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곰돌이님의 서재
  • 도어
  • 서보 머그더
  • 13,500원 (10%750)
  • 2019-11-07
  • : 3,037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평소에 아이들에게 살가운 편은 아니었던, 한 40대 초반쯤으로 기억되는 국어를 담당했던 여선생님께서 계셨는데, 본 수업에 들어가기 전 에세이 전문 월간지 <좋은 생각>에 수록된 글을 하나씩 꼭 읽어주셨었다.

난 그 시간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평소에 좀처럼 곁을 내어주지 않으셨던 선생님께서, 우리를 싫어하는 게 아닌 것 같은 기분에 안심도 되고, 읽어주시는 글에서 감동을 하여 아침부터 언니랑 싸우거나 부모님께 혼나서 시무룩해져 있는 어린 마음에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글을 다 읽어주신 후에는 꼭 그 잔상을 느껴보라는 듯 한동안 말씀이 없으시다가 곧바로 수업에 들어가시곤 했다.

타인의 삶을 두루두루 살펴보며 무언가를 깨닫고 뉘우칠 정도로 철이 든 나이는 아니었지만, 선생님께서 읽어주시던 이야기들을 귀담아들으며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는 팍팍한 어른들의 고된 삶을 통해 사랑과 우정 그리고 기쁨과 희망을 배워나갔던 것이다.

나는 사람에게 가진 오해를 벗기고, 이해하는 마음이 부족하다 느끼기에 사람 간의 관계와 심리를 다룬 책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이제는 어느덧, 60대가 되셨을 선생님의 그 시절 음성을 떠올려 보며, 헝가리 작가 서보 머그더라는 여성을 통해 ‘이야기의 힘’을 다시금 얻어보고자 한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사는 작가인 ‘나’는 집안일을 돌봐줄 사람을 구하다가 ‘에메렌츠’라는 여성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도 않을뿐더러 일을 봐주는 시간대, 보수 등의 대해서도 자신이 정하는 둥, 독특하면서도 다소 무례하게 보일 수 있을 만큼 모든 면으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내 집에서 잠만 잘 자고 있는데 늦은 밤이든, 새벽이든 와서 일한다니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이 지긋한 이 여성이 일 하나만큼은 흠 잡을 데가 없다.


곁을 좀처럼 내어주지 않는 그녀와도 그런대로 각자의 스타일에 맞춰가며 살아가던 중, 나의 남편이 폐종양에 걸린다.
6시간이라는 긴 시간의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 죽음의 경계에 다다랐을 남편을 향한 걱정과, 공포 때문에 겁에 질린 나를 위해 안심을 시켜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담은 듯, 에메렌츠는 집에 돌아온 나에게 평소와 달리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끓인 포도주 한잔을 건네며, 처음으로 자신의 지난 이야기들을 털어놓는다.


덤덤하게 말하는 이야기 속에 어린 에메렌츠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새아버지마저 전쟁으로 잃었으며 어머니를 도와 아홉 살 때부터 사람들에게 요리를 해주고 쌍둥이 동생들을 돌봤다.
그저 절망에 빠져있는 아홉살 소녀였으며, 걱정과 불평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데 기어코 모든 것들이 우물 안에 물속으로, 매서운 빛이 번쩍이는 번개 속으로, 공기 중의 시커먼 연기 속으로 사라져 주었다. 모두를 잃은 어린 소녀는 하녀를 구하러 내려온 부다페스트 신사분들에게 맡겨진다.


이 책은, 전쟁의 참상을 거치고 그 안에서 선명하게 줄로 그어진 계급사회 속에서 철저히 분리된 채 살아갔던 실로 참혹하기 그지없는 한 여성의 인생을 품고 있으며,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 간의 관계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의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철학적인 메시지를 품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헝가리 왕국은 추축국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전세가 역전되면서 불안정한 위치에 놓이고, 1944년 독일이 헝가리를 점령하면서 헝가리 내에 있던 유대인들이 수용소로 추방되기 시작했다. 시대적 배경이 이러하니, 이 시기에 주인마님으로 모시던 부인에게 받은 그릇으로 만들어 온 닭고기 수프를 받은 나는 에메렌츠에게 혐오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사람들을 태운 열차의 목적지가 가스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문을 걸어 잠그고 아무도 들이지 않는 에메렌츠 집 내부에, 사형을 언도받은 사람들의 보물들이 있을 거라 짐작해본다.
그러나 그 오해도 오래가지는 않는다.

에메렌츠 주변인들이 말해주는 그녀와, ‘나’가 눈으로 보고 겪은 그녀는 때론 비이성적인 성향이 고착된 신경질적인 면이 있긴 해도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서로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곁에 다가갔던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무해한 위로를 주고받으며, 유난스럽지 않게 서로의 곁에 머무르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듯이, 말로써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던 두 여성의 우정은 맘 한구석을 일렁이게 했다.

상처입은 사람을 향한 위로의 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상대를 향한 감정은 빗나가지 않았다.


정해져 있는 형식이라도 있는 듯한 인식의 틀이 때론 내가 품을 수 있는 사유의 범위를 스스로 경계 지을 때가 있다.
그 틀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듯이 나는 그렇게 정형화된 사람으로 만족하며 지내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빗겨나가는 상황에 당혹스러워 바보같이 뭐가 잘못된 것인지 몰라 또 헤맨다.
실패를 주워담고 정말 잘 해보고 싶기에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기대해본다.


에메렌츠와 그녀를 둘러싼 타자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차이를 통해 그동안 내가 지닌 감정의 틈새를 채우고 있던 편견들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자신의 본질 너머 펼쳐진 세계를 들여다봄으로써 ‘나’가 에메렌츠를 이해하듯, 나 역시도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을 배워본다. 그리고 역시나 안심하는 순간 나와 이 책 속의 ‘나’는 실수를 하고 상처를 입힌다.

(P. 118) 지금은 알고 있지만, 그때에는 알지 못했다. 애정은 온화하고 규정된 틀에 맞게, 또한 분명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누구를 대신해서도 그 애정의 형태를 내가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어느 날, 에메렌츠와 가장 가까웠던 여성인 ‘폴레트’의 자살 소식을 접하고 서둘러 나는 이 소식을 전하지만 놀라지도 않은 채, 까던 콩을 마저 정리할 뿐인 그녀.
목을 매달고 생을 마감한 그녀의 선택은 부다페스트에서 지긋지긋하게 보았던 총살과 교살의 대상이었던 포로들을 떠올리게 했다.

나를 둘러싼 당연하게만 여긴 행복들과 요리하고 청소를 해주는 도움들, 그리고 누군가가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 믿는 사람들이 그동안 ‘다림질하는 여자’인 폴레트에게 얼마나 관심이 있었을까. 다른 사람들이 예배 시간을 갖는 동안 그들의 옷가지를 다림질해야 했기 때문에 교회를 나갈 수 없었던 폴레트.

남의 사정은 생각도 않고 뒤에서는 수군대며 ‘거만하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독감으로 모든 것이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삶을, 스스로 마감한 그녀의 선택은 자신이 원한 것일까.
아니면 선택당한 것일까.


에메렌츠는 불특정 적에 대해 모호한 위협을 하는 인물들 중심에 선 사람처럼, 육체의 노동으로 먹고살기 바빴던 노동자 계급으로서 사회가 이들에게 요구했던 것들, 권력을 가진 자들이 계급을 통해 누려온 것들을 끄집어내고, ‘나’는 인민권력의 대표자로서 그녀의 생각을 바꾸게 할 논리가 없기에 가까이에서 멀찍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평등한 공동체적인 삶이라 주장하는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와도 그녀를 이해 시킬 수 없었다. 홍조 띤 핏기 있는 얼굴로 살아본 적이 없었을 에메렌츠가 이제 노동이 힘들어질 노파가 되어 평화를 원하는 세상을 믿을 수 있었을까?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세상을 눈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저 빗자루질하는 사람과 그것을 시키는 사람으로만 나뉘는 고정된 세계관을 갖은 에메렌츠.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처참한 상황 속, 지하실에다가 총에 맞은 독일군 옆에 소련군까지 나란히 숨겨준 것을 보면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을 그녀도 이해한 채, 단지 공포에 질려 땀으로 범벅되어 있는 비참한 몰골의 사람들을 구원했을 뿐이다.

(P. 162) 이 노파에게는 최소한 국가의식이 아니라 그 어떤 종류의 의식도 없으며, 번득이는 머리가 빛나기는 하지만 희미한 증기 아래에서 그럴 뿐이었다. 그 모든 것에 대한 극심한 갈증과 그 많은 능력은 무위에 그칠 뿐.


이 책은 서정적인 문장에서 느낄 수 있는 서보 머그더의 따뜻한 감성이 담긴 소설의 옷을 입은 철학책과도 같았다.
그래서인지 밝고 화사함은 없지만 그렇다고 어둡지도 않은, 왠지 따뜻함이 느껴지는 이 책의 표지 색상이 더욱 와 닿고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사람 간의 관계를 담은 책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을 벗어나, 한 장 한 장 가볍게 넘기기 어려울 만큼 마음을 무겁게 했다.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나가던 시절.
자신들의 필요로 손을 뻗었다가 거두기를 스스럼없이 하는 사람들을 너무도 많이 만나봤을 에메렌츠는 아마 사람에게 더 이상의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을 택하고, 문을 굳게 닫아버린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한 사건이 벌어지고 나는 에메렌츠에게 오랜 시간 아슬아슬하게 혼자만의 세계에서 이어붙여 오고 있던 것들을 원치 않는 난도질과 끌어당김으로 무너지게 했고 좌절감을 안겼다.
20년의 세월 동안 함께 해 준 그녀를 향한 ‘죄의식’을 가진 채, 시간이 흘러 나는 삶의 끝자락을 향해 가고, 때론 엄마이자 친구이자 영혼을 나눈 동반자였던 이제는 세상을 떠나버린 에메렌츠의 삶과 끝자락을 가늠해본다.


가슴에 옹이가 박힌 채 살아가면서도 오고 갈 데 없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향해, 그리고 손길이 있어야 하는 사람들을 향해 따뜻한 마음을 건네며 살았던 에메렌츠를 떠올리며 위로하듯이,
당신의 마음을 분명히 그녀도 알고 있을테니, 조금은 편안해지면 좋겠다고 위로를 하며 ‘나’에게 끓인 포도주 한잔을 건네고 싶은 마음이 든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