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만 담담한 응원으로
기진맥진 2025/06/03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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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옥 작가님의 페북에서 이 책이 나온 것을 보고 집근처 도서관에 신청했다. 작가님과 페친은 아니고, 작년에 이분의 책 두 권을 인상깊게 읽고나서 내가 유일하게 하고 있는 sns인 페북에서 팔로우를 했다. 그래서 가끔 근황을 보게 된다. 이 책은 단독저서가 아니고 어떤 강연에서 모였던 다양한 작가들이 의기투합하여 한꼭지씩 써낸 에세이집이다. 이들의 공통된 정체성을 말하자면 마이너라고 할까. (본인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타인인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실례인 것 같고, 사실 메이저와 마이너의 구분이 뭔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기엔 다들 넘치도록 훌륭한 작가님들이시니.... 다만 엄청나게 고생하셨다는 것, 인생이 가시밭길이었다는 것 정도는 공통점이라 하겠다.
김미옥 작가님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미오기전에서 충분히 맛봤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는 어린시절 가정폭력의 기억이 조금 더 묘사되고 있었다. 칼에 대한 무의식이 성인이 되어서도 오랫동안 그를 지배했을 정도의 폭력. 사람은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도 없고 가족을 선택할 수도 없다. 그러니 가족에 의한 악몽은 그렇게.... 다른 곳을 바라보며 다른 것으로 필사적으로 씻어내야 한다. 나라도 살려면 말이다. 가족의 희생과 사랑은 많은 작품들의 소재가 되곤 한다. 최근 것을 들자면 ‘폭싹 속았수다’ 같은 것. 하지만 그게 먼나라 이야기인 사람들, 남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릴 때 어깨를 으쓱하며 씁쓸함의 눈물을 삼켜야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나이 먹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냥 평상시에 못잡아먹어서 안달인 것처럼 투닥거리다가도 위기시에는 서로 돕는 정도라면 중간은 가는 것이다. 아니 중간보다 조금 더 위? 하여간 속된 말로 가족이 원수인 집들은 얼마나 많은가. 우리 교실을 거쳐간 많은 아이들 중에도.....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야 하잖아. 가족 트라우마 때문에 망가진 사람들을 비난할 수는 없겠으나, 망가짐이 필연은 아니라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작가님이 온갖 악몽에 지지 않았듯이. 쉽지는 않겠지만
두 번째 하서찬 작가님은 언젠가 한번 이름을 본 것 같았다. 혹시 내가 본 어떤 동화를 쓰셨나? 하고 봤더니 맞았다. 작품 중 웅진주니어 문학상을 받은 <빨래는 지겨워>라는 동화가 한 권 있는데, 내가 그걸 아주 인상깊게 읽어서 리뷰를 자세히 써놓은 게 있었다. 그 리뷰의 제목이 ‘가족이 주는 상처에 대한 기발한 상상력’ 이었다. 내가 작품을 제대로 읽긴 읽었구나.... 작가님의 가족 이야기를 읽고 보니 3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책 전체가 왜 시종일관 그 느낌이었는지 이해가 간다. 리뷰 중 이런 말도 적어놓은걸 보니, 작가님이 얼마나 자신의 경험을 작품에 반영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이러한 아이어른 밑에서 자라는 아이 중 내적 힘이 강한 아이들은 이 책의 주인공들처럼 어른아이가 되어 부모가 엉망진창으로 헝클어놓은 판을 애써 제자리로 돌리거나 지킨다. [빨래는 지겨워]속의 아이는 때로 학교도 못가고 빨래를 한다. [악어가 된 엄마 아빠]속의 아이는 사람들이 악어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악어우리를 지킨다. 정말 안쓰럽고 대견하다. 이런 아이들을 바라보는 제3자는 기도한다. 제발 저 아이가 한계에 이르기 전에 부모가 철이 들기를. 혹은 아이가 더 철이 들어 자신의 삶과 부모의 삶을 이성적으로 분리하기를.”
여러 경험들을 종합해 보건대 전자의 경우는 거의 없어 보인다. 사람 버릴 순 있어도 고칠 순 없다더니. 저자들은 모두 애써 후자에 이른 경우라 할 수 있겠다. 특히 이 작가님의 아버지가 가족 전체에 끼친 해악은 상상을 초월했다. 남편은 돈사고를 쳤고, 그 와중에 글을 써야 먹고 사는 작가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그런 일을 겪으면서 수상작도 쓰시고 하셨네. 바라기는 그 일들이 경제적으로도 좀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다. 우리 집안에도 작가가 한 명 있는데, 그래서 그게 돈이 되기 얼마나 어려운지 어느정도는 알고 있다. 돈이 안되는 일에 지망생이 이토록 많은 직종이 또 있을까. 글을 쓴다는 건 대체 어떤 열망일까.
세 번째 김정배 작가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신춘문에 200번 응모? 어떤 열망이 그 수많은 시도를 가능케 했을까. 결국 작가님은 스스로에게 ‘원고청탁’을 했고 그에 맞추어 성실한 글쓰기를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시도를 했는데 그건 ‘왼손으로 그림 그리기’ 였다. 나같은 사람이 주변인이었다면 참 쓸데없는 일도 가지가지 한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도 또한 꾸준히 하자 의미가 생겨났다. 전시회도 열렸고, 그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도, 위안을 얻는 사람도 있었다. 사는데는 참 정답이 없다. 다만 흔들리지 않으려면 본인의 주관이 뚜렷해야 하겠다.
네 번째 김승일 작가님의 이야기는 너무 아팠다. 학교폭력을 당하던 그 고통이 몸과 마음 모두 생생하게 다가왔다. 신체의 고통과 더불어 두려움, 수치심, 자괴감까지.... 그 시기를 그냥 버텨냈다고밖에 말할 수 없겠다. 어떻게 견뎠을까.... 그때의 아이에게 어른으로서 미안하다. 문학으로 승화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던 걸까. 그 가해자놈은 지금쯤 천벌을 받았을까. 나라면 평생 그놈을 죽이는 상상을 하면서 살 것 같다. 하지만 작가님은 시를 썼고, 학생들에게 강연을 다닌다. 자신을 연 그 간절함에 대한 반응들이 도착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다정한 마음을 지닌 자기 자신을 잘 지켜냈다. 오래오래 뒤척여왔을 그의 아픈 마음들을 깊이깊이 헤아려본다. 다정함을 지켜낸 마음 위에, 다정함을 지켜낸 마음이, 노을처럼 포개어지는 저녁이다." (169쪽)
참혹함을 이겨낸 그 다정함은 얼마나 단단한 것일지 나는 감히 상상도 못하겠다. 그 다정함이 널리널리 가서 닿기를 바란다.
아픈 이야기 전에 이 작가님이 천문학자 지망생에서 문학도로 꿈을 바꾸게 된 중딩시절 이야기는 미소지으며 읽을 수 있었다. 그의 글에 대한 선생님들의 전폭적인 칭찬에 고무되는 모습에서 순수한 소년의 모습이 떠올랐다. 선생님들의 칭찬은 정확했네. 이렇게 아름다운 시인이 탄생했으니.
다섯 번째 박지음 작가님이 동질감을 표한 분은 김미옥 작가님이다. 두사람은 어떤 행사의 주인공과 사회자로 만났는데, 일곱째로 태어난 딸, 부모가 버리고 싶어했던 딸, 존재의 효용을 증명하려 악착같이 살아낸 삶 등에서 신기하게도 일치했다. 작가님은 그런 자신을 '바리데기'에 비유했다. 이 세대까지는 그래도 이렇게 신통한 강단이 존재했던 것 같다. 그러니 용서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참 슬프고 두렵다.
친구 이야기, 친구 같은 사촌과 형제 이야기에도 공감했다. 도저히 안될 것 같은 일정 속에서 어거지로 떠난 여행에서 세상 풍파 날려보내며 하나되었던 그 마음을 기억한다. 추억과 아픔을 함께한 가족(친척)은 친구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 강윤미 작가님은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한 시인이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육지로 대학을 오면서 홀로 외로운 시간을 많이 보냈다. 글쓰는 감성이 탁월하면서도 예민하고 여린 감수성을 가진 분이었던 것 같다. 어릴때부터 타고난 사람이 있더라고. 하지만 그는 신춘문예 당선과 함께 경단녀(?)가 되었다. 아이들을 낳고 조력자 없이 양육해야 하는 형편이었기 때문이다. 양육에 지친 일상과 예리한 감수성의 부조화는 그를 꽤나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던 것 같다.
시골에 살던 어린시절, 잠깐 맛보았던 피아노 레슨에의 미련을 평생 갖고 가는 모습이 나랑 비슷했다. (나는 아예 맛도 못봤지만) '취미로 하고 싶진 않아서' 시작하길 망설인다는 말이 뭔지 알것 같으면서도 나랑 다르다. 나는 그냥, 아름다움을 능숙하게 표현하고 그 표현에서 나오는 기쁨을 누리고 싶다. 즉 예술의 소비자 뿐 아니라 생산자도 되고 싶은 거다. 재능이 없으니 이생망이긴 하지만. 그래서 난 작가님도 부럽다. 누구나 못가진 것을 동경하며 사는 것 같다. 아직은 가수로 치면 싱어게인(무명가수전)에 나올 작가인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시라는 장르 자체가 찾는 이가 거의 없는 외로운 분야이기도 하지만 작가님의 꿈과 독자가 만나는 접점이 많아지길 응원하고 싶다.
성공한 인생이란 무엇인가. 젊은이들이 죽음처럼 두려워하는 실패란 무엇인가. 주저앉아버리지 않았다면, 나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애쓰고 있다면 지금도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 인생이라 생각한다. 그 발자국들이 결국 어떤 무늬로 남을지는 아직 모르는 것이다. 추스르고 다시 내딛는 수많은 발걸음에 이 책이 응원을 보내고 있다. 솔직하고 담담한 자신들의 이야기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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