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스포츠에 열광하고 스포츠를 사랑하는 이유는 승리 때문이 아니라 바로 '꿈' 때문이라는 것을, '꿈'을 향해 달리는 이 감동적인 이야기들은 수없이 많은 영화들로 재탄생되었다. 그중에서도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스무 편의 영화들은 평생을 스포츠와 함께 살아온 나의 마음속에 앉아 있는 '최고'의 이야기들이다. - '머리말' 중에서

책의 저자 이석재는 스포츠 마니아이자 영화와 책에 미친 사람으로 현재 MBC 스포츠플러스 PD이다. 1995년부터 MBC <출발! 비디오 여행>, <아주 특별한 아침> 등을 연출하다가 한일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에 스포츠 PD로 변신, 지금까지 각종 국제대회 중계, 스포츠 다큐멘터리 제작, 메이저리그 및 KBO리그 중계 등 스포츠 프로그램을 연출해왔다.
책은 2부로 구성되어 1부(야구, 영화를 만나다)에선 시카고 컵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다룬 영화 <백 투 더 퓨처 2>, 삼미 슈퍼스타즈의 감사용 투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 등 총 8편의 야구 관련 영화들이 소개되며 2부(영화, 스포츠를 담다)에선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 간에 벌어진 세계 헤비급 권투 타이틀전을 다룬 영화 <우리가 왕이었을 때>, 1947년 보스톤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한 서윤복 마라토너 이야기를 다룬 영화 <1947 보스톤> 등 총 12편의 스포츠 영화를 소개한다.
시카고 컵스의 월드시리즈 우승
1945년 10월 6일, 전 세계의 야구팬들에게 가장 유명해진 사건 하나가 일어난다. 장장 108년 동안 시카고 컵스를 따라다닐 지긋지긋한 '염소의 저주'가 발생한 날이기 때문이다. 시카고 컵스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월드시리즈 4차전이 열리던 날에 한 열성 팬이 애완 염소를 데리고 경기를 구경하러 왔던 것이다.
이 팬은 홈구장인 리글리 필드 근처에서 ‘빌리 고트 태번(Billy Goat Tavern)’이라는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날 컵스의 열성 팬 빌리 시아니스는 자신의 애완 염소인 ‘머피’(이 이름은 꼭 기억해야 하는데, 70년 후 다시 등장한다)를 데리고 리글리 필드에 입장한다.
하지만 염소의 악취 때문에 주위 관중들이 항의를 하자 구단주는 빌리를 퇴장 조치했다. 이에 이 팬은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패배할 것이고, 앞으로도 염소의 저주로 인해 월드시리즈에서 결코 우승하지 못할 것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정말 2승 1패로 우세했던 컵스는 오히려 3승 4패로 역전당하며 우승에 실패했다. 이후 컵스는 부진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우승은커녕 포스트시즌조차 진출하지 못했다.

영화에선 2015년 컵스가 우승하지만 실제론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상대팀 뉴욕 메츠에게 내리 네 판을 모두 지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하지도 못했다. 챔피언십 시리즈 4차전까지 4경기 연속 홈런을 친 대니얼 머피(과거 저주를 유발한 애완 염소의 이름도 '머피')였으니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016년 컵스는 그토록 염원하던 월드시리즈에 진출했다. 상대팀은 '와후추장의 저주'에 시달리고 있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현재는 가디언스로 개명)였다. 두 팀 중 한 팀은 비로소 저주에서 벗어나는 셈이다. 시리즈 4차전까지 1승 3패로 뒤진 컵스는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그런데, 컵스는 5차전과 6차전 모두 극적으로 승리, 3승 3패로 균형을 맞추었다. 운명의 7차전, 컵스는 8회말 투아웃까지 2점을 앞서고 있었다. 김칫국을 먼저 마신 탓일까? 믿었던 마무리투수가 동점 홈런을 허용,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 접전 끝에 8대 7로 승리함으로써 108년간 이어온 '염소의 저주'가 마침내 풀렸다. 참고로, 컵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은 1908년이었다.
삼미 슈퍼스타즈와 감사용 투수
2004년에 개봉한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은 한국 프로야구 출범 첫해, 삼미 슈퍼스타즈의 투수였던 감사용을 주인공으로 다루었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전기리그 10승 30패로 승률 2할 5푼, 후기리그는 5승 35패로 승률 1할 2푼 5리를 기록해 종합 승률 1할 8푼 8리의 전무후무한 진짜 꼴찌팀이었다.
그렇다면 감사용 투수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주축 선수였을까? 아니다. 루저 중의 루저였다. 어떻게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전두환 정권은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에서 멀어지도록 야심차게 추진한 것이 소위 '3S'정책이었다. 스포츠에 해당하는 프로야구 출범도 추진되었다. 서울엔 MBC, 경상도엔 롯데와 삼성, 충청도엔 OB, 전라도엔 해태 등 5개 팀이 확정되었다.
인천-경기-강원-이북 5도를 연고로 하는 팀을 창단할 기업이 없었다. 강원도가 고향인 현대 정주영 회장에게 제안했지만 거절당하고(훗날 이를 크게 후회하고 뒤늦게 프로야구 리그에 뛰어듬), 5개 팀만으로 출범하자니 애로점이 많았다. 심지어 프로야구 리그 출범을 1년 늦추자는 의견도 제기되던 차에 삼미그룹의 젊은 총수 김현철 회장이 KBO에 야구팀 창단 의사를 밝혔던 것이다.
사실 삼미그룹은 무역, 해운, 특수강, 광업 등이 주된 사업이라 홍보 효과를 노릴 만한 소비재 분야는 전무했다. 얻을 것도 별로 없는 프로야구팀 창단을 결정한 것은 오직 김현철 회장의 프로야구 사랑이었다. 그는 미국 유학 시절 메이저리그의 열렬한 팬이었던 것이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 선수 구성은 지역 연고 선수로 충당해야 했다. 삼미구단은 인천의 동산고와 인천고에서 충당해야만 했다. 특히 투수가 가장 부족했다. 겨우 6명뿐, 그나마 좌완 투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삼미구단은 창원으로 동계전지훈련를 갔다가 그곳에서 직장인 야구리그의 슈퍼스타였던 왼손투수 감사용을 목격했던 것이다.
감사용은 중학교 2학년 때 야구를 시작, 마산고 시절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 어렵게 대학에 진학했지만 부상을 입은 후 군에 입대하고 말았다. 군 전역 후 계속 야구를 하고 싶었지만 실업야구에서도 그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이에 그는 삼미 종합특수강 창원공장에 취직, 매 관리팀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파견근무 형태로 동계훈련 중인 삼미 슈퍼스타즈 선수들에게 배팅볼을 던졌다. 영화 속의 장면은 공개 오디션을 통해 입단하는 것으로 그려지지만, 이는 극적 효과를 노린 픽션이었다.
정글 속의 대혈투
1974년 10월 30일, ‘복싱 역사를 통틀어 단 한 경기를 꼽으라면 어떤 경기를 꼽겠는가’라는 질문에 지금까지도 압도적인 1위로 꼽히는 무하마드 알리와 조지 포먼의 세기의 대결이 아프리카 자이레의 수도 킨샤사에서 열렸다. ‘정글 속의 대혈투(The Rumble In The Jungle)’라고 불린 이 경기는 자이레 현지 시각으로 새벽 4시에 펼쳐졌는데 막대한 중계권료를 지불한 방송사들이 미국의 저녁 시간대에 중계가 방송될 수 있도록 경기 시간을 조정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자이레의 독재자 모부투는 아프리카 흑인의 위대함을 전세계에 알리고 자신의 통치 정당성을 확보할 목적으로 막대한 돈을 투자하여 이 세계적인 경기를 유치했던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너무 더운 곳이라 경기는 새벽 4시에 이뤄졌음에도 수만 명의 관중이 몰려들었다. 전 세계 10억 명 이상이 이 경기를 지켜볼 정도였다.

이 대결의 경기 내용은 역사에 남을 명승부였다. 알린는 로프에 등을 기댄 채 핵주먹의 포먼을 기다렸다. 정면승부론 승산이 없다고 판단, 체력을 비축하면서 포먼의 공격을 유도해 계속 피하면서 결정적인 한방을 노렸던 것이다. 경기 초반에 늘 KO로 승리했던 포먼은 7라운드 이상 뛰어본 경험이 없었다. 이미 일방적인 공격으로 인해 매우 지쳐 있었다. 로프에 기댄 알리는 8라운드에 경기를 끝내기로 결심, 포먼의 안면에 정확한 원투 콤비네이션으로 KO승을 거두었다.
영화 <우리가 왕이었을 때>(1996년)는 바로 이 대혈투를 영상으로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다. 다큐멘터리 거장 레온 가스트가 연출한 이 영화는 개봉 이듬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고 대중적 흥행에도 성공하여 지금까지도 최고의 복싱 영화 중 하나로 손꼽힌다.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
1960년, 무명의 에티오피아 선수가 부상 대체 선수로 로마 올림픽에 참가해 마라톤 종목에서 금메달을 차지한다. 그는 레이스 중 신발도 신지 않은 채, 수많은 우승 후보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해 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다음 날 ㅈ주요 언론들은 "이탈리아는 근홧발로 에티오피아를 짓밟았지만 에티오피아는 맨발로 로마를 정복했다"라며 이 소식을 전 세계에 알렸다.
아베베는 에타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로부터 약 130km 떨어진 '자토'라는 작은 마을에서 1932년 태어났다. 에티오피아 고원지대에서 소몰이 목동을 하며 지냈던 그는 우연힌 기회에 셀라시에 황제의 친위대에 들어가게 된다. 이후 그는 한국전쟁 때 에티오피아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우리와는 각별한 인연을 지닌 인물이다.
한국전쟁 후 고국으로 돌아간 아베베는 우연히 1956년 멜버른 올림픽 마라톤 경기를 보게 되는데 이 경기에 완전히 매료된다.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마라톤을 시작했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24세, 사실 마라토너로서 너무 늦은 나이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고원지대에서 소를 몰면서 단련된 강력한 심폐기능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마라톤 선수로서도 빠르게 성장세를 보였다.

2009년에 개봉한 영화 <The Athlete>는 화려했던 올림픽 2연패 시절보다 교통사고 이후 좌절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아베베의 모습에 포커스를 맞춘 감동적인 영화이다. 실제 로마 올림픽과 도쿄 올림픽 마라톤 장면이 삽입되면서 다큐멘터리 느낌도 나지만,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고 이후의 모습을 자세히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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