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도 그렇지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사회에서는 특히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격언이 수시로 입증되곤 한다. 냉혹한 현실이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비근한 예로 오랜 기간 알카에다 시리아 지부를 이끌었던 알샤라만 하더라도 한때 미국 정부에 의해 140억 원의 현상금까지 걸렸던 요주의 대상이었지만,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린 후 알샤라에 대한 현상금이 철회된 것은 물론 그가 이끄는 과도정부로 인해 시리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철회하고 경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상회담이 열리기도 했다. 그와 같은 사례는 비단 시리아에서 그치지는 않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을 원하는 트럼프가 자신의 의견에 따르지 않는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을 기자단이 보는 앞에서 심하게 면박을 주는 장면을 우리는 똑똑히 지켜본 바 있다.
비정한 국제사회의 현실에 비해 대한민국 국민의 정서는 사뭇 낭만적인 측면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초강대국 미국이 대한민국의 국내 정치에 개입하여 자신이 믿는 정당에 유리하게 힘을 써줄 것이라는 믿음, 우리나라와는 관련도 없는 이스라엘이 미국과 함께 자신들의 편에 서줄 것이라는 믿음은 한 손엔 성조기를 또 다른 한 손에는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광화문 광장에 나서도록 했으니 말이다. 이처럼 순진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 탓에 나는 이따금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 친구들로부터 이와 관련한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 시위에 나서는 사람들이 왜 성조기나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나오느냐는 질문. 나는 그들에게 장황한 설명을 할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우리 국민이 무식해서 그렇다고 대답하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나는 그저 나도 잘 모르겠다는 대답으로 얼버무리곤 한다.
"이 책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배경, 의미, 상황, 종전을 위한 대안 등을 정치, 사회, 종교, 역사, 법률, 생태, 젠더 등 대부분의 영역을 망라해 다룬, 적어도 한국에서는 선구적인 책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한 균형 잡힌 지침서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모든 필자가 평화 지향적 연구자들이라는 점에서 상대적 약자이자 이 전쟁에서 더 큰 피해를 입고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 더 크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어쩌면 이 책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p.288)
서보혁 통일영구원 선임연구위원, 허지영 강원대학교 통일강원연구원 연구교수, 이찬수 카톨릭대학교 강사 등이 공동 집필한 <전쟁에게 평화를 묻다>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책이지만, 집필진의 논조나 주장이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사실 이 전쟁은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대규모 로켓 공격에서 시작되었지만, 네타냐후를 비롯한 이스라엘 시온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해 펼치는 인종청소는 도를 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영국은 이스라엘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중단하였고, 튀르키예는 이스라엘과의 교역을 전면 중단하였으며, 콜롬비아를 비롯한 남미 3개국은 이스라엘과의 단교를 선언했다. 유럽연합(EU) 역시 자유무역협정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중의 생존에 필수적인 물과 전기를 이스라엘 측이 공급을 차단하고, 식량.의약품.연료의 반입을 금지했습니다. 이로 인해 주민들은 굶주림과 질병, 기아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피폐한 삶은 이번 전쟁에 의해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지난 16년간 지속된 봉쇄로 가자 지구는 사실상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었으며, 주민들은 떠날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그 결과 가자는 굶주림, 고통, 죽음이 매 순간 일어나는 생존 불가능 지역으로 전락하였습니다." (p.26~p.27)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단 하나의 이유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실에서 적어도 학자는, 또는 여론을 주도해야 하는 언론인은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개가 그렇듯 '혹시나' 했던 기대는 '역시나'로 끝나고 말았다. 2025년 5월 13일 가자 지구의 하마스 정부 지도자였던 무함마드 신와르가 이스라엘의 폭격에 의해 사망했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군의 민간인 학살이 멈추지 않고 있는 현실을 뻔히 보고 있음에도 말이다. 물론 이 책이 쓰일 당시에는 신와르가 사망하기 전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의 대다수가 여성이나 어린이, 노인과 같은 약자에 집중되었다는 것을 상기할 때 학자적 양심이라면, 언론인의 양심이 존재한다면 이스라엘에 대해 강한 어조로 비난하는 게 옳다고 본다.
"가자 제노사이드의 경우, 이와 같은 변화된 국제 정세에 더해, 오랜 시간 미국과 유럽의 지원과 협력으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봉쇄와 학살의 연장선에 있었기에 더더욱 기존의 국제 질서가 학살을 막는 데 온전히 작동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여러 국제기구들은 나름의 결정과 판단으로 가자 제노사이드를 비판했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해 신속하게 공표했다. 그 중심에 국제재판소가 있었다." (p.162)
오늘(2025년 6월 13일)은 이란 핵시설 등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이 있었다. 이란과 미국의 핵협상도 결렬 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물론 이스라엘의 이와 같은 불법적 도발은 다방면에서 위기에 처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수도 있지만 인간의 생명을 파리 목숨쯤으로 생각하는 시온주의자들의 잔인성에 기초한다고 보인다. 그들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한 이스라엘은 전 세계인의 공적이 될 수밖에 없으며,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그에 상응하는 죄의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에게 평화를 묻다>는 중동 지역의 평화를 기원하는 책인 동시에 정의와 인도주의에 대한 세계인의 각성을 요구하는 책이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