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렇게 빼앗기는 것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 박탈당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에 살지 말고 현재에 살아야 한다. 나이가 들면 과거의 일들이 자꾸 생각나면서 종종 과거를 미화하고 낭만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거를 자꾸 돌아본다고 해서 현재가 더 견딜 만해지는 것은 아니다. 깨어서 적극적으로 현재를 살 때 현재는 의미를 획득하고 더 살 만해진다. p.117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늙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이다. 나이가 들수록 시력이 나빠지고, 흰머리가 나며, 기억력이 감퇴하고, 주름도 많이 생기고, 면역력도 떨어진다. 생물학적으로 늙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지만, 그 늙어 가는 모습은 모두 제각각이다.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해왔다면 조금 더 육체적으로 편할 것이고, 육체적으로는 쇠약해졌지만 인생을 대하는 태도는 여전히 유쾌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생물학적으로 늙는 대신 연륜과 지혜를 얻게 되었으니 그것 나름대로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거라면,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가,에 대한 생각을 한 번쯤 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독일 문단에서 오랫동안 영향력을 발휘해온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인 엘케 하이덴라이히가 ‘나이 듦’이라는 주제에 대해 쓴 것이다. 올해 82세에 접어든 저자의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아마존 종합 1위를 기록하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저자는 어린 시절이 암울했기에 자녀를 두지 않았고, 결혼 생활이 잘 맞지 않아 두 번 이혼 했으며, 살아오면서 이렇다 할 운동을 한 적도 없고, 평생 담배도 숱하게 피우고 술도 많이 마셨다. 그렇게도 수많은 베스트셀러 책을 썼기에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고, 지금 책으로 가득한 집에 앉아 있으니 정말 멋진 인생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나이를 먹었는데, 거둬둘 가족도 없고, 지금의 파트너는 스물여덟 살이나 어린 세상 물정 모르는 예술가라 자신을 돌봐줄 것 같지도 않아, 자신의 힘으로 생활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면 간병인을 구해서 가능하면 자신의 집에서 지내려 한다고 명쾌하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는 생각한다. 온종일 그 모든 뉴스와 부당한 요구, 쓸데 없고 사소한 것들에 시달리며 살다가 간혹 담배 한 대 피우고 약간 과음을 한들 무슨 큰일일까? 한 번쯤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운전하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늘 한결같이 안전과 건강을 따지고, 시시콜콜 정치적 올바름을 따지고, 원리원칙을 따지는 사람들이 나는 가끔 신경에 거슬린다. 에고, 이런 말을 했으니 또 분노에 찬 편지들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뭐, 알아두시라. 편지에 답장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긋나긋한 노인이 아니니. 언제나처럼 나는 나일 따름이다. p.202~203
이 책은 독일의 한저 출판사가 10개의 주제로 10권의 에세이집을 기획했는데, 그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작가로 선정된 엘케 하이덴라이히에게 주어진 주제가 '나이 듦'이었고, 처음에는 시큰둥했다고 한다. '뭐야, 날 더러 늙어가는 이야기를 쓰라고? 아, 싫어.'라고 생각했다니 말이다. 하지만 곧 '흠, 내 나이가 80이니 나이 듦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게 맞겠군.'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이 멋진 책이 탄생하게 되었다. 저자는 나긋나긋한 할머니라는 사회적 틀을 단호히 거부하고, '평생 그러했듯 냉소적이고 고집스럽고 투쟁적으로 늙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노년은 인생의 아주 멋진 시기이고, 세상에 더 이상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이자 기쁨이 되는 일만 할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 책은 노년을 아름답게 포장하거나 두려움으로 물들이지 않고, 나이 든 사람 특유의 용기와 솔직함으로 ‘나답게’ 늙어갈 수 있는 법을 유쾌하게 보여준다.
나는 20대 까지는 한해, 두해 나이를 먹는 것을 체감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30대부터는 숫자에 조금씩 무감각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서류에 나이를 기재할 일이 있거나, 누군가 나이를 묻는 상황이 생기면 꼭 나이를 세어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이제껏 인류사에서 그 누구도 살아본 적 없는, 평균수명이 긴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 나이'는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설명해주고 있을까에 대해서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우리 부모세대와는 다르게 늙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부모 세대보다 더 오래 정신적으로 민첩하며 양질의 의료 서비스도 누리고 있다. 옛날의 오십대와, 오늘날의 팔십대는 완전히 달라졌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늙어가는 것을 배울 수 있을까? 연약해져만 가는 걸, 그럼에도 살에 달라붙어 살아가는 걸 배울 수 있을까. 삶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로부터 나는 늙어가는 것을 배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노년이 온갖 덫으로 가득한 비극적인 운명이 아니라 '삶의 기술'이 되어줄 수도 있다고 말이다. 이 세상에는 새로운 것들이 계속 태어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어떤 세계가 꾸준히 사라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할까. '나이 드는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