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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님의 서재

점심을 먹고 식당 근처의 공원을 친구와 천천히 걸었다. 소화도 시킬 겸 겸사겸사 나선 산책이었지만 부쩍 높아진 기온 탓에 걸음은 마냥 느려졌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구름이 많은 하늘이 여름 햇살을 조금쯤 가려주었다는 것. 그 시간에도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아주 없지는 않아서 버찌가 까맣게 떨어진 산책로를 많은 이들이 밟고 지나갔다. 심술궂은 바람이 이따금 잊을 만하면 불곤 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일주일여가 지나고 있다. 그럼에도 주변 분위기는 많이 바뀐 듯하다. 뭐랄까, 전에 비해 생기가 돈다고 할까. 확실히 식당이나 카페 등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많아졌음은 물론 손님들의 표정도 밝아진 듯하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건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이전 정부는 도대체 뭘 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경제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는데 지난 정부는 3년 동안 도대체 뭘 했으며, 대통령은 어떤 역할을 했던 것일까. 밤낮 부어라 마셔라 술이나 처먹고, 국정운영은 나 몰라라 하면서 세금만 축냈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아니 들 수 없다. 안규철의 저서 <사물의 뒷모습>을 시간이 날 때마다 아껴가며 읽고 있다.


"말에도 유효기간이라는 게 있다. 날짜가 지난 신문기사는 뉴스로서의 의미를 잃고, 때를 놓친 뒤늦은 사과는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낡은 구호는 비웃음을 살 뿐이고, 상투적인 은유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물론 한 사람에게 일생 동안 변함없이 유효한 말도 있고, 개인과 세대를 넘어 인류의 삶에 빛이 되는 말들도 있지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말들,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할수록 해가 되는 말들이 더 많다. 오염되어 더 이상 쓸 수 없는 말이 있고, 닳고 닳아서 원래 의미를 잃어버린 말이 있고, 오랫동안 쓰이지 않아서 아무도 기억 못 하는 말이 있다. 진실을 감추고 왜곡하는 데 쓰이는 말이 있고, 사람을 현혹하거나 무너뜨리는 데 쓰이는 말이 있다. 그렇다고 이런 말들을 죄다 쓸어 모아서 쓰레기장에 버리거나 땅에 묻을 수는 없다. 그렇게 하더라도 그것들은 다른 어딘가에서 버젓이 쓰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감쪽같이 포장을 바꿔 다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유효기간이 지난 죽은 말들이 돌아다니는 세상에서 말은 믿을 수 없는 것이 된다."  (p.137~p.138)


지난 정부에서 여러 차례 거부권이 행사되었던 3개의 특검법이 오늘 의결되었다. 지난 정부의 대통령은 자신과 부인의 잘못에 대해 사과를 한 적도 거의 없지만, 어쩌다 하는 사과 역시 '진실을 감추고 왜곡하는 데 쓰이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그와 같은 말들을 '죄다 쓸어 모아서 쓰레기장에 버리거나 땅에 묻을 수는 없'지만 특검을 통해 낱낱이 드러내고, 그에 상응하는 죄의 대가를 받도록 했으면 좋겠다. 오늘은 제38주년 6.10 민주항쟁 기념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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