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산업혁명 이전, 옛 사람들은 수십 년을 공부하면 자기 분야는 물론, 당대의 웬만한 책을 거의 모두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지식의 양과 세분화가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불가능하다.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매년 내가 읽은 양을 훨씬 상회 하는 책이 새로 나온다. 읽을 책은 여전히 산처럼 늘어나기만 하고 독서 속도는 해가 갈수록 더뎌지지만 묘하게 내가 꾸준히 보는 연속물이 있다.
바로 트렌트 코리아 시리즈와, 세계미래보고서 시리즈, 데이비드 발다치의 ~ 남자 시리즈다. 이 중 가장 선호하는 것은 역시 발다치의 소설이다. 거의 매년 상당히 두꺼운 책을 재미나게도 만들어낸다. 주인공은 언제나 에이머스 데커다. 바뀌는 것은 항상 범죄의 동기,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배경이다. 물론 데커의 상황이 조금씩 바뀌고 있긴 하다. 그는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된 대신 감정을 거의 상실했다. 하지만 데커는 시리즈가 지날 수록 기억력은 조금씩 감퇴하고, 대신 공감 능력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으며 이번 책에서도 그러한 양상은 계속된다.
이번 작인 기억을 되살리는 남자에서는 데커의 주변인들이 바뀐다. 데커에겐 믿음직한 FBI상사 로스보거트와 파트너 알렉스 재미슨이 있었다. 이들은 데커의 이상스런 성격과 능력의 지지자들이다 하지만 상사는 나이가 들어 퇴임했고, 재미슨은 새로운 남자를 만나 다른 인생을 설계 중이다. 그리고 책을 열자마자 데커는 새벽에 전화를 받게 된다. 오랜 경찰 동료로 그녀는 치매를 앓고 있었는데 자신의 사랑스런 딸이 기억나지 않자 데커의 만류에도 자살한다.
그리고 데커는 동료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새로운 상사에게 새로운 파트너를 배당받는다. 그리고 플로리다로 날아가 새로운 사건을 접수하게 된다. 지역의 한 유명한 연방판사가 그녀의 경호원과 같이 살해된 것이다. 판사는 매우 부유했고, 이혼상태였으며, 미식축구선수를 꿈꾸는 장성한 아들이 있다. 경호원은 권총으로 살해당했고 판사는 칼로 살해당했다. 판사는 눈구멍이 뚫린 안대를 쓴 상태였고, 시신 주위엔 법과 관련한 라틴어가 쓰여있었다.
현장엔 이상한 점이 있었다. 바로 살해당한 경호원의 입안에 슬로바키아의 구 지폐가 구겨넣어져 있었던 것이었다. 데커는 새로운 파트너인 화이트와 티격태격하며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발다치는 시리즈에서 두 개의 사건을 하나로 연결하는 재주를 얼마전 부터 보이고 있는데 이번 작에서도 그런 모습이 나온다.
이런 장치는 사건을 엉뚱하고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재미가 있다. 사건에는 여러 치정과 정치, 애정이 얽혀있었다. 데커는 이번에도 여러 위기를 넘기며 이 어려운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발다치의 소설은 꽤나 끝까지 읽어도 범인이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는 재미가 있다.
이번 시리즈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으며 꽤 두꺼운 책임에도 이틀 간 읽었다. 늘 기대되는 시리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