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책이 있어 반짝이는
  • 빛과 실
  • 한강
  • 13,500원 (10%750)
  • 2025-04-18
  • : 284,180

처음 책을 받았을 땐 생각보다 너무 작고 아담해서 약간 아쉬웠지만(책 크기가 '흰'보다 작다. '흰'을 처음 구입했을 때도 작은 크기에 다소 실망했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다행인 건 표지가 양장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작은 책인데다 시詩와 짧은 에세이들이 여럿이라 호다닥 금방 읽을 수 있었는데 표지와 함께 휘리릭 휘리릭 넘기며 아무데나 펼쳐서 읽기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난 책 표지가 양장본인 것도 좋긴 하지만 이렇게 작고 얇아 손에 딱 들어오는 크기의 책은 양장본이 아닌 것이 백 번 더 좋다.



처음으로 시를 발표하여 등단을 하고 단편을 발표하다가 첫 장편소설을 발표했을 때의 매혹에 대해 적은 문장이 있었다. 


"완성까지 아무리 짧아도 일 년, 길게는 칠 년까지 걸리는 장편소설은 내 개인적 삶의 상당한 기간들과 맞바꿈된다. 바로 그 점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맞바꿔도 좋다고 결심할 만큼 중요하고 절실한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머물 수 있다는 것이."(12쪽) 


<채식주의자>에 이어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발표하는 동안 폭력에 노출된 개인과 시민들의 고통의 소리들을 듣고 읽고 쓰면서 가졌던 의문들과 스스로 찾아낸 '사랑'이라는 진실과 마주하기까지의 과정들은 아름답고(?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사실들이지만 문장들에는 공감하게 되고 그것을 돌아보는 시간은 결국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소중하다. 한강 작가의 고통과 글을 읽는 독자들의 고통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 이유는 무엇일지 찾아가는 과정을 읽으면서 <소년이 온다>를 다시 읽어야겠다는 강렬한 욕구가 일었다.




작년 12월 10일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문을 책에서 만났다. 그때처럼 다시 눈물이 나려는 걸 겨우 참고 다시 읽었다.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폭력과 그로 인한 고통, 그리고 사랑이 왜 존재하는지, 그럼에도 우리가 "이 세계에 끝끝내 인간으로 남는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래서 가장 어두운 밤에 우리의 본성에 대해서 질문하는, 우리를 연결하는 언어를 다루는 문학에는 필연적으로 체온이 깃들어 있다고 말하는 문장들... 이 문장들로 이루어진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 폭력의 반대편에 우리가 함께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문장들...




하지만 이렇게 폭력에 항거하는 우리의 고통스러운 과거와 현재를 자꾸 들여다보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거기다 이렇게 화창한 봄날에 눈만 들면 창 밖으로 보이는 우리 동네의, 온통 연두와 여린 초록의 잎이 무성해진 낮은 언덕과 산, 심지어 우리 집 정원에도 초록이 무성한데 말이다. 그래서 작가가 마흔여덟에 처음 갖게 된 집에서 북향정원을 가꾸는 일상을 보여준 문장들이 더없이 반가울 수 밖에 없었다. 

아! 북향정원이라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조마조마하다. 빛이 들지 않는데 식물이 잘 자랄 수 있으려나 싶어서 말이다. 북쪽 벽에 붙여 만들어야 했던 가로 백팔십, 폭 사십 센티미터의 긴 직사각형 땅에 흙을 채우고 벽돌로 반 뼘 높이의 벽을 쌓아 만든 공간에 조경사님의 조언을 받아들여 미스 김라일락, 청단풍, 불두화, 옥잠화와 호스타와 맥문동을 심었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일조량은 거울을 이용하여 보충한다. 남쪽으로 비치는 햇빛을 반사시켜 보내 준다니. 이 방법도 너무 신박해서 오호... 역시 전문가다운 조언이군! 했다^^

글을 쓰는 중에도 매일매일 바뀌는 해의 높이와 위치와 시간과 각도 등을 가늠하며 거울을 조정해주고 나중엔 햇빛을 더 주기 위해 거울을 계속 들인다^^  "햇빛이 드는 정원은...... 너무 아름다워서 가슴이 무지근할 때도 있다."(108쪽, 4월 1일의 일기 중에서)

왜 안 그렇겠어요. 요즘 책 읽기보다 정원과 텃밭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진 나도 일교차가 크고 바람이 잦아진 요즘 날씨 때문에 정원을 바라보기 좋은 현관 데크에 나가지 못해 아주 몸이 달아있다. 가만히 앉아 바라만 봐도 정말 가슴이 꽉 차오르는 느낌을 받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데크에 앉아 있으면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심지어 혼자 있는 시간엔 식사도 거기서 할 정도다. 




처음 이 집으로 이사 오고 만 3 년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숱하게 심었던 나무와 꽃과 식물들이 지난 겨울 눈 속에서 모두 살아남아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최소한으로만 심었는데도 3 년이 넘은 지금 확장세가 무서울 정도인 화초들도 있다. 그런데 한 강 작가의 글에서 이런 일상을 접하게 되었고 거기다 음지에서도 잘 자라는 호스타, 맥문동, 불두화, 옥잠화,  그리고 미스김라일락, 불두화는 우리집 마당에도 있다. 

잎이 무성했던 불두화에 응애가 끼고 살충제를 뿌리고 그 많던 잎이 우수수 떨어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힘에 겹다. 식물이라도 안타깝다. 제발 살아줘! 간절히 바라게 된다. 하지만 다음 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다시 잎을 피워내고 꽃송이를 달아준다. 청단풍과 라일락도 제법 키가 자랐다. 벌레에 더위에 고생하던 나무들이 해쓱해진 채로 여름과 겨울을 지내고 봄이 왔을 때 잎이 나고 꽃송이를 올린다. 


"북쪽 벽을 초록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그렇게 해주고 있다."(3월 30일 일기, 160쪽)


"경이롭다, 불두화. 내 키보다 높게 자랐다."(4월 15일 일기, 161쪽)


이런 문장들을 읽고 있으면 앞에서 읽었던 압도적으로 고통스러운 문장들은 잊혀지고, 그런 힘든 시간들에 보상을 받은 듯 마음이 편안해지는 식물 일기에 커다란 위안을 받게 된다. 식물들이 주는 희망의 메세지에 감동하게 된다.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을 품게 된다. 작가가 소설을 쓰는 동안 사용했던 공책에 이런 문장들이 있었다. 자꾸 생각하게 된다. 생명, 사랑, 순환, 연결... 이런 아름다운 단어들이 마음에 남을 거 같다.


"생명은 살고자 한다. 생명은 따뜻하다."(24쪽)


"바람과 해류, 전 세계를 잇는 물과 바람의 순환. 우리는 연결되어 잇다. 연결되어 있다. 부디."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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