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숲의 말을 듣는 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품고 있는 삶의 이야기를 함께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존재가 품고 있는 절박함을 가늠하고,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만히 헤아리며 마주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너무도 이분법적인 사고와 인식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우열, 선악, 미추, 피아, 성패 등. 그렇게 사물과 생명, 그리고 우리의 삶을 단순하게 바라 보려는 시선이 만연합니다. 단면 중심으로 세계를 파악하는 이 고질적인 습관을 거둘 때에 비로소 숲의 그윽한 말이 들려오 기 시작합니다. p.43
숲의 철학자로 불리는 저자는 충북 괴산에 ‘여우숲’이라는 공간을 열었다. 그곳에서 사람들과 인문학 공부 모임을 갖고, ‘여우숲 생명학교’ 교장으로 100회 이상 대중 강연과 집필 활동을 해왔다. 그리고 10년 넘게 산림교육전문가(숲해설가, 유아숲지도사 등) 양성기관에 출강하며 자연과 사람을 연결해왔다. 이 책은 숲을 거울 삼아 인간 실존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인간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탐구해가는 '숲으로 인문학하기’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숲에서 주로 먹거리를 보고, 어떤 이들은 숲을 돈을 벌기 위한 공간으로 바라보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등산이나 캠핑 등의 취미활동을 하거나 휴양하는 공간으로 바라본다. 저자는 숲에서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는 씨앗을 바라본다.
가을에 발아하는 냉이는 왜 굳이 서릿발을 견디고 북풍한설과 동토의 시절을 모두 견딜까. 차라리 완연한 봄날을 골라 온기 가득하고 포슬포슬해진 땅에서 발아하는 것이 사는 데 훨씬 수월했을텐데 말이다. 우리가 봄나물로 먹는 냉이는 쏟아지는 눈보라와 혹독한 추위까지 다 견뎌낸 풀들인 것이다. 냉이뿐만 아니라 서리가 내릴 즈음 꽃을 피우는 산국, 속을 비우고 어린줄기마저 녹색으로 칠하는 오동나무 등 자연은 저마다의 삶의 조건들을 불평불만없이 껴안는다. 도망치지도, 미루지도 않고, 주어진 것들을 견뎌내는 것이다. 숲에는 이렇게 풀도, 나무도, 그리고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보편적인 질서가 가득하다. 저자는 숲을 거닐기 시작하면서 숲을 만나는 일이 잃어버린 나를 되찾는 일이자, 자신과 타자를 사랑할 힘을 되찾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책에는 20년 넘게 숲을 탐구하며 알게 된 모든 통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것은 숲이 결코 홀로 살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숲은 미생물로부터 동물, 식물까지 다양한 생물이 서로 얽히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거대한 생명 공동체입니다. 특히 숲의 형성에 있어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식물은 바닥의 아주 작은 풀이나 양치식물로부터 거대한 높이로 자라는 교목에 이르기까지, 서로 생과 극의 관계로 이리저리 얽히면서 수직의 공간 구조를 형성합니다. 그 생명의 탑을 수직으로 살펴보면 이른 봄꽃들의 사연을 읽어낼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p.164
버드나무는 풍부한 물의 조건을 잃으면 시들어 죽게 되고, 소나무는 다른 식물이 더 높게 자라서 자신을 덮어버리면 서서히 죽음을 맞게 된다. 키가 작은 냉이 역시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키가 큰 풀들이 자신을 뒤덮으면 삶을 이어가기 어렵다. 이들에게는 빛이 커다란 숙제인 셈이다. 반면 암석 지대를 서식지로 삼고 살아가는 식물에는 토양이나 수분이, 바닷가에 사는 식물에는 염분과 거센 바람 따위의 숙제가 놓여 있다. 모든 생명이 저마다 극복해야 할 숙제를 안고 태어나고, 그것을 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의 삶도 이러한 질서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의 삶이 고통스럽다면, 그것은 삶에 숙제가 있어서라기보다 숙제가 없기를 바라서일 것이라고 말이다. 민들레는 척박한 땅에서도 온갖 숙제를 풀어내고 기어코 꽃을 피워 자신을 증명한다. 우리도 각자에게 주어진 숙제를 극복해 나가면서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숲이 겉으로 보기엔 더없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공간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삶 못지않게 치열한 생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나무도 풀도, 이끼도 지의류도, 참새도 까치도... 모두 저마다 스스로의 삶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말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품고 있는 삶의 이야기를 함께 읽어내고, 그 존재가 품고 있는 절박함을 가늠하고,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만히 헤아리며 마주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마음속 깊이 와 닿는 시간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부드러운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포슬포슬한 흙을 밟고 천천히 숲을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숲의 말을 듣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이 책과 함께 숲 산책을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