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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진맥진님의 서재
  • 열세 살에 히어로는 무리지만
  • 구로노 신이치
  • 12,600원 (10%700)
  • 2025-02-15
  • : 274
오랜만에 동화가 재밌게 느껴졌다. 다시 동화를 열심히 읽어볼 시기가 된 걸까, 아님 이 책이 좋았던 걸까.^^ 소재와 주제는 가볍다 할 수 없는데 경쾌하게 잘 읽히는 문체여서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이 작가의 책은 처음 읽는다. 청소년 소설을 많이 쓰신 것 같고 특히 <어쩌다 중학생 같은 걸 하고 있을까> 라는 책의 제목이 아주 익숙하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도쿄에서 살던 주인공 유즈하는 부모님과 같이 시골로 이사했다. 일본의 소설이나 동화에서 우리나라와 유사한 문제를 자주 보게 된다. (지역간 인구 불균형 심화, 촌락인구 감소, 저출산, 고령화 등) 여기도 고령화된 마을이고 전학온 학교에는 6학년이 한 반뿐이며 학생은 유즈하까지 9명 뿐이다. 그나마 6학년은 낫다. 1,2학년은 복식학급이다. 아래로 갈수록 저출산 현상이 심화된 모습이다. 우리랑 똑같네.

아빠는 도쿄대를 나와 은행에 다녔지만 이 마을에서 슈퍼를 하시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유언을 남기자 기다렸다는 듯 은행을 관두고 시골로 내려왔다. 아마도 한계에 다다른 시점이었다는 것을 유즈하도 짐작했기에 군소리없이 따라왔다. 가족은 마을에 나름 잘 적응한다. 유즈하도 자전거로 배달을 돕는 등 열심이다.

문제는 여름방학을 지내고 2학기에 전입을 하면서 시작됐다. 도쿄 학교에서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던 유스하가 수학시험을 잘보고 달리기에서도 1등하는 등 두각을 나타내게 되어 졸지에 '히어로' 비스름한 위치가 되어버렸다. 어느날 반장 미키 외 두 여학생이 다가와 학급의 문제를 상의하며 해결사 역할을 요청한다. 난 유스하가 두각을 나타낼 때 시기와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건가 짐작했는데 의외였다. 생각해보니 박힌 돌들 사이에서 해묵은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을 때, 굴러들어온 돌이 그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는 것도 당연한 마음 같다. 그 문제란 역시 괴롭힘의 문제였다. 겐타라는 남학생이 졸개들을 거느리고 가오리라는 여학생을 집요하게 괴롭히고 있었다. 소그룹에서도 이게 가능하다니, 참 인간의 악한 본성은 집요하다.

그런데 인간의 악한 모습은 본성과 상황의 융합물인 것 같다. 각자마다 그 비율이 다르다. 그를 둘러싼 환경에서 결핍이나 상처를 찾아볼 수 없는데도 놀라운 악함을 보여주는 순도 높은 악인도 있고, 상황이 만들어낸 안쓰러운 악인도 있다. 다들 그 사이 어디쯤에 위치할 것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도 그렇다. 물론 순도가 높든 낮든 그걸로 합리화할 순 없다. 인간은 그저 자신의 행동과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할 뿐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작은 마을이다 보니 어른들의 관계가 밀접하게 얽혀있고 자녀들도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겐타의 아버지는 지역에서 큰 영향력이 있는 '고토 개발'의 사장이었다. 겐타가 함부로 나대는 이유를 알 만하다.

결과적으로 유스하는 히어로 역할을 보란듯이 해내진 못했다. 제목처럼 말이다. 하지만 악한 모습에 분노했고 친구들과 함께 해결해보려 애썼다. 그러는 중에 자신의 부족함도 알게 되고, 함께 성장했다고 할까. 학급의 문제도 극적으로는 아니지만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그런 과정의 이야기다.

읽으며 가장 미개(?)하게 느껴졌던 부분이 있었는데 체육복을 갈아입는 상황이었다. 내 눈을 의심하게 하는 상황이 펼쳐져서 엥? 이런 일이 있을수 있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초등에서는 보통 '간편복'으로 알림장에 써주고 설령 잘못 입고 왔더라도 그냥 수업하기 때문에 탈의 상황은 없는데, 생각해보니 중등에서는 어떤가? 확실히 모르겠다. 요즘은 대부분이 남녀공학이니 탈의 장소는 확보되어 있겠지? 이 대목이 옥의 티. (치고는 매우 컸다) 물론 문제장면으로 설정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의외였던 점은 마을의 개발에 대한 작품의 관점이다. 보통 작품에서는 이상을 추구하기 때문에 '개발'을 막아내고 마을을 고수하는 결말로 가지 않던가? 탐욕과 수호의 맞대결로 설정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개발에 찬성했다. 특히 노인들은 혼자 힘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산골마을을 떠나 새로 지어진 '콤팩트 시티' 라는 노인 맞춤 거주지에 들어가게 됐다. 그곳이 매우 복지적이고 노인 편의를 배려한 곳으로 그려졌다. 이런 곳이라면.... 이라는 관심이 생긴다. 노인 문제는 바로 당면한 문제이자 미래이기도 해서 말이다. 이렇듯 개발 문제는 흑백논리로 풀기에는 매우 복합적이고 어렵다. 이런 문제야말로 순수하고 전문적이며 실용적인 시각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그런 눈이 우리에게 있기를.

마을에서 유즈하가 친하게 지낸 미즈하라 할머니의 말씀 중에 고개를 끄덕일 말씀이 많았다. 유즈하가 분노에 못이겨 꽃병을 지켜들고 자칫 대참사를 벌일 뻔했던 그날,
"그건 증오의 연쇄작용이라는 거야."
라는 할머니의 설명을 나도 기억해놔야겠다.
"이쯤되면 더이상 어느쪽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가 없어."
살면서 많이 본 상황이다.

또 하나는 어떤 행진곡을 부르시고 하신 말씀.
"행복은 우리에게 걸어오지 않아.
그러니 우리가 걸어서 가는 거야.
하루 한 발짝 사흘이면 세 발짝
세 발짝 내딛고 두발짝 물러나.
인생은 원투 펀치"
- 그래,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때로는 조금 후퇴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착실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거야.

인간세상 끔찍해 보일 때가 많지만 과거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과거는 더 야만적이었기 때문에. 일부 추억을 빼고는. 그러니 세 보 전진 이 보 후퇴(결과적으로 일 보 전진)의 사이클을 믿고 희망적으로 살아도 되는 걸까. 작가는 독자들에게 그런 시각을 보여주려 하는 것 같지만. 그게 맞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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