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라바테라를 포함한 식물은 '뇌'에 견줄 수 있는 무언가를 사용하지 않고도 여러 복잡한 일을 해낸다. 지금 우리는 가시적인 뇌나 최소한 잘 발달한 뉴런의 집합이 없다면 당연히 지능이 없다고 여기는 몹시 좁은 시야에 갇혀있다. 과거에는 생명의 나무에서 특정 형태의 뇌가 자리한 하나의 가지로부터 지능이 진화했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다리마다 뇌가 있어 지능이 매우 뛰어난 문어 같은 유기체들의 실체가 밝혀지면서 이러한 그림은 더는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우리는 식물을 포함한 다른 유기체에 지능이 있을 가능성과 지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p.34~35
타마린드라는 식물을 키운 적이 있다. 잔가지가 많이 갈라지고 옆으로 퍼지면서 자라는 이 식물은 독특한 점이 있다. 긴 타원형으로 가지가 마주보며 모여 달리는 잎이 낮에는 활짝 펴진 상태로 있다가, 밤이 되면 잎을 반으로 접는다는 거다. 마치 낮에는 활동하다, 밤이 되면 잠을 자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식충 식물인 파리지옥도 키워 본 적이 있다. 곤충을 잡아 먹는 이 식물은 유인하는 냄새를 뿌려 곤충들이 다가오면 잎을 닫아서 잡는 걸로 유명하다. 실제로 가시처럼 생긴 잎의 털을 몇 개만 건드려도 바로 잎을 오무리는데 너무 신기했다. 사실 식물을 워낙 좋아하고, 많이 키우다 보니 매일 매일 안부를 묻듯이 관찰하는 것이 습관이다. 발달하는 과정이 정말 드라마틱한 식물도 있고, 별다른 변화없이 갑작스럽게 성장하는 식물도 있어서 매번 신기했었다.
식물을 관찰하다 보면 환경에 적응하거나 변화하는 모습이 정말 영리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래서 '식물지능'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너무 궁금했다. 뇌도, 신경도 없는 식물에게 '지능이라니'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부터 너무도 기발했다. 이 책은 신경과학, 식물생리학, 심리학, 철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식물이 보여주는 고차원적 정보처리 능력을 조명한다. 저자인 파코 칼보는 인지과학자이자 생물철학자로 스페인 무르시아대학교에서 과학철학을 가르치고 학제간 연구의 최전선에서 식물지능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식물지능에 대한 가장 최신의 연구 성과를 풀어서 설명한다. 그는 강연장에서 대중들에게 보여주었던 미모사 실험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신경초'라고도 불리는 미모사는 잎을 건드리면 '수줍어'하듯이 줄기 쪽으로 움츠러드는 식물이다. 내가 키웠던 타마린드처럼 말이다. 그는 마치 동물을 마취시는 것과 동일하게 마취제를 통해 식물이 '잠이 드는'것을 보여주어 탄성과 박수를 받는다. 마취제에 취한 미모사가 건드려도 꿈쩍도 않고 반응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모든 식물은 약물의 영향을 받으면 잎을 움직이거나, 줄기를 구부리거나, 광합성을 하는 것을 포함해 모든 행동을 멈춘다고 한다. 약 15억 년 전 계통이 갈라진 동물과 식물이 이처럼 비슷하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발견이 아닐 수 없다.

각 식물의 경험은 식물의 고유한 물질성과 주변 기회들의 긴밀한 상호작용으로 형성된다. 각 개체는 자신만의 움벨트를 만든다. 하나의 식물이 겪는 경험은 다른 식물의 경험과 같을 수 없다. 그리고 이는 쌍방향으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식물은 같은 환경에 놓이더라도 개체마다 다르게 행동한다. 우리는 이제 막 이 같은 차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개념들을 종합하면 식물 역시 우리가 성격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자질을 지니는 것처럼 보인다. 성격이라는 표현을 인간이 아닌 유기체에 적용하는 게 조금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개체간 차이의 저변을 이해하는 데 더 나은 대안이 없다. p.244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물을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물의 녹색 배경 정도로만 여긴다. 하지만 미모사가 잎을 접거나 파리지옥이 덫을 닫는 동작 역시 우리가 동물 활동을 일컬을 때 사용하는 표현인 행동, 운동, "측정 가능한 반응"으로 정의한다면 어떨까. 사실 식물은 낮 동안 해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최대한 많은 빛을 흡수하고, 밤이 되면 해가 없는데도 일출이 일어날 곳으로 잎의 방향을 튼다. 또한 스스로 멜라토닌 물질을 생성하고 24시간 주기로 내부 리듬에 따라 세밀하게 통제한다. 이러한 식물의 행동은 놀라울 만큼 똑똑해 보인다. 그러니까 식물은 '뇌'에 견줄 수 있는 무언가를 사용하지 않고도 여러 복잡한 일을 해낸다는 말이다. 그러니 뇌나 뉴런의 집합이 없다면 당연히 지능도 없다고 여기는 것은 몹시 좁은 시야에 갇힌 것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이 책에 소개된 식물지능 연구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학습과 기억의 능력이었다. 식물은 주변 환경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 저장한 다음 미래의 행동 방향을 정하는 데 활용한다. 실제로 미모사를 통해 실험한 결과 자극의 빈도가 높아질수록 반응이 무뎌지고, 결국에는 반응이 더는 일어나지 않는 것을 확인했는데, 이는 '습관화'로 불리는 무척 단순한 학습 방식이다. 빛과 자극에 대한 미모사의 실험 결과 미모사의 습관화는 무려 28일 동안 지속되었고, 이는 장기 기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후로도 동물에게만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고차원적인 학습 능력이 식물에도 가능한지 본격적으로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완두콩과 옥수수의 잎이 어디로 자라는지에 대한 실험과 어린잎이 빛에 대한 과거 노출 경험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는 사실 등 굉장히 인상적인 실험 결과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식물에 학습 능력이 있다는 생각에 대한 저항은 거세다고 한다. 동물은 학습하고 식물은 적응 방식을 진화시킨다는 게 일반적인 통념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러한 통념과 우리의 고정관념에 대해 가뿐하게 반기를 든다.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탄탄한 실험 결과를 토대로 제시하는 가능성이기에, 앞으로 식물지능에 대한 연구에 대해 더 기대하는 바가 크다. 식물에서 발견한 지능의 또 다른 차원이 궁금하다면, 식물 연구의 최전선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