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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목로주점>은 내가 쓴 소설 중에서 가장 순수한 편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훨씬 더 끔찍한 상처들은 건드려야만 할 때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인들은 그것들을 담아내는 형식만으로도 질겁하며 분노했다. 또한 그 속에 사용된 언어에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내가 저지른 죄과라고는 지극한 문학적 호기심으로 민중이 사용하는 언어를 다방면에서 수집해 치밀하게 연구된 틀 속에 담아낸 것뿐이다. 맙소사! 그들의 언어를 새로운 형식에 담아낸 것이 어떻게 그토록 크나큰 범죄 행위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의 언어가 담긴 사전들도 이미 존재하며, 그것들이 그려내는 이미지의 신랄함과 신선함 그리고 강렬함의 매력에 빠져 연구에 몰두하는 학자들도 있지 않은가. 게다가 호기심이 왕성한 문법학자들에겐 상관없다. 역사적, 사회적 측면에서 생생한 가치를 지닌, 현실에 대한 순수한 문헌학적 작업을 해나가는 것, 그것이 나의 바람이고 의도인 것이다. 그 사실을 아무도 간파하지 못했다는 점이 심히 유감스러울 뿐이다.


(58)

제르베르는 의자 등받이에 젖은 옷들을 걸쳐놓았다. 그리고 멍하니 서 있다가 몸을 돌려 가구들을 다시 찬찬히 살펴보았다. 너무나 큰 충격에 눈물마저 말라버린 듯했다. 그녀에게 남은 돈이라고는 세탁비로 남겨둔 4수 중 1수가 전부였다. 그사이에 마음이 진정된 에티엔과 클로드가 웃는 소리에 제르베즈는 창가로 가서 두 팔로 아이들의 머리를 감싸 안았다. 그렇게, 바로 그날 아침, 노동자들과 파리의 거대한 일터가 깨어나는 것을 지켜보았던 그곳에서 회색빛 도로를 바라보면서 잠시 자신을 잊고자 했다. 그 시각, 세관의 담벼락 뒤쪽 도시 위로는, 분주한 일상으로 인해 달구어진 도로에서 뜨거운 복사열이 뿜어져 나왔다. 제르베즈는 바로 저 용광로 같은 뜨거운 길바닥 사로잡혀 외곽 도로의 오른쪽 끝과 왼쪽 끝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제 그녀의 삶은 바로 저곳, 도살장과 병원 사이의 공간에 달려 있다는 예감과 함께.


(127)

그러면서 행렬의 끄트머리를 살피더니 손짓으로 살롱 카레 한가운데서 멈춰 서라고 지시했다. 그는 마치 교회에 와 있는 것처럼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곳에는 걸작들만 모여 있다고 설명했다. 일행은 살롱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제르베즈는 <가나의 혼인 잔치>가 무엇에 관한 그림인지를 물어보았다. 액자에 그림의 주제를 적어놓지 않은 게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나리자> 앞에 멈춰 선 쿠포는 그림 속 여인이 그의 숙모 중 한 사람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보슈와 비비라그리야드는 벌거벗은 여인들의 모습을 흘끗거리면서 히죽댔다. 그중에서도 그들의 눈길을 가장 끈 것은 안티오페의 허벅지였다. 행렬의 맨 끝에 있던 고드롱 부부는 스페인 화가 무리요의 <성모마리아> 앞에 이르자 무지와 감동이 동시에 드러나는 눈빛으로 한동안 그림 앞에 머물러 있었다. 남편은 입을 헤벌리고, 아내는 배에 손을 올려놓은 채.


(277)

인간의 육체가 쇠로 된 기계와 싸워 이길 수 없음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고자 애쓸 때조차 그의 우울함은 커져만 갔다. 물론 언젠가는 기계가 노동자들을 모두 죽이고 말 터였다. 그 때문에 이미 그들의 하루 일당은 12프랑에서 9프랑으로 떨어진 상황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어쨌거나 소시지를 만들 듯 리벳과 볼트를 찍어내는 이 커다란 짐승들은 전혀 유쾌하지가 않았다. 구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삼 분 정도 기계를 응시했다. 그러면서 그가 눈살을 찌푸리자, 아름다운 황금빛 턱수염이 위협적으로 곤두섰다. 그러다가 온화함과 체념의 기운이 그의 표정을 점차 누그러뜨렸다.


(345-346)

오! 신이시여! 예수회교도들이 뭐라고 하건 아무 상관 없었다. 포도주는 진정 놀라운 발명품임을 인정해야만 했다! 초대객들은 모두 웃음을 터드리면서 그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노아는 분명 함석공과 재단사, 그리고 대장장이를 위해 포도나무를 심었을 것이다. 포도주는 몸을 깨끗이 정화해주고, 노동의 노고를 달래주며, 아무런 의욕이 없는 이들에게 자극제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런 다음 어릿광대가 당신에게 묘기를 부리기라도 하면, 당신은 우쭐해져서는 파리가 온통 자신의 것인 양 느끼게 되는 것이다. 또한 부자들에게 괄시받는 지치고 가난한 노동자들이 웃을 수 있는 것도 모두가 포도주 덕분이다. 그런데 단지 인생을 좀 더 장밋빛으로 느끼고 싶어 가끔씩 술에 취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 야박한 처사가 아닌가! 그렇지 않은가! 지금 이 순간은 황제인들 대수겠는가? 어쩌면 황제 역시 술에 취해 있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우리는 그보다 더 취하고 더 즐기면 되는 것이다. 고귀한 척하는 이들은 모두 꺼져버리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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