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는 읽을 책이 산처럼 쌓여 있는데도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가듯 도서관은 뻔질나게 찾게 된다. 말하자면 병이다. 병도 중병이라고 하겠다. 이러다 보니 구매한 책과 빌린 책이 뒤섞여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반납 날짜가 임박하였다는 도서관의 카톡 문자를 받고서야 비로소 대출 도서를 찾느라 서재를 한바탕 뒤집어놓는 통에 책은 늘 여기저기 널브러진 채로 주인을 맞는다. 이따금 손님이라도 올라치면 집이 벼락이라도 맞았느냐며 어지러운 집안 풍경을 빗대어 놀리곤 한다. 그런 말이 듣기 싫었던 나는 큰맘 먹고 책정리에 나서기도 하지만 정돈된 모습도 잠시일 뿐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곤 한다. 내가 '엔트로피의 법칙'을 확고하게 믿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물건들이 제자리에 없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것들은 잠시만 눈을 떼면 엉뚱한 곳에 가 있거나 아예 사라져버리곤 했다. 나와 함께하는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까, 틈만 나면 다른 자리를 알아보러 다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적어도 주인에 대한 복무 외의 나머지 시간에는 자신들만의 삶을 살기로 작정들을 한 것 같다. 하여간 그것들은 찾으면 없다. 급하게 필요할 때일수록 더 그렇다. 안경, 열쇠 꾸러미, 지갑, 휴대전화만 그런 것이 아니라, 책꽂이의 책들과 작업실의 오만 가지 도구들, 얼마 전에 적어둔 메모들, 아껴두었던 기억들마저 다 한통속으로 그 모양이다." (p.39)
안규철의 에세이 <사물의 뒷모습>의 한 대목을 읽으면서 이런 고민이 나에게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저으기 안심이 되었었다. 나는 사실 이 책 <사물의 뒷모습>을 페이지의 순서에 상관없이 짬이 날 때마다 야금야금 아껴가며 읽었다. 그렇다 보니 어떤 부분은 두 번 혹은 서너 번씩 읽기도 했고, 또 어떤 부분은 건너뛰듯 후루룩 급하게 읽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리뷰를 쓰는 일은 마냥 미루고 말았다. 무작정 뒤로 미루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리뷰를 쓴다는 건 책과의 영원한 결별 혹은 복잡한 내 서재의 어느 귀퉁이에서 언제일지도 모르는, 적어도 나와의 눈 맞춤이 있기 전까지는 표지 가득 먼지만 쌓아가야 하는 신세를 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신세로 전락하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두고 싶었던 마음, 그게 뭔지는 나로서도 알 길이 없다.
"나에게도 나무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수많은 가지들이 있다. 그것들 중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정하고 잘라낼 것과 살릴 것을 정해야 한다. 생각처럼 잘되지는 않지만,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버릴 것을 버리는 나무의 결단을 배워야 한다. 나무가 된다는 것은 한곳에 자리 잡고 무슨 일이 일어나기만을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나무의 미덕은 인내와 여유로움만이 아니다. 치열한 자기성찰과 말 없는 실천에 나무의 미덕이 있다." (p.80)
언젠가 나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어떤 놀라운 발견이나 깨달음을 안겨주는 작가의 글을 읽었다 할지라도 "어머, 어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하고 감탄하며 경원시하거나 어떤 작가의 글이 나의 생각과 매우 비슷하다고 할지라도 "어머, 어쩜 내 생각을 이렇게 베껴놓은 듯 똑같을까!" 하고 동일시하지 않아야 작가를 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물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생각한다면 나날이 증가하는 '덕후'는 아예 생겨나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나는 다만 그런 놀라운 작가의 글을 만날지라도 그저 담담하게 '아, 이 사람은 세상을 이렇게 바라보는구나.' 하는 정도로 가볍게 여기기로 했을 뿐이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뭔가 대단한 것을 발견하고, 뭔가 대단한 것을 깨닫는 법이니까. 다만 그것이 글이나 다른 예술의 형태로 세상에 알려지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만 존재할 뿐.
"무슨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일이 어떻게 끝날지를, 그 일의 반대편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멈추는 법을, 말하기 위해서는 침묵하는 법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잊는 법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외로움을 견디는 법을 알아야 한다. 문제는 우리가 앞으로 가는 방법만을 배웠지 멈추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뭔가를 이루고 소유하는 방법만을 배웠지 그것과 헤어지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만을 배웠지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다. 그러므로 지금은 다시 멈춰야 하는 시간, 우리가 배우지 않았던 것들을 위해 지평선 너머를 응시해야 하는 시간이다." (p.224~p.225)
어제부터 내리는 장맛비가 날짜를 달리 한 오늘도 끊임없이 내린다. 눅눅한 습기가 방안 구석구석을 떠돌다가 사람의 시선이 닿지 않는 어느 곳에 불쑥 곰팡이를 피울 것 같은 토요일 오전의 멍한 시간. 나는 배고픔도 잊은 채 컴퓨터 앞에 앉아 리뷰를 쓴다. 이렇게 멍한 정신으로 어떤 좋은 글이 나올까마는 나는 그와 같은 일말의 기대감도 없이 다음에 해야 할 일에 손을 대기 전에 우선 이 글을 매조지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는 생각만 불현듯 들었던 것이다. 장맛비는 여전히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끼니 대신 눅눅한 습기만 잔뜩 흡입한 탓인지 배고픔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뭔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감각에 이상이 있는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