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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2)

네가 그런 사람이니까, 네 외모는 사랑 넘치는 할아버지면서 동시에 대량 학살범이 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이다. 네가 그 두 가지 역할을 너무나 잘 해냈기 때문에 난 네게서 눈을 뗄 수 없어. 변호사들은 다르게 생각하고 싶을지 몰라도, 네가 미국에서 감탄이 나올 만큼 하찮은 삶을 유지해왔다는 사실은 네가 최악의 변호다. 네가 오하이오에서 소박하고 지루한 삶을 그토록 훌륭하게 살아냈다는 것, 바로 그 점 때문에 너는 여기서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는 거야. 넌 양극단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두 삶을 차례로 살아냈을 뿐이다. 나치라면 이렇다 할 부담감 없이 동시에 즐길 수 있었던 그 두 삶은 서로 배타적인 관계지. 그러니 결국 그게 뭐 그리 대단하겠는가? 독일인들은 서로 크게 다른 성격, 그러니까 아주 착한 성격과 그리 착하지 못한 성격을 유지하는 것이 이제는 사이코패스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온 세상에 확고하게 증명해 보였다. 트레블랑카에서 최고의 시간을 보낸 네가 미국에서 상냥하고 근면하고 하찮은 사람이 되었다는 건 수수께끼가 아니야. 너의 명령으로 시체를 치웠던 사람들, 여기서 널 고발한 사람들이 너 같은 사람들한테 그런 일을 당한 뒤 평범한 삶과 조금이라도 닮은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 수수께끼. 그 사람들이 어떻게든 평범하게 살 수 있었다는 사실, 그게 믿기 힘든 일이라고!

 

(114-115)

홀로코스트의 현실은 모두의 상상력을 뛰어넘었습니다. 만약 내가 사실을 충실하게 기록했다면, 아무도 내 말을 안 믿었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당시의 나보다 아주 조금 나이가 위인 여자아이를 선택하는 순간, 기억의 힘센 순아귀에서 ‘내 인생 스토리’를 빼내 창조적인 실험실에서 넘겼습니다. 거기서 기억은 유일한 주인이 아닙니다. 거기서는 인과관계에 입각한 설명, 사건들을 서로 묶어주는 가닥이 필요합니다. 예외적인 일은 전체 구조의 일부로서 그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때에만 허용될 수 있습니다. 나는 ‘내 인생 스토리’에서 믿을 수 없는 부분을 덜어내, 좀 더 믿을 수 있는 이야기를 사람들 앞에 내놓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175)

놈들이 성공한다고 가정해보세. 놈들이 싸움에서 이겨 나블루스의 모든 아랍인, 헤브론의 모든 아랍인, 갈릴리와 가자의 모든 아랍인, 세상의 모든 아랍인이 유대인의 핵폭탄 덕분에 사라진다고 생각해봐. 앞으로 오십 년 뒤 놈들에게 무엇이 남겠는가? 중요성이라고 전혀 없는 작고 시끄러운 나라뿐이겠지. 팔레스타인을 박해하고 파괴한 결과가 그렇게 될 거야. 유대인만으로 이루어진 벨기에 같은 나라가 만들어지는 거지. 하지만 그나마 자랑할 만한 브뤼셀 같은 도시도 없는 나라. 이 ‘진짜’ 유대인들이 문명에 기여한다면 그런 것뿐이야. 유대인을 위대하게 만들어준 모든 특징이 없는 나라! 자기들의 사악한 점령체제하에 살아가는 다른 아랍인들에게 자기들의 ‘우월성’에 대한 존경심과 두려움을 주입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난 자네의 민족과 함께 사람이야.

 

(185-186)

이스라엘의 군사적 팽창을 유대인의 희생에 대한 기억과 결부시켜 팽창주의를 역사적으로 정당화하고, 점령지를 꿀꺽 집어삼킨 뒤 팔레스타인인들을 살던 땅에서 또다시 몰아낸 일을 역사적인 정의, 정당한 보복, 그저 자기방어로 정당화하기 위한 캠페인. 이스라엘의 국경선을 넓힐 기회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움켜쥐는 모습을 무엇이 정당화해주는가? 아우슈비츠, 베이루트의 민간인들을 폭격한 일을 무엇이 정당화해주는가? 아우슈비츠,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뼈를 박살 내고 아랍인 시정들의 팔다리를 폭탄으로 날려버리는 행동을 무엇이 정당화해주는가? 아우슈비츠, 다하우, 부헨발트, 젤젠, 트레블링카, 소비보르, 벨제크. “그건 거짓이라니, 필립. 어찌나 잔인하고, 냉소적인 거짓인지! 영토를 지키는 것이 그들에게는 한 가지 의미를 지닌다. 딱 한 가지 의미만, 이런 정복을 가능하게 해준 물리적 능력을 과시하는 것! 영토를 다스리는 것은 지금껏 그들이 누리지 못했던 특권을 행사하는 일. 남을 억압하는 희생자로 만드는 경험, 이제는 타인들을 다스리는 경험. 권력에 미친 유대인, 이것이 그들의 모습이야.

 

(189)

전세계 유대인들의 눈에도 유지되는 나라라는 것, 점령지에서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봉기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마키아벨리 국가라는 것, 이 나라가 마키아벨리식 세계에 있는 것은 사실일세, 시카고 경찰국과 마찬가지로 성결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 그들은 이 나라가 유대인 문화, 민족, 유산 유지에 필수적이라고 지난 사십 년 동안 선전했지. 사실 이 나라의 존재는 품질과 가치 면에서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선택적인 것이었는데도 이스라엘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현실이라고 선전하는 데 온갖 술수를 동원했어.

 

(204-205)

사람은 이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합니다. 이건 아주, 아주 기본이죠. 사막에서 온 겁니다. 저 풀잎은 내 것이고, 내가 기르는 짐승은 그 풀을 먹지 못하면 죽는다. 우리 집 짐승이 먹을 것이야, 너희 집 짐승이 먹을 것이냐, 여기서부터 타키야(시아파 신도들의 박해의 위험이 있을 때 신앙을 감추는 행위)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대개 ‘위장’이라고 하죠. 시아파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나지만, 사실은 이슬람 문화 전체에 퍼져 있습니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위장은 이슬람 문화의 일부입니다. 위장을 허락하는 분위기는 널리 퍼져 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위험해지는 말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문화, 상대가 분명히 솔직하고 진실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문화죠.

 

(229)

“당신은 그냥 정치투쟁이라는 저열한 어리석음보다 대학이라는 고상한 어리석음이 더 좋은 거겠지. 지금 이 일이 멍청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 심지어 쓸데없는 일이라는 말도 할지 몰라. 하지만 이런 게 원래 이 지상에서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이야”

 

(392-393)

그 작품의 첫 번째 대사, 그러니까 1막 3장을 여는 대사에서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거의 사백 년 전 샤일록이 세상의 무대에 나와 자신을 소개한 말 때문에요. 그래요. 사백 년 전부터 유대인들은 이 샤일록의 그림자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대 세계에서 유대인은 항상 재판을 받는 신세였어요. 지금도 유대인은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인이라는 형태로, 유대인을 상대로 한 현대의 재판, 결코 끝나지 않는 이 재판의 시발점이 바로 샤일록 재판입니다. 전세계 관객들에게 샤일록은 유대인의 화신입니다.

 

(469)

관용구, 관심사, 정신적인 리듬 면에서 K의 일기나 A. F.의 일기 같은 글들은 훤히 눈에 띄는 애잔함을 확인해준다. 첫째, 유대인은 평범하다. 둘째, 그들은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없는 상황이다. 평범한, 단조롭고 눈부시며 축복받은 평범함, 모든 관찰, 모든 감상, 모든 생각에 이것이 있다. 유대인이 꾸는 꿈의 중심, 시온주의와 디아스포리즘 모두에 열기를 제공해주는 것은 유대인이 유대인임을 잊었을 때 사람이 되리라는 것. 평범함. 지루함. 이렇다 할 사건이 없는 단조로움. 진을 치지 않는 삶. 각자 자기만의 유람선에서 반복적으로 느끼는 안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유대인의 삶이라는 믿을 수 없는 드라마.

 

(499-500)

“그들은 유대인으로서 권리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대인이라서 벗어날 수 없는 도덕적 의무도 갖고 있소. 어떤 형태로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보상을 해줘야 할 의무. 우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저질렀소. 그들을 쫓아내고 억압했으니까. 그들을 추방하고, 때리고, 고문하고, 살해했으니까. 유대인 국가는 처음 생겨난 순간부터 역사적으로 팔레스타인의 땅이었던 곳에서 팔레스타인들의 존재감을 지우고 그 땅을 빼앗는 데 전력을 다했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유대인들 손에 쫓겨나 이리저리 흩어지고 정복당했지. 유대인 국가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우리 역사를 배반했소. 그리스도교인들이 우리에게 한 짓을 우리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했다는 뜻이오. 그들을 경멸과 예속의 대상인 ‘타자(他者)’로 만들어, 인간의 지위를 빼앗았소. 테러나 테러리스트나 야세르 아라파트의 어리석은 정치행보와는 상관없이, 사실은 이것이오. 팔레스타인 민족은 전적으로 무고하며, 유대 민족은 전적으로 유죄다. 내게 있어 경악스러운 일은 소수의 부자 유대인이 PLO에 거액을 기부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유대인이 자기도 기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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