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무너져 내리지 않기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붙든다. 누군가는 침묵 속에서, 누군가는 웃음 속에서, 그리고 벨라 매키는 달리면서 그 시간을 견뎠다. 아니 살아냈다. <달리기의 기쁨>은 단지 달리기에 관한 책이 아니다. 이건 거대한 불안장애와 우울에 맞선 치열한 생존의 일기장이자, 녹다운 되어 나가떨어진 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아주 유용한 '인생 재부팅 매뉴얼'이다. - '추천의 말'중에서

책의 저자 벨라 매키는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밀리언셀러 작가, 그리고 러너이다. 런던 태생으로 <가디언>, <보그>, <바이스 뉴스> 등 유수의 매체에서 저널리스트 경력을 쌓았다. 어릴 적부터 언제 공황 발작이 나타날지 모르는 불안장애를 안고 살았다. 직장 동료와의 결혼 생활도 1년만에 파경을 맞았고, 이후 악화된 불안장애가 그녀의 삶을 완전히 집어삼켰다.
어느날 갑자기 이 모든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그녀는 난생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다. 다리는 무겁고, 숨은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뛰는 중엔 아무런 생각조차 없었다. 포기하고 싶을 땐 속으로 '딱 1분만 더'를 외치며 5분을 더 내달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의 세상은 달려온 거리만큼 커져 있었다.
총 10개 단락으로 구성된 이 책은 저자 밸라 매키가 러닝을 통해 불안장애를 극복한 경험담을 다루는 에세이다. 영국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큰 화제가 되었으며,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100만 부 이상 팔리며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 그녀는 '영국의 포레스트 검프'로 불리는 '러닝 인플루언서'로 활동하고 있다. 이제 그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마치 거울 유리가 산산조각 난 듯한 결혼 후 파경破鏡은 여성에게 견딜 수 없는 슬픔과 껄그러운 질문, 때론 수치심까지 남긴다. 다시 싱글 신분이 되고 일주일 쯤 지났을 때 문득 달리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그냥 달리고 싶었다. 그날은 그냥 달리고 싶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운동장을 내달릴 엄두는 안 났다. 마트도 무서워서 못 가는 주제에 이런 야심 찬 포부는 언감생심임에도 열쇠를 챙기고 운동화 끈을 묶고 있었다. 낡은 레깅스 위에 티셔츠를 걸치고 아파트에서 30초 거리에 있는 어둑어둑한 골목길로 나섰다. 이튿날도 그 골목으로 나섰다.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느릿느릿 달리다가 이내 멈춰 쉬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자 욕심이 과해 정강이 통증이 찾아왔고, 언덕길을 오르다가 패배를 인정하고 버스를 타기도 했다.
점점 더 멀리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 두 달 동안은 아파트에서 가까운 길만 골라 달렸다. 몸뚱이는 느렸고, 마음은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과정 속에 두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하나는 달리는 동안엔 별로 슬프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달리는 동안엔 불안하지 않았다.
결혼이 파국을 맞고 몇 주가 지났지만 벨라 매키는 여전히 그 후유증에 비틀거렸다. 회사에 출근해선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숨죽여 울었다. 퇴근해 귀가한 후엔 바로 잠옷으로 환복換服, TV를 틀어 아무 방송이나 멍하니 시청했다. 외출하는 날엔 술을 때려 붓고 또 울었다.
하지만 달릴 때는 그 모든 것을 잊어 버릴 수 있었다. 누군가의 안쓰럽다는 표정을 보지 않아도 됐고, 허그를 한답시고 강한 포옹으로 숨통을 조이는 사람도 없었다. 아니,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 자체가 없었다. 형광색 옷을 입고 나른하게 달리는 사람들 중 하나가 되어 도시에 녹아들었다.
불안장애 유형
강박장애공황장애공포증(광장공포증, 폐소공포증 등)사회불안장애(사회공포증)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범불안장애

(사진, 58쪽)
불안과 걱정은 엄연히 다르다. 굳이 강조하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정신 질환을 흉으로 보는 분위기를 완화하고 정신 질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면 불안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울증이 단순히 ‘슬픈 느낌’을 의미하지 않고 산후 우울증이 단순히 ‘육아 스트레스’를 의미하지 않듯이 불안증도 초조한 것과 다르다. 그리고 굉장히 흔하게 볼 수 있다.(58쪽)
오늘은 타이머를 보지 않고 10분 동안 쭉 달렸다. 처음이다. 평소엔 얼마나 버텼는지 봐야만 했다. 장족의 발전이다. 집을 나와 10분 동안 직선으로 달렸다. 큰 길이 끝난 후에는 큰 맘 먹고 언덕길을 올랐다. 두 팔의 흔들림을 원동력 삼아 지면을 디디며 속도를 높였다. 이제 날마다 달리는 게 익숙해지고 팔다리도 적응했는지 기분이 좋았다. 이날 총 18분을 달렸다.
처음으로 여동생과 함께 달렸다. 남과 같이 달리는 경우는 처음이다. 동생은 키도 크고 힘도 무지 세다. 170센티미터 키의 언니를 맨날 땅꼬마라고 놀린다. 팔씨름도 못한다, 병뚜껑 하나 따는 데도 낑낑댄다는 등 놀림받는 일이 일상이다. 이런 동생은 몇 년 더 일찍 달리기를 시작해 금방 재미를 붙인 후 밤에 와인 한 병 마시고 자도 다음 날 하프 마라톤을 거뜬히 완주한다.
여기는 베네치아, 외국에서 달리는 것은 처음이다. 엄마의 제안에 따라 주말을 낀 연휴에 여행을 갔다. 몇 달 동안 꾸준히 달리면서 두려움이 많이 잠잠해진 상태였다. 사흘이 지나자 도시의 구조가 얼추 감이 잡힌다. 마지막 날 아침, 낮잠 자는 엄마를 두고 달리고 있다. 그냥 발길 닿는 대로 달린다.
‘딱 1분만 더!’가 나의 슬로건이 됐다. 1분만 더 달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매초가 지옥 같아도 1분은 버틸 수 있다. 1분만 더 뛰자고 기를 쓰고 발을 떼다 보면 최소 5분은 더 뛰었던 것이다. 그리고 두려워했던 것과 달리 낯선 곳에 가도 공황 발작이 일어나지 않았다. 고요와 여유를 누렸다.
오늘은 에든버러를 달렸다. 친구와 휴대폰을 호텔에 남겨둔 채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번화가를 내달렸다. 붉은빛에 물든 에든버러성의 위용에 넋을 잃었다. 휴대폰 없이 달리기는 처음이다. 휴대폰 없이 가게에도 가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만약에, 혹시,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휴대폰은 그녀의 안전망이 셈이었다.
처음으로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저자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발언권을 모두 잃은 기분이었다. 남편은 그녀를 버렸고, 그녀의 내면에서 갈수록 커지는 불안감이 언젠가 자신을 집어삼킬 것이 뻔한데도 방법이 없었다. 그녀의 인생이 갑자기 자신에게서 달아나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 말이 완전히 도망가 버리기 전에 고삐를 잡으려고 황급히 달려가고 있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후에는 그 고삐가 손에 닿을 만한 거리에 있는 것 같았다.

(사진, 235쪽)
달리기에 정석은 없다. 우리 동네의 어떤 할아버지는 매일 마트까지 달려간다. 낯 뜨거울 만큼 짧은 반바지를 입고 이마에는 1980년대 삼류 영화에 나왔을 법한 땀 흘림 방지 헤어밴드를 두른 채로. 할아버지가 놀라울 만큼 빠르게 달리는 것을 보면 그게 할아버지에게 맞는 방식인 것 같다. 나도 처음 몇 주 동안은 근처 골목길을 벗어나지 못한 게 떠올랐다.(263쪽)
공원을 달리고 있다. 10킬로미터쯤 달렸다. 푹푹 찌는 날이다. 잔인한 여름은 여태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 나는 바짝 마른 땅이 좋고 눈을 찌르는 태양이 좋다. 매순간이 도전으로 느껴진다. 거의 발가벗다시피 하고 달리니까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른다. 최근엔 덜 멈추고 더 빨리, 더 멀리 달리려고 밀어붙인다. 달리기가 인생의 일부가 됐다. 달리기가 체질이 됐다.
나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
한때 전업투자자의 길을 걸었다. IMF 시절에 다니던 회사의 임원 신분을 던지고 투자회사를 설립했다. 내 인생의 리즈 시절이었다. 큰 돈을 벌었다. '욕심은 끝이 없다'는 말처럼, 당시 나는 '딱 1억원만 더!'를 끝없이 추구했다. 승승장구하던 내 투자사업은 미끄럼을 타기 시작했다. 심적 고통을 이겨내려고 집 근처 올림픽공원을 매일 뛰었다. 아침에 거의 10킬로미터 이상을 뛰었다. 이후 주식을 정리한 돈으로 코스닥 기업 인수에 나섰다. 마魔가 끼었다. 졸지에 수백억을 탕진했다. 또다시 뛰면서 만회할 수 있다고 최면을 걸었다. 그러나 더 이상 리즈 시절은 없었다. 현재 힘든 시기를 건너고 있는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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