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물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인류사를 이 책에서는 시대순으로 정리했다. 어디서 들어보긴 했는데, 정확히 알지 못하는 교양 지식 때문에 우물쭈물해 본 경험이 있다면 잘 찾아왔다. 교양 이야기 앞에서 움츠러들기만 했던 당신을 위해 이 한 권의 책이 든든한 교양 밑천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임성훈은 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중 삶의 본질을 꿰뚫는 '문사철文史哲'을 접한 후 인문학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이후 오랜 시간에 걸쳐 인류가 쌓은 방대한 지식으로부터의 깨달음을 대중들과 소통하며 나누고 있다. 현재 아레테인문아카데미를 운영하며 공공 기관, 기업체, 학교 등에서 다양한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총 네개의 장에 걸처 60가지 필수 교양 지식을 담고 있는 책은 문명의 시작, 신과 인간, 이성과 자유 그리고 혁명의 시대, 죽음과 사랑 그리고 인간이라는 학문 등의 주제로 교양의 진한 재미를 제대로 느끼도록 만들어준다. 억지로 이를 암기하려 애쓰기보다는 마치 지나가는 풍경 감상처럼 편안하게 즐기면 된다. 이에 책 속 인상적인 교양 지식을 요약해 봄으로써 서평에 갈음하려 한다.
로마제국의 내전內戰
강력한 군사력으로 주변국과의 정복전쟁을 통해 점차 영토를 확장하던 로마제국은 귀족과 민중 간의 부의 격차가 커지고 군사력이 약화되는 가운데 제국의 운영 시스템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술라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는 상호 협력하는 '삼두 정치'를 고안해냈다.
갈리아 총독으로 10년 동안 800개 도시와 300개 나라를 굴복시키면서 카이사르의 인기는 날로 높아졌다. 원로원 보수파 귀족들은 폼페이우스를 이용해 카이사르 제거 작전에 들어갔다. 군대를 해산하고 로마로 귀국하라는 원로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카이사르는 군대와 함께 로마를 향해 진격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렇게 로마에서는 5년간의 내전이 발발했다. 카이사르는 3개월 만에 로마를 접수하고 폼페이우스군을 격파했다. 이집트로 달아난 폼페이우스는 결국 피살된다.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를 첩으로 삼고, 알렉산드리아 전쟁에서 승리해 그녀를 이집트 왕좌에 앉혔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당시 이집트를 떠나 돌아오던 길에 말썽을 부리던 폰토스 왕국의 군대를 빠르게 제압한 카이사르가 원로원에 전했던 이 말은 지금까지도 너무나도 유명한 명언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인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카이사르에게 맡겼다. 하지만 민중들의 이같은 지지가 독이 되었다. 두려움에 떨던 원로원은 브루투스를 앞세워 카이사르 암살을 결행했다. 시대의 영웅 카이사르는 친아들로 여겼던 브루투스의 배신에 발등이 찍히고 말았다.
소크라테스의 신탁 검증
소크라테스는 서른일곱 살에 포티다이아 전투에 참전했다. 당시 아테네는 테세우스를 숭배하고 있었는데, 테세우스는 크레타의 미궁에서 인신 공양을 받던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비롯한 여러 괴물을 해치우고 아테네의 왕위를 물려받았다는 그리스 신화 속 영웅이다.
아테네는 힘없는 도시였던 포티다이아에 무리한 조공을 요구한 것도 모자라 중무장 보명 1천여 명을 선발대로 파견, 소크라테스도 그중 한 명이었다. 3년간의 장기전으로 인해 아테네군의 사기는 땅바닥에 떨어졌다. 전염병으로 사망한 아테네군의 시체는 매장도 못해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고, 한편 포위당한 포티다이아인들은 서로를 잡아먹는 아비규환 상태였다. 이 비극은 아테네의 팀욕 때문에 빚어진 참상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이 전쟁터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질문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포티다이아 전투가 한창이던 시기, 소크라테스의 친구이자 제자였던 카이레폰은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을 찾았다. 그는 아폴론 신에게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인간이 있는지 물었고, 신의 뜻을 전하는 여사제의 답은 ‘없다’였다. 카이레폰의 말을 전해 들은 소크라테스는 혼란스러웠다. ‘나는 전쟁터에서 그토록 혼란스러웠는데 왜 신은 나보다 지혜로운 자가 없다고 말했을까?’ 고민 끝에 그는 신탁을 검증해 보기로 한다.
그때부터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유명 인사들을 찾아다니며 미덕이 무엇인지 캐물었다. 정치가, 작가, 장인 등등. 그들과 대화를 나눈 소크라테스는 비로소 신의 뜻을 알게 된다. 그가 만난 유명 인사들은 하나같이 자신처럼 무지했지만 놀랍게도 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오직 소크라테스만이 ‘아는 것이 없다’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검증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 플라톤,<소크라테스의 변명>
오디세우스의 귀향歸鄕
그리스의 전설적인 서사시인 호메로스의 작품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는 서양 문학의 원형이 되었다. 한편, 호메로스는 눈이 먼 소경으로 구걸하고 다녔다고도 말하고,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그럼에도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그리스 지성인들은 호메로스의 작품을 수없이 인용, 작품 속의 영웅 이야기에 열광했다.
<일리아스>는 그리스 연합군과 트로이 간에 10년 동안이나 이어진 트로이 전쟁이 배경이다. 전쟁의 마지막 50여 일 동안 그리스와 트로이 영웅들의 명예, 분노, 절망, 죽음 등을 그렸다. <오디세이아>는 <일리아스>에 이어지는 이야기로 그리스가 승리한 후 그리스의 작은 섬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가 귀향하면서 겪는 모험담을 다룬다. 이는 서양 문학에서 모험담의 원형이라고 불린다.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고난苦難. 오디세우스의 귀향이 바로 그러하다. 호메로스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우리네 인생이라는 여정이 한편으로 오디세우스의 귀향길과 같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고난을 통해 단련되고 성장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전해지는 오디세우스의 최후에 관한 여러 설을 망라했을 때 그의 노년이 불행했다는 기록은 없다. 화해와 평온이 가득했던 그의 말년처럼 고난의 길목마다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고향에 돌아온 그의 의지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인류사 최악의 펜데믹 흑사병
12~13세기에 찬란한 꽃을 피웠던 중세 유럽 봉건사회는 14세기부터 무너졌다. 장원 중심의 농촌경제와 길드 중심의 도시경제가 근간부터 흔들렸다. 그 원인으로는 기근, 십자군 원정 등 많은 것들이 얽혀 있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흑사병이었다.
흑사병은 페스트의 일종으로 급성 열성 감염병인데, 종류가 많았고 유럽에서는 처음에 선腺페스트가, 나중에 폐肺페스트가 유행했다. 선페스트는 벼룩에 의해 감염되어 고열로 고통받다가 정신을 잃고 사망에 이르고 폐페스트는 페스트균이 폐에 침입해 피를 토하거나 고열 증세를 보이다가 호흡 곤란에 이어 정신을 잃고 사망하는데, 발병 후 사망까지 불과 24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망 직전 온몸에 종기가 번진 뒤 피부가 검은색으로 변해 이를 ‘흑사병’이라 불렀다.
14세기 유럽의 의학 수준에서 흑사병에 걸린 환자에게 처방할 수 있는 조치는 많지 않았다. 페스트균을 막기 위해 환자가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문에 못을 박거나 방에 불을 지르는 정도가 일반적이었다. 사람들은 헝겊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안심할 수 없었고 하늘을 바라보며 신을 향해 기도할 뿐이었다.
이 병은 1346년경 크림반도의 해안 도시 카파에서 시작되어 흑해를 지나는 지중해 항로를 따라 퍼지며 순식간에 이탈리아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당시 이탈리아 상인들이 중앙아시아에서 유목민의 공격을 받고 카파로 피난 온 뒤 이탈리아로 귀국했는데, 이들의 이동 경로를 따라 흑사병이 전염되었다. 중앙아시아와 흑해 인근에 흑사병을 옮긴 것은 몽골군이었다.
단테의 <신곡>
<신곡>은 지옥 편, 연옥 편, 천국 편 총 세 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지옥과 연옥에선 주인공 단테를 이끌어주는 길잡이로 베르길리우스가 등장하고 천국에선 베아트리체가 완벽한 신성이자 빛, 이상향이라면 지옥과 연옥의 베르길리우스는 아주 현실적인 길잡이라는 점이 특징적이다.
단테는 행동만이 사람들을 비참함에서 행복으로 이끌 수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작품 <신곡>을 ‘코메디아(Commedia)’라고 불렀다고 한다. <신곡>을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희극으로 여긴 것이다. 단테가 기획한 <신곡>은 정말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희망만을 이야기하는 대서사시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이 시기, 인류의 역사도 드디어 <신곡>의 희망적인 메시지처럼 암흑과 같던 중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이성과 자유로 상징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내려 하고 있었다.
이밖에도 책은 시민혁명의 전형으로 불리는 '프랑스 대혁명', 냉소적인 비관주의자 쇼펜하우어의 '삶은 고통'이란 외침, 미국 링컨 대통령의 노예 해방 선언과 이에 대한 찬반으로 인해 발생한 미국 님북전쟁이 초래한 산업화,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의 의미, 헤밍웨이의 작품 <노인과 바다>가 우리들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등을 얘기한다.

교양을 채워 줄 든든한 밑천
책에 나오는 60가지 초압축 교양수업을 굳이 순서대로 차근차근 읽을 필요는 없다. 이미 지식이 풍부한 사람은 자신이 꼭 알고 싶은 이야기로 건너뛰어도 무방하다. 아무튼 한 권의 책이 우리들의 교양 수준을 업그레이해 줄 든든한 밑천임엔 틀림 없으니까 말이다. 교양에 목마른 모든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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