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곰돌이님의 서재
  • 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 13,500원 (10%750)
  • 2020-02-14
  • : 6,038
나는 무엇으로 불려지길 원하는 사람일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을까?

타인의 생각과 시선을 그토록 신경 쓰며 살아왔던 내가, 이제는 잘 하지 않는 생각들이다.
그런데 권여선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 다시 이런 상념에 빠지게 된다.


단 한번뿐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들을 8편의 단편으로 담아냈다.


한 사람의 내면으로 천천히 다가가 들여다 본 그들의 여정은, 낯선 거리감 속에서 마치 조금씩 반짝거리는 빛 줄기를 만난 듯 한 발 나아간 앞 날이 예상되는 누군가도 있었고, 세상과는 고립되어 자신은 겪어보지 못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을 통해 더욱 더 깊은 어둠으로만 빠져들어가는 누군가도 있었으며, 서글픈 현실을 어쩔 수 없이 적응하고 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기에 세상에 뿌려진 수 많은 타인들을 만나 끊임없이 반복되는 삶을, 감정들을 파고 들어가며 살아가야 했던 누군가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마주했다.

<모르는 영역> 편에 담긴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는 풀리지 않을 것 같은 관계 속에서의 위태로움을 가까이에서 바라봤던 입장으로써 안타까움과 불안감을 가진 채 들여다 봐야 했지만, 서서히 느슨해지는 이들의 변화에 묘한 반가움도 느낄 수 있었기에 괜시리 뭉클하기도 했다.

각자의 사정을 더는 이해하고 싶지 않게 된 사람들에게 그럼에도 포기는 하지말라고 하는 듯, 서로를 헤아리는 마음을 어떻게든 심어주고 싶었던 노력과 애달팠던 마음이 헛되지만은 않았음을 확인하는 순간의 그 기쁨을 저버리지는 말라고 하는 듯.


물론, 때로는 포기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참 씁쓸한 생각일지는 몰라도 오히려 당장에 불행을 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예쁘고 화려한 포장지로 감싼 내용물을 꺼내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그 속에 뭐가 들어 있을지 조심스럽게 뜯어보는 그 순간의 행복도 물론 좋다.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마음이 얼마나 좋은가. 기대감을 가져본다는게.

그런데 나와 우리 주변 사람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보기 좋게 포장한 것이, 그들의 실제 음성이 들려오듯 그 감정 그대로 전달되는 공감의 글을 볼 때만큼 와닿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이번에 다시금 실감했다.


엄마가 떠넘기고 간 그 빚을 고스란히 받은 언니가, 또 다시 어린 동생인 소희에게 주고 떠나버린 이야기를 담은 <손톱> 편은 어린 소희에게 이 세상과 상황이 너무나 가혹했다.

어떻게든 또 감당하고 살아내야 했기에 남들 눈에는 모지락스럽게 보일지언정, 다른 방법이 없다.
먹는거 입는 거 줄이고 줄여서 돈만 미친듯이 벌고 살아야 된다. 그럼에도 이 상황이 도대체 언제쯤에야 끝날지, 자신의 나이가 얼마나 더 들어야 좀 나아지는건지 까마득하기만 한 소희의 이야기는 쉽게 다가가고 안아줄 수 없을만큼 조심스러웠다.
사람에게 마음을 많이 다쳤을 그녀에게 무슨 수로 위로를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섣부른 위로는 소희의 마음을 더 다치게 할 것 같았다.

‘내가 정말 사람들이 안절부절 못하게 할 만큼, 그렇게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으로 안절부절 못하게 할 만큼 불쌍한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 라고 느끼게 하는 가혹함을 줄까봐.

그러니 이 순간의 감정들을 담아 내는 저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얼마나 조심스러웠을까.

그럼에도 우연히 만난 자신과 닮은 남루한 옷차림의 할머니가 던진 웃음에 같이 웃어주는 소희다.
어느 날 운 좋게 앉아서 갈 수 있었던 버스 안, 밖에서 들어오는 햇살을 ‘따뜻하다’ 느끼며 이 순간의 좋음을 느껴보는 그런 소희다.


기대되는 미래를 바라보며 행복을 꿈꾸는 사람이 있듯이, 당장에 고통이 덜 한 삶, 덜 불행한 삶을 꿈꾸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저자는 알아주고 있었다. 이렇게 드러내기 보다는 덜어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도 박탈감 느끼지 않도록 인간의 정신을 곰곰이 들여다 본 사람처럼 생각해주는 저자의 위로를 느낄 수 있었다.


용기가 생긴다.
이 용기가 어디서 왔는지 확실히는 잘 모르겠지만, 잘 살고 싶어졌다. 더 잘 살아내고 싶어졌다.

바닥에 떨어졌다고 그대로 포기하지 말고, 그럼 그 바닥에 맞닿아진 채로 또 살아보자 생각하면서 표면적인 변화가 없더라도 그냥 잘 살아보자라고 하는 그 힘을 얻었다.
주어진 삶을 만끽하다가 괴로운 날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면, 그럼 그 삶 마저도 살자. 잘 살자. 더 잘 살아내보자.


그들은, 우리는,
비록 자신들이 원하던 것이 아닐지라도 주어진 대로 또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드러내기를 주저하며 덜어내는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면서 느꼈을 서글프고 애달픈 사람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섬세하게 담아준, 또 그렇기에 쓰라린 마음으로 읽을 수 밖에 없게 만들어 준, 하지만 섣부른 희망을 말하지 않아도 위로를 받음으로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만들어 준 <아직 멀었다는 말>이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