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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님의 서재
  • 신주로
  • 요코미조 세이시
  • 15,750원 (10%870)
  • 2025-06-05
  • : 6,260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해에는 비가 많이 내릿 탓인지 호수의 물이 춘흥루 바로 옆까지 찰랑찰랑하게 올라와 있었다. 신주로는 ─ 물론 당시에는 아직 이름을 알지 못했지만 ─ 실제 호수 바닥에서 올라온 요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틀거리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 그때 그의 보기 드문 아름다움을 어떻게 형용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바라보는 사이에 이가 딱딱 부딪치고 뼛속까지 차가워지는 듯한,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기이한 느낌에 사로잡혔던 것을 지금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너무나 빼어난 아름다움은 서늘한 귀기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p.61~62


X 대학 영문과 강사인 시나 고스케는 동료인 오쓰코쓰와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다 함께 여름휴가를 보내기로 한다. 오쓰코쓰는 시원한 산속에서 조용히 지내며 정리하고 싶은 연구가 있다고 신슈 지역에 가볼 예정이라고 말한다. 도쿄에서 머무는 것보다는 비용이 저렴할 거라는 그의 말에 시나도 함께 하기로 하는데, 그렇게 그들은 첫 열흘 정도는 부근의 온천장에서 보낸다. 그러다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한 N 호반의 집을 소개받게 된다. 호수 바로 옆에 있는 그 집의 주인은 의사인 우도 씨로, 20년도 더 전에 은퇴해서 책만 읽으며 지낸다고 한다. 3,4년 전에 도쿄의 여학교를 나온 조카딸과 두 사람만 있다 보니 여름만이라도 객식구를 들이자는 말이 나왔다고 해서 두 사람은 그곳으로 향한다.


그런데 가는 길에 버스에서 거지보다 못한 복장에다 새처럼 날카롭고 새된 목소리로 말하는 한 노파를 만나게 된다. 그 노파는 두 사람에게 그곳에 가봤자 좋은 일은 아무것도 없을 거라며 "당신들 주변에 이제 곧 무서운 피의 비가 내릴 거야. N 호수가 피로 새빨갛게 물들 거야."라는 기분 나쁜 예언을 남긴 채 사라진다. 우도의 저택에 도착해 휴가를 즐기기 시작한 두 사람은 곧 조카딸 유미와 주인인 우도 외에 다른 사람의 기척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얼마 뒤 물에 젖은 미소녀의 모습을 보게 된다. 실제 호수 바닥에서 올라온 요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은 어딘가 비현실적이어서 기괴한 느낌마저 들었다. 금빛의 물방울이 안개처럼 뿔뿔이 흩날렸고, 그의 낭창한 몸에서 마치 얼음처럼 차가운 아지랑이가 하늘거리며 솟아오르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뭐라 말할 수 없는 으스스함이 느껴졌던 것이다. 두 사람은 미소년에 대해 우도에게 이야기하고, 어쩐 일인지 우도는 심하게 놀란 모습을 보인다. 사실 전대미문의 미소년에게는 무서운 비밀과 음모가 숨겨져 있었는데, 그렇게 두 사람은 무시무시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그 묘하게 표독스러운 색채로 칠해진 그림판이 한 장, 툭 떨어지면 일순 눈앞의 세계가 싹 변하고 마는 느낌...... 그때의 내 기분이 바로 그러했다. 유미를 안아 든 신주로가 사박사박 내리는 눈을 밟고 울타리 밖으로 사라짐과 동시에 나는 단숨에 몸을 잠식하는 공허감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공포나 절망을 훨씬, 훨씬 초월한, 일종의 허무한, 징...... 하고 전신에 취기가 도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여우가 빙의했다가 그 혼이 빠져나간 것처럼 한동안 나는 망연한 기분으로 그 창가에 우뚝 서 있었다. 사박사박, 사박사박사바가...... 무심한 눈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자꾸만 내린다.                 p.187


에도가와 란포와 함께 전후 일본 추리소설의 토대를 쌓은 거장 요코미조 세이시는 일본의 국민 탐정이자 명탐정의 대명사로 불리는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로 유명하다. 이 시리즈는 국내에도 꽤 많이 소개되었는데, 총 총 77편의 작품에서 활약한 '긴다이치 고스케' 전에 요코미조 세이시가 탄생시킨 또 다른 명탐정이 있었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다. 이번에 국내에 소개되는 <신주로>부터 <나비 부인 살인 사건>까지 10여 년간 활약한 또 하나의 명탐정 '유리 린타로'이다. 경시청 수사과장을 지낸 백발 머리를 하고 있어 얼핏 노인처럼 보이지만, 날카로운 눈매와 건장한 몸의 40대로 온후한 성격의 명탐정이다. 유리 린타로 시리즈는 첫 번째 작품과 마지막 작품이 특히 백미로 손꼽히는데, 마지막 작품도 곧 국내에 소개될 예정이다. 


이 작품은 무서울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참혹하고 피비린내 나는 살인 사건을 그리고 있다. 진주처럼 아름다운 아이라는 뜻의 신주로라는 이름을 가진 미소년은 이름에 걸맞게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시골과 도시를 종횡무진하며 피의 지옥도를 그리는 수수께끼의 살인귀이기도 하다. 풍성하게 이마에 늘어뜨린 금발 머리, 비단벌레처럼 끈끈한 빛을 머금은 눈동자, 젖어 있는 듯한 입술... 하지만 영혼의 순수함과 정신적인 선함이 결여 되어 있는 미소년의 탄생 비화는 더 오싹한 비밀을 가지고 있다. 일본에선 세 차례나 영상화되었다고 하니, 미소년 역할을 누가했을 지도 궁금해질 만큼 독특한 캐릭터였다. 이 작품은 논리적인 추리와 탐미적인 묘사가 잘 어우러져 독특한 재미를 선사하는데, 신비하고 기괴한 분위기가 자아내는 공포감이 일품이다. 오래 전에 쓰인 작품이기에 고전적인 트릭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이 작품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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