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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na90님의 서재
  • 현관문을 매일 여는 사람이 되었다
  • 강세형
  • 16,020원 (10%890)
  • 2025-04-17
  • : 1,625

평소 강세형 작가를 좋아해서 여러 에세이를 읽었다. 작가 소개에 '느리지만 꾸준히 안부를 전한다'라는 말이 딱 맞다. 부럽다. 글을 쓰고 그걸 책으로 펼쳐 낼 수 있다는 게 말이다. 마음만 있지 엄두가 안나던데.. 역시 한 번 책을 만들어 보면 계속 만들게 된다는 말이 맞는 거 같다. 나도 .. 언젠가는.. 


아무튼 집에서 모든 일을 하던 작가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서 보고 듣고 생각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일기 쓰듯 4계절 그리고 돌아온 봄을 담아 놓았다. 


2023년 4월 29일 부터 쓰기 시작해 1년 동안 걷고 매일 썼다. 신기하게도, 아깝게도 이 책을 읽은 날짜가 4월 27일이다. 이틀 만 더 있다가 읽었다면 운명적인 모먼트로 엮어 볼 수 있을텐데..30만 자의 기록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걸 엮은 글이 이 책이다. 작가의 책 제목이기도 한 '시간은 이야기가 된다' (나도 이 말을 좋아한다)의 말을 믿고 있었다. 

야행성인 이유로 의사에게 비타민 D를 처방 받아 먹었다니 낮에는 집에만 있을 작가가 눈에 선하다. 이제라도 밖을 나와 걷게 되었다니 아마 몸과 마음의 운동이 필요했던 것 같다. 걷다보면 작은 풀, 몰랐던 새, 지나쳤을 바람이 다르게 느껴진다. 열심히 걸었더니 발에 무리가 왔고 병원 신세도 지게 되었다. 결국 보호대를 착용하고 옳은 자세로 걷는 걸 멈추지 않는다.


가만가만. 작년에 나도 크록스를 신고 무리해서 걷다가 무릎이 아파 고생한 일이 생각났고, 책을 읽다 알게 되었다. 강 작가는 쌀 알레르기를 앓았고 그걸 최근에 알았다는 거다. 유난히 입 짧았던 건 다 이유가 있었던 걸까. 딸의 반찬을 한 트럭 챙겨주는 엄마의 마음이 책을 뚫고 나와 나에게도 전달 되었다. 


펼치고 끊김 없이 계속 읽어가다 여름까지 갔다. 1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많이 힘들었던거구나 이제야 깨닫는다. 장례를 마치고 추운 겨울 날 보일러의 결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가, 연통이 빠진 걸 보고 곤경에 처한 강 작가는 우연히 가스검침하러 온 아주머니의 구원으로 1년 후 여름 글을 쓸 수 있었다. 에어컨도 고장났었는데 기사님의 배려로 여름을 보낼 수 있었다는 감사의 소식도 전 했다. 혼자인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타인은 줄어들었지만 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은 살 만 한거라고..

나도 꾸준히 일기를 쓰던 20대를 지나 30대는 바쁘다는 핑계, 그리고 스마트폰을 쓰면서 일상을 기록하지 않게 되었다. 40대가 되다 보니, 아날로그적인 끄적임을 조금이라도 하려고 마음 먹고 있다. 인터뷰 이후 그 날의 상황, 그 사람의 느낌 등을 간단히 적고 있다. 잊지 않기 위해서는 기록해야만 한다.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한다. 일요일 주말 아침 혼자 깨어서 책을 읽고 기록하는 습관은 10년도 더 된 습관이다. 이 시간이 매우 소중하고, 거기에 커피 한잔까지 있다면 금상첨화다. 이런 날을 이어 갈 수 있어 감사하다. 행복은 가까이에 있고 그걸 인지하는 건 필요하다. 상대적인 행복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오늘도 난 소소한 행복을 쫓기 위해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다. 강세형이 그 행복에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나는 또 아무도 아니기에. 다른 이에게 찾아올 행복이 나에게 찾아온다 한들 이상할 게 없고, 다른 이에게 닥친 불행이 나에게 닥친다 해도 또 너무 억울해만 할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 가끔은 내게 묘한 위로가 되어 준다.


강 작가는 사카모토 류이치 에세이를 읽다가 떠올린다. 불안이 올라올 때면 "하루키가 누구야?"를 생각한다. 나에게는 대단한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아무개씨일 수 있단 거다. 나도 불안해지면 이말을 기억해두고 생각하야겠다고 다짐했다. 책은 가끔 뜻밖의 문장에서 번뇌와 안정을 준다. 그래서 끊지 못하는 거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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