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의 생각을 스냅사진처럼 써보려 했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 순간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몸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바로 '뇌'라는 걸 각인시키려는 듯 한 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아무런 편견 없이 그냥 그대로 옮겨보자 생각했던 나의 의도를 무시한 채 바로 그 순간의 머릿속은 텅 비어버린 듯 멍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침입자에 대비한 소개명령이라도 떨어진 듯 여느 때는 잘도 떠오르던 시시껄렁한 생각들조차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럴 수도 있구나! 어느 심령술사가 내 앞에서 "레드 썬!"하고 주문을 건 것도 아닌데.
요란하던 장맛비가 그쳤다. 먼지 한 톨 남기지 않고 씻어낸 듯 대기는 더없이 깨끗했고, 반짝반짝 윤이 나는 햇살은 무채색의 보도블록에 부딪혀도 빛의 손실이 전혀 없이 그대로 반사되는 듯했다. 나는 이와 같은 극과 극의 비현실적인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바람이 을씨년스럽게 불고 하루 종일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던 게 바로 하루 전인데, 금세 이렇게 전형적인 여름 한낮의 풍경을 연출할 수 있다고?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는 날씨가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이러다가 언제 어느 순간 또 비가 쏟아질지 알 수 없는 상황.
6월도 이제 하순을 향해 치닫고 있다. 엊그제 시작한 듯한 2025년도 이미 반환점을 돈 상황. 지난 시간에는 언제나 미련과 후회가 뒤섞인다. 장례식장에선 언제나 망자에게 못해준 일만 기억되는 것처럼. 이렇게 햇볕이 투명하게 맑고 쨍한 더위가 내리쬐는데 인근 중학교의 농구장에선 어린 학생들이 더위도 잊은 채 농구를 하고 있다. 나도 저런 청소년기를 건너왔을 텐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뭔가 해야 할 일이 있을 텐데 머릿속 멍한 상태가 좀체 나아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