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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이 환하니 서러운 일은 잊어요
  • 문태준
  • 16,200원 (10%900)
  • 2025-07-15
  • : 3,690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꽃이 환하니 서러운 일은 잊어요
- 문태준 시인의 초록문장 자연일기
문태준 마음의숲 2025-07-15

시작부터 여름입니다. 책이 나온 시기도 바로 지금 여름이지요. 저자 문태준 시인이 제주도로 가서 5년간 살면서 적었다고 하니 5년간의 여름이 녹아있습니다. 첫장부터 여름 표현이 실감납니다.

여름은 어떤 것들로 구성이 될까. 가령 숲을 구성하는 것에는 나무와 화초, 돌, 이끼, 흙과 물, 신선한 공기, 햇살과 그늘, 흐르는 구름, 새와 벌레와 산짐승 등등을 열거할 수 있을 텐데, 여름은 어떤 것들이 모여 이 계절을 이룬 것일까. 아마도 여름을 구성하는 것으로는 작열하는 햇빛, 더운 공기, 훨씬 커진 숲과 푸른 산, 계곡의 물, 소나기, 천둥과 번개, 장마와 태풍, 모기장, 해수욕장과 휴가, 장화, 해바라기와 백일홀, 포도와 수박 등등이 아닐까.
21p, 소나기가 지나가는 시간.
숲에서 여름으로 이동합니다. 그런데 단어 하나가 쨍쨍한 여름 풍경을 느끼게 합니다. 역시 시인입니다. 더욱 멋진 것은 저 단어들이 다시 다음 글에서 하나씩 등장합니다. 산책도 가고, 농사도 짓고, 시골을 한껏 즐기고 있습니다.

산문인데 시적인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그 꽃 앞에 내가 앉고, 식구가 앉고, 찾아온 손님이 앉고, 나비가 앉고, 시간이 앉는다. 가만히 앉아 숨을 고르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기운을 받는다. 꽃이 환하니 사람도 환하고 세상도 환하다. 서러운 일은 잊을 수 있다.
27p, 꽃은 험담할 줄 모르고
화단을 꾸며 나비와 벌이 찾아오면 좋겠습니다. 오일장에 가서 꽃도 사올 수가 있군요. 웬지 장에 가면 먹을거리만 보이는데 시인의 눈에는 꽃이 보이나봅니다. 시인에서 정원사로, 나중에는 농부로 변신합니다.

이렇게 지금 계절과 딱 맞는 화려한 여름의 글을 읽어나가니 너무 선명한 여름이라 다음 가을, 겨울은 그다지 재미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닙니다. 풀베고, 수확을 하고, 연못을 거닐며 또 오일장에 가서 화초도 구입합니다. 독서도 간간히 합니다.
수확이 다 끝난 무화과 나무에 비료를 주는 옆집 할머니의 마음이 애뜻합니다. 가을이라 볼 수 있는 일들이 펼쳐집니다.

지금이 무더운 여름이라 겨울은 정말 안와닿는 말들일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아닙니다. 겨울에도 경작이 가능합니다, 에밀리 디킨슨의 자연에 대한 사랑을 읽을 수 있습니다, 눈보라 사이의 한라봉 열매를 구경합니다, 밭과 숲, 골목, 돌담에 쌓인 눈을 감상합니다,

폭설이 지나갈 때 부재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먼 곳과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런 감정의 생겨남은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고요했지만 허전했다. 마치 어렸을 적에 이처럼 많은 눈이 내려 세상의 일을 잘 모르던 소년의 마음에도 쓸쓸하고 외롭고 슬픈 느낌이 깃들었던 저녁처럼.
170p, 눈사람의 시간
지나는 사람없는 시골 마을에서 돌담에 쌓이는 습설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생각이 끝없이 펼쳐질 것만 같습니다. 그런 풍경을 시인의 언어로 읽으니 참 좋습니다.

봄에는 냉이도 캐고, 봄동도 뽑아봅니다. 단어에서 파릇파릇 봄이 느껴집니다. 책인데, 글인데 읽으면서 계속 풍경이 떠오릅니다.

들판을 메운 청아한 유채꽃이여
나는 그 한복판에 서서 입을 크게 벌리고 호흡한다
224p, 유채꽃, 텐허
딱 두줄에 몸이 절로 유채꽃밭 가운데에서 흔들립니다. 봄에는 봄에 맞는 시가 나오는군요.

책의 사이마다 배울 점이 많이 나옵니다.
기억을 적어둔 ‘시 창작 노트‘도 멋집니다. 메모해라, 기록을 하라는 말을 많이 듣지만 이렇게 잔잔하게 ‘시어나 구어체의 대화, 한 문장의 시구, 시적 모티프 등‘을 육필로 적어보는 모습도 낭만이 가득 느껴집니다.
여름을 의미 있게 보내는 방법으로 책을 한 권씩 완독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다른 계절은 띄엄띄엄 읽어도 웬지 여름에는 완독이지요.
여름 바닷가 풍경을 보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이런 시야는 굉장합니다. 저도 사무실에서 물끄러미 창밖을 보는데, 가을, 겨울, 봄보다 여름의 창문이 남다릅니다. 에어컨이 시원한 사무실 안이지만 저자는 같이 더운 바깥에 있네요. 바닷가의 아이들은 글로만 읽어도 정겹고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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