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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르가 부인을 발로 차서 죽인 거라고요.” 제르베르는 단조로운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부인의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거든요. 배 속 어딘가에 탈이 난 게 분명해요. 맙소사! 부인은 사흘 동안이나 몸을 뒤틀면서 끔찍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어요…… 아! 아마 노예선에 보내진 불한당들도 그 남자만큼 악한 짓을 하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남편한테 맞아 죽는 여자들을 일일이 신경 쓰다보면 법이 할 일이 너무 많아지겠죠. 매일같이 맞고 사는 여자들한테는 한 대 더 맞고 덜 맞는 게 무슨 상관이겠어요. 안 그래요? 그런데도 그 불쌍한 여자는 자기 남편이 참수형이라도 당할까봐 거짓말을 하더라구요. 글쎄, 물통 위해서 떨어져서 배를 다친 거라면서…… 그러고는 밤새 비명을 지르다가 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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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나태와 빈곤함이 자리 잡은 곳에는 불결함이 따라왔다. 과거에 제르베즈의 자존심이었던 하늘을 연상시키는 근사한 파란색 가게는 이젠 어디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창들과 판유리는 거리를 달리는 마차에서 튄 오물로 온통 뒤덮였다. 진열창 선반에 매달아놓은 놋쇠봉에는 병원에서 죽은 여자 고객들이 미처 찾아가지 못한 회색빛 누더기 옷 세 벌이 널려 있을 뿐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더 초라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천장에서 말리는 축축한 세탁물들의 습기 탓에 벽에서 떨어져 나간 퐁파두르 스타일의 사라사 벽지는 먼지가 잔뜩 내려앉은 거미줄처럼 너덜거렸다. 수없이 반복된 부지깽이질로 인해 구멍이 뚫리고 부서진 난로는 고물상에 쌓인 낡은 무쇠 조각처럼 보였다.


(278-279)

다시 시트로 랄리를 덮어준 제르베즈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가 없었다. 아이는 점점 더 의식이 희미해지면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제 랄리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예전에 검은 눈빛뿐이었다. 어린 소녀는 모든 것을 체념한 채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시선으로 그림을 자르고 있는 자신의 두 아이를 응시했다. 방 안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었다. 죽어가는 아이 앞에서 망연자실한 비자르는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아니, 이럴 수는 없다. 이건 너무나 가혹하지 않은가! 아! 이렇게 엿 같은 인생이 어디 있단 말인가! 정말 구차하기 짝이 없었다! 제르베즈는 비자르의 집을 뛰쳐나와 정신없이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삶에 깊은 회의가 느껴져 아무 승합마차에나 뛰어들어 그대로 바퀴에 깔려 죽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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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여섯 개 층을 올라가는 동안 제르베즈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를 몹시 아프게 하는 헛헛한 웃음이었다. 오래전에 품었던 자신의 이상이 떠올랐던 것이다. 별 탈 없이 일하면서 언제나 배불리 빵을 먹고, 지친 몸을 누일 깨끗한 방 한 칸을 지니고, 아이들을 잘 키우고, 남자한테 맞지 않고 살면서, 마지막에 자신의 침대에서 죽는 것. 이제 이 모든 게 얼마나 이루어졌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이거야말로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그녀는 더 이상 일도 하지 않았고, 배불리 먹기는커녕 허기를 달래기도 힘든 지경이며, 오물 더미 위에서 잠을 자고, 딸은 거리의 여자가 되었고, 남편에게 얻어맞은 것은 일상이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신에게 3만 프랑의 연금과 각별한 관심을 바라기라도 한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 이 고단한 생에서는 아무리 소박한 꿈을 꾸어도 하늘은 절대로 들어주지 않는 듯했다! 하찮은 음식과 잠자리마저 허락지 않았다. 그것이 보통 사람들의 운명인 것이다. 제르베즈는 예전에 자신이 20년간 다림질을 하고나면 시골로 가서 살겠다는 근사한 소망을 품었던 적이 있었음이 떠올라 더욱더 허망한 웃음을 터뜨렸다. 따지고 보면 그녀가 곧 가게 될 곳도 시골이긴 했다. 그녀는 풀이 나 있는 페르라셰즈 묘지 한 귀퉁이에 누워 쉴 수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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