자녀가 있는 세대.
그와 내가 다른 점은 내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평생을 살았고 도시를 떠나서는 도저히 살 자신이 없다는 점이다. 그는 홋카이도의 도마자와라는 작은 산골마을에서 25년째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다. 도마자와는 한때 탄광 덕에 번성했으나 이후 급속히 쇠퇴하여 젊은이들이 다 떠나고 장래성이 보이지 않는 마을이다. 일본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이 자주 나오는데 이 상황 역시 우리나라의 어떤 지명들과 바로 연결할 수 있을만큼 유사하다.
그래도 소설이라 그런지, (소설이라 그런 거겠지? 일본의 촌락 문제가 우리보다 가벼워서는 아니겠지) 작지만 꽤나 낙관적인 희망을 보여준다. 그것이 이야기의 역할이기도 할 것이다. 문학까지 죽어라죽어라만 한다면 누가 희망을 입에 담을 것인가. 현실을 타개하려 몸부림을 쳐보는 것은 지레 포기하는 것보다는 백번 낫다. 몸부림을 치는 동안만이라도 더이상 깊이 잠기지는 않는다. 이 책에서는 야스히코의 아들 가즈마사가 좌충우돌 대책없는 희망의 대표주자라 하겠다. 그 희망은 때로 한숨나오고 한심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결국 여기에서 위로와 든든함을 얻는다. 자기 입으로는 비관을 말하면서도 희망을 믿는 존재에게 기대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인가.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도 나오는 것이 '촌락의 문제'이다. 고령화, 일손부족, 문화적 인프라와 시설 부족, 이런 문제는 양극화를 더욱 부채질하여 문제를 심화시킨다. 여기에 무슨 대책이 있겠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에도 없는 말로 수업을 했었지. 이 책이 촌락문제 해결의 깃발을 휘두르는 책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와 유사한 문제를 전반에 깔고 있는 책이라 내겐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촌락 문제를 바탕에 깔고 작가가 주로 보여주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다. 감정에 크게 휘둘리지 않고 점잖은 편인 야스히코가 무게중심처럼 가운데 서서 다양한 이웃들의 행동과 심리를 보여준다. 몇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연작소설 형식의 이야기다. 거기엔 도시에 나갔다가 가업을 잇겠다며 돌아온 아들의 이야기(무작정 좋아할 수 없어 착잡한 부모의 마음 포함)도 있고, 마을 재건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공무원도 나온다. 어느날 쓰러져 실려간 여든 노인과 그 가족의 이야기는 누구나 겪어야 할 현실적 어려움을 일깨운다. 40세 농부 총각 다이스케 씨가 중국인 여성들과의 선자리에 나가 겨우 신부를 구해와 가정을 이루는 모습 또한 이제 흔한 사례이다. 엄청나게 아는 척하는 이웃들과 엄청나게 숨고 싶어하는 다이스케 씨의 줄다리기를 보며 내 성격을 다시 상기하게 됐다. 나는 백퍼 다이스케 쪽인데. 도시의 익명성이 나에게는 너무나 편한데, 이걸 벗을 수 있는 날이 나에게도 오려나.
그런가하면 오래전 마을을 떠났던 사나에가 40대 초반의 요염한 술집 마담으로 돌아와 야스히코 또래의 중늙은이들, 그보단 젊지만 중년인 남자들이 신경전을 벌이는 이야기, 마을이 영화촬영지로 정해져 한때 활기를 띠는 이야기 등은 웃음과 동시에 보통 사람들의 찌질한 심리를 잘 보여준다. 욕할 것까진 없는 딱 그만큼의 찌질함. 우리는 거의 모두 찌질하니까. 마지막엔 이웃의 자랑스러운 젊은 아들이 수배범으로 뉴스에 나오는 아프고 충격적인 사건까지.... 하지만 이 사건의 결말이 이 책 전체의 결말이 되는 히데오 식의 어둡지 않은 결말. 난 괜찮았다.
난 영화도 본 게 많지 않은 사람인데, 그중 몇편 본 일본영화 중에 이렇게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잔잔한 영화들이 있었다. 이 책도 꽤 재미난 영화가 될 수 있어 보이는데 왜 안 만들지? 혹시 나왔는데 내가 모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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