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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가방의 작은 책꽂이
  • 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
  • 손호영
  • 15,120원 (10%840)
  • 2024-02-07
  • : 2,249

현직 판사가 다양한 판결문들을 보면서 그 안에 담겨 있는 의도와 의미들, 놓치기 쉬운 뉘앙스 같은 것들을 읽어내는 책이다. 판결문을 일종의 콘텐츠로 볼 수 있다는 저자의 시각이 신선하다. 보통 사람들에게 판결문은 대체로 무미건조하고, 한없이 길게 늘여 쓰는 나쁜 문장의 전형 정도로 느껴지곤 하는데, 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확실히 좀 다르게 보이기도 하나보다.


총 3부로 나뉜 책은 각각 진실, 설득, 이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저자는 판결문을 쓰면서 판사가 집중했던 부분에 따라 판결문을 이렇게 분류한다. 판사도 사람인지라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판결을 내리면서 어찌 별 생각이 없을 수 있을까. 우선은 진실을 파악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고, 그렇게 내린 판결이 당사자들에게 충분히 와 닿을 수 있도록 설득도 하고, 그 한계에 대해서도 충분히 인식하며 보충하기 위해 애를 쓸 것이다. 여기에 저자가 뽑아놓은 판결문들에는 그런 판사들의 고민이 엿보인다.






보통 때라면 이런 책을 보면서, 판사들의 인간적인 면을 살짝 엿볼 수 있어 재미있었다고 간단하게 평을 하고 말 것 같은데, 시국이 시국인지라 그렇게 우호적으로만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나 최고재판소라고 하는 대법원의 대법관들이 이전에 선고해 왔던 얼토당토않은 판결들이 드러나면서 사실 한가하게 그들을 볼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국회에도 자주 나와 입장을 표명하는 법원행정처장은 CCTV에 뻔히 보이는 접대 받고 있던 법무부 차관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또 다른 대법관은 버스 기사가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의 해고를 정당하다고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에는 대법원이 판결을 내릴 때는 사건 기록을 다 살펴볼 필요까지는 없다고 스스로 입장까지 발표했으니 뭐.


물론 판사집단이라는 것도 머리가 아홉 개 달린 거대한 키메라의 형태로 되어 있는 건 아니니까, 판사 각자의 생각이 있고 여기 인용되어 있는 것 같은 판결문을 쓴 독특한 판사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조직에는 그 조직만의 문화라는 게 있는 것도 사실인지라, 일련의 막장 판결들이 드러나는데도 그저 입 꾹 닫고 모른 척 하는 모습들만 보여주는 걸 보면 그냥 넘어갈 일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그들이 가진 권력은 엄청나게 큰데, 그들에게는 선거라는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하지도 못한 존재다. 민주주주의 국가에서 선출되지 않은 직위에 너무 많은 권한이 주어지는 건 분명 잘못된 일이다. 언젠가 대법관을 역임하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청탁금지법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존재 의의는, 선거에서 다수를 점할 수 없어 대표를 내세울 수 없는 소수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우리 사법부가 이런 통찰에 귀를 기울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책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저자가 그리고 있는 이상적인 재판정의 모습과 우리가 뉴스로 마주하는 실제 재판정의 모습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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