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기진맥진님의 서재
  • 한국에서 교사로 산다는 것
  • 가넷
  • 15,300원 (10%850)
  • 2024-05-10
  • : 301
페이스북에서 깊이있는 글을 쓰시는 선생님 한분이 이 책을 읽고 남기신 글을 읽었다. 마음이 힘들 것이라 예상되어 망설여졌지만 그것보다 궁금증이 더 앞섰다. 집근처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했더니 취소문자가 왔다. 사유는 ‘품절도서’였다. 앗, 그러네. 나온지 1년밖에 안되었는데 벌써 절판되었다. 다행히 인근 도서관에 한 권 있어서 상호대차로 대출해 읽었다.

겪으신 일은 모두 내가 익히 알고 있던 내용이다. 선생님은 특히 2023 교사집회 중 가장 컸던 9월 2일 집회에서 발언하신 분이기도 하다. 나는 그때 여의도광장 끄트머리에 겨우 자리를 잡아서 발언 내용을 정확하게 듣진 못했다. 하지만 여러 사람과의 대화 중에 언급되었고 언론보도를 통해서 이슈가 되었던 사건이라 기억이 생생하다.

7년차 젊은 여교사가 익명의 교원평가를 통한 남학생의 성희롱을 무기력하게 묵과하지 않고 끝까지 파헤쳐 공론화한 일은 보통 용기로는 할 수 없는 일이고, 또한 이 사회에 무지막지하게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바위는 너무 크고 단단하며, 계란 한 개로 깨질 리가 없었다. 선생님은 무수한 2차 가해를 받았고 결국 교직을 내려놓고 나왔다.

내가 선생님의 주변인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부끄럽고, 알지도 못하는 그분께 미안하다. 왜냐하면 나는 만류했을 것 같으니까. 무수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니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자고 했을 테니까. 나는 교원평가 열람 안한 지 10년도 넘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을지도 모르니까.ㅠㅠ

하지만 교사들이 이처럼 분노를 안으로만 삼키고 체념했기 때문에 전국민의 교사 때리기 스포츠는 더욱 중흥되었다. 끝없는 가스라이팅으로 나는 내가 죄인인 줄로 착각하며 살게 되었다. 교사라는 원죄. 씻을 수도 없으며 항변할 수도 없는 원죄에 뒤덮여 모든 처분에 따르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선생님이 작은 파열음을 냈다. 너무 당연한 일에 우리는 놀라고 있었다.
- 교원평가는 익명인데 가해자를 밝힐 수 있나?
- 학생을 고소할 수 있나?
- 용서 안해줘도 되나?

교사도 시민이고 노동자이며 국민들과 똑같은 인권을 가진 직업인일 뿐이다. 왜 교사라는 이유로 금기되는 것이(참으라고 요구되는 것이) 그리 많았을까? 평소에 내가 가슴을 치며 답답해 하던 일에 대하여 저자는 이렇게 적어놓았다.
『그렇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한다. 그렇게 해도 당장 자신에게 불이익이 생기지 않고 아무도 자신을 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도 당장 경찰에 연행되거나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그런 생각이 교사 또는 누군가를 향한 폭언, 폭력, 협박, 악성 민원, 인권 침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92쪽)

옳지 않은 행동을 하는 학생에 대하여 교사는 ‘사랑으로 감화시키라’는 강요를 받는다. 나이가 꽤 되었는데, 나는 살면서 쉽게 말하는 사랑처럼 부질없는 단어를 보지 못했다. 대체 사랑이 뭐냐. 어떤 직업군에게 ‘사랑’을 요구한다는 게 말이 되냐. 물론 인간을 상대하는 직업은 마음도 교류하게 되니 사랑이 생겨날 수 있다. 상당히 깊은 사랑을 오래 주고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요구해서는 안되는 ‘감정’이다. 나의 직업윤리는 나에게 ‘책임’을 요구한다. 그게 다른 말로 하면 사랑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너에게 필요한 것을 내가 책임있게 주고자 하는 것. 그게 교사로서의 사랑이란 말이다. 거기에는 훈육이나 처벌도 포함된다. 필요하다면 말이다. 그런데 무슨~~ 선생님 흑흑, 철수야 흑흑 하는 신파를 찍으라고 난리야. 옛날같이 어수룩한 시대라면 가끔 신파가 찍혔을 수도 있겠지. 지금 세상에 날 잡아 잡수 하고 자신을 내놨다가 얼씨구 하고 달려드는 메뚜기떼한테 뜯어 먹히고 나면 남는 것은 회의와 자괴감 뿐이겠지. 사랑으로 감화, 나는 후배들에게 절대로 권유하지 않겠다.

두 번째 얼핏 그럴듯하지만 매우 잘못된 요구는 ‘교사가 먼저 존중하면 학생도 따라서 존중하게 될 것’ 이라는 말이다. “존중 받아본 이가 남을 존중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이 말의 잘못된 점은 이것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점이다. 대체로 그런 것과 반드시 그런 것은 구분하여 말해야 한다. 하지만 인권을 부르짖는 많은 이들이 ‘반드시’ 그렇다며 교사를 옥죄었다. 심지어 교사들 중에도 그런 강사들이 있었다. 학생이 존중을 배울 때까지 그를 끝없이 존중하라는.... 학생에게 사사건건 선택권을 주고, 그의 권리를 일깨우라는.... 그런 분들에게 내가 “본인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그가 지켜줘야 할 남의 권리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권리와 같은 비중으로 책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라고 댓글을 달았을 때 비웃음의 대댓글이 달렸다.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하긴 한데 그중에는 “당신 수업을 앉아서 들어주는 사실 만으로도 고맙지 않냐?” 였던가.... 아니? 나는 그게 고맙진 않은데? 나는 자격을 획득하여 국가에 고용된 직업인이고 그 임무인 수업을 내가 실행하며 그것은 그 대상에게 도움이 되는 건데 내가 왜 고마워해야 되지? 피차 마땅한 태도를 가지고 역할에 충실하면 되는거 아닌가? 심지어 “숙제를 안할 권리도 있다.”는 주장에는 아연실색.... 이렇게 ‘교사가 먼저 존중’ 주의자들이 놓친 것들이 있다. 존중이 반드시 존중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존중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교사의 덕목으로만 몰고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호의를 이용하여 악행을 하는 인간들이 꽤 많은 비율로 있다. 이것을 모른 척하는 것은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에는 법이 있지 않나? 사회는 법이 필요한데, 학교에는 도덕만 있으면 된다는 거냐?

교사를 포함한 공무원들에 대한 멸시적 표현으로 ‘내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는 것들’이 있다. 이런 무식한 논리를 펴는 사람들은 자신이 ‘고용주’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자기 말대로 하지 않으면 그토록 화를 내며 악성민원으로 괴롭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그에 대한 반론도 나와 있다.
『공무원들은 국가행정을 위한 노동을 하고 그 대가로 급여를 받는다. 다시말해 시민이 세금을 개인에게 주는 시스템이 아니라 시민에게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을 하고 국가로부터 급여를 받는 시스템인 것이다.』 (93쪽)
그러므로 공무원이 근무시간에 일하지 않거나 잘못된 일을 한다면 비난받을 수 있어도 특정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화풀이 대상이 될 수는 없다. 특히 교사는 자신의 교육관대로 학생을 지도한다. 학부모 개개인의 생각을 다 수용할 순 없다. 배가 산으로 갈 일이다.

저자는 학교가 사회화 기관이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 사회로 나가기 전에 잘못된 행동을 지적받고 교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과정에서 잘못된 행동에 대한 적극적 제재와 교정 없이 자라난 아이들이 사회에 쏟아져 나온다면 이 사회의 안녕과 안전 또한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중략) 지금 무너져가는 공교육을 바로잡지 않으면 이 디스토피아는 곧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이다. 교사를 지금처럼 무력하게 만들고, 보호자는 자녀들의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거나 사회화를 돕기는 커녕 '우리 애를 학대한다'고 교사를 몰아가고, 학교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아야' 교사에게 안전한 환경이 된다면, 그 대가는 모두가 함께 치르게 될 것이다.』 (106~107쪽)

그렇다고 저자가 체벌을 찬성하거나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의 인권이 보장되는 만큼 교권에 대해서도 상호존중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과거의 야만 상태로 회귀하고 싶은 교육주체는 아무도 없다. 한쪽의 인권을 후려쳐서 다른 한쪽의 인권을 높일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구시대적이고 야만적인 발상이다. 야만으로의 회귀는 말 그대로 퇴보하는 것일 뿐 아무것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131~132쪽)
저자가 원하고 주장하는 것은 재작년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우리가 외쳤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가르치고 싶다!"
가르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바라는 것이다. 가르침과 배움을 방해하는 악한 행위로부터 교사와 학생들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이것이 그렇게 힘든가? 그렇게 죽음으로만 호소해야 듣는 시늉이라도 할까말까한 일이었나? 저자는 본인을 '생존자'라고 표현했다. 거기엔 많은 의미가 담겼다.ㅠ

저자가 겪은 일은 특히 젠더 권력이 작동한 일이라는 점에서 더 서글픈 면이 있다. 여교사들은 속수무책으로 정글에 던져졌다.
『교사-학생 관계가 젠더 위계에 의해 전복되고 교사로서의 권위를 잃는 경험은 피해 교사들에게 매우 큰 무력감과 트라우마를 심는다. 교사이지만 동시에 여성이므로 교사를 성적 대상화하고 성적으로 모욕한 경험이 있는 가해자들은, 여성 교사가 더이상 지도하거나 교정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113~114쪽)
남학생이 여교사를 물리적으로 위협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초등 고학년만 되어도 흔한 경우다. 선택적 분조장이란 말이 있다. 저자도 표현하셨듯이 '그 아이의 분노는 오로지 자신보다 물리적 힘이 약한 사람 앞에서만 터져나왔다.' 언젠가 내가 자조적으로 "이제 학교에 필요한 인력은 마동석 같은 분이야." 라고 한 적이 있는데 (배우님 함부로 일컬어서 죄송해요ㅠ) 물리적 위계 외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학생들이 실제로 있기 때문이다. 교사로서 유능해지기 위해 갈고닦아온 그간의 노력들이 허탈해지는 순간이다.

막다른 곳까지 몰린 저자는 교직을 내려놓는 길을 택했다. 그게 살아남는 길이었다는 것이 너무 슬프다. 그래도 저자는 드물게 강한 분이다. 날마다 자신을 일으켜 우울과 불안을 필사적으로 이겨냈고 연대의 따뜻함과 희망도 체험했다. 벽이라고 생각했는데 부딪쳐보니 문이었다는 저자의 표현에 소름이 돋았다. 그걸 깨닫기까지 얼마나 온 힘을 다했을까 생각하니 안쓰러우면서도 존경스러웠다. 이 리뷰를 이렇게 길게 쓴 이유는 이렇게라도 응원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다. 퇴직을 고려 중인 늙은 교사가 주절거린 말이 가져올 변화는 없겠지만, 이렇게라도 후배들과 마음을 함께하고 싶다.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보탬이 못 되어 미안하다. 저자가 표현한 ‘작은 틈새로 보이는 희망의 빛’을 부디 붙잡으시길 응원한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