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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님의 서재
  • 버터밀크 그래피티
  • 에드워드 리
  • 21,420원 (10%1,190)
  • 2025-04-09
  • : 9,080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모든 요리는 저마다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그 이면에는 역사와 가족, 시간과 장소에 얽힌 복잡한 서사가 숨어 있다. 종이 한 장을 꺼내 현재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적어보자. 대여섯 개쯤 떠오를 것이다. 이제 눈을 감고 오래전에 먹은 음식, 어린 시절의 음식을 떠올려보자. 그런 다음 배우자나 친구, 동료, 혹은 여행을 통해 좋아하게 된 음식을 적어보자. 목록이 점점 길어질 것이다... 바로 그런 이야기 속에 개개인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풍미와 질감이 들어 있고, 거기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먹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             p.27


<스모크 & 피클스>에 이은 에드워드 리 셰프의 두 번째 책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다시금 셰프들의 인기가 높아졌는데, 가장 큰 수혜를 받은 사람이 바로 에드워드 리, 이균 셰프일 것이다. 흑백요리사의 우승자보다 더 주목받고, 사랑받는 준우승자이니 말이다. 그는 이민자로서 미국 남부 요리와 한국 전통 음식을 결합하여 독창적인 요리 세계를 보여주었는데, 요즘은 자유로운 스타일과 위트있는 말솜씨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사실 그는 그는 요리사이지만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문학도이기도 하다. 이번에 나온 <버터밀크 그래피티>에서 유려한 그의 글솜씨를 만나볼 수 있었는데, 이 책은 요리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상을 받기도 했다. 


사실 이 책에는 레시피가 있고,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시종일관 나오지만 요리책은 아니다. 무려 400페이지가 넘는 묵직한 분량의 이 책에는 그가 2년 동안 미국 전역을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과 음식,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문화와 정체성에 관한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각 챕터가 끝날 때마다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음식에 대한 레시피가 수록되어 있지만 사진이나 그림은 없다. 그는 일부러 사진을 넣지 않았다고 하는데, 정해진 이미지가 없으면 자유롭게 상상하며 자신만의 결과물을 낼 수 있을 거라고, 부디 자신의 직감을 믿고 따르면 된다고 말한다. 그는 "당신이 어떤 음식을 만드는지 알려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라고 말한다. 요리는 개인으로서뿐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것이기에, 요리 못지않게 그것을 만든 사람에 관해서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이런 책이 만들어 진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의 관심사는 요리이지만, 그의 태도는 항상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음식의 세계를 여행하며 수많은 이민자를 만난다. 그리고 그 과정은 고스란히 이민자들의 요리와 미국 음식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모든 학습 과정의 첫 단계는 모방이다. 아말도 모방을 통해 영어를 배웠고 나도 같은 식으로 요리를 배웠다. 이제 인터넷과 요리책만으로도 어떤 요리든 배울 수 있지만 여전히 글이나 영상만으로는 익힐 수 없는 신비로운 요리들이 있다. 사워도우나 크루아상이 그렇다. 스멘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차이가 맛을 좌우하는 요리. 스멘을 만드는 과정은 복잡하지 않지만 전부 손으로 직접 해야 한다. 거기에는 모종의 리듬이, 여러 번 반복해야 배울 수 있는 움직임이 있다. 모로코인 친구에게 그것을 직접 배우는 행운은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다.             p.225


사실 에드워드 리 셰프는 국내에는 흑맥요리사로 알려졌지만, 2010년 <아이언 셰프>라는 프로그램의 우승자로 여러 유명 요리 대회와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미국의 스타 셰프이다. 이 책을 통해 받은 제임스 비어드 상 수상뿐 아니라 백악관 만찬 셰프이기도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요즘에는 티비만 틀면 광고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그만큼 한국인들에게도 이제 유명인이 되었는데, 그를 통해서 다양한 문화의 이민자들에 대한 삶에도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 미국인 친구들에게 집에서 먹는 한국 음식을 숨기려 했던 어린 소년이 이제는 자신의 식당에 오는 모든 미국인에게 자랑스럽게 한국 음식을 대접하고 있다. 그는 '한 사람의 일생에서 이렇게 커다란 도약이 일어나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지만, 이건 그저 운이 좋은 것도, 누군가 도와줘서 이룬 것도 아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에드워드 리 셰프가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이야기가 모두 그렇듯 중요한 것은 결말이 아니라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요리 또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각각의 음식에 얽힌 이야기는 같은 요리라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고, 추억과 사랑, 그리고 과장 한 꼬집이 들어 있다. 그런 이야기가 흡족한 맛을 더해주는 것이다. 이 책은 문장 자체도 굉장히 뛰어나지만, 그 속에 담긴 아름다운 사유와 깊이, 그리고 음식과 사람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도 놀라웠다. 미국 각 도시의 이민자들을 직접 만나 그들이 만든 각양각색의 음식을 먹어보고 여러 세대를 걸쳐 변형되고 재조합된 다양한 문화와 삶을 배우는 과정은 음식이 사람을 어떻게 연결하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맛에 대한 놀랍도록 완벽한 비유, 주방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존중, 요리의 이면에 있는 역사와 가족, 시간과 장소에 얽힌 복잡한 서사가 너무도 흥미로웠다. 마치 소설을 읽듯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며 읽었다. 지름길을 택하지 않고 인내와 친밀함을 담아 느리게 만든 음식처럼 시간을 들이고 끊임없이 도전해서 탄생한 이 아름다운 작품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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