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쿠로의 온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든든한지, 얼마나 평온하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지.
쿠로는 미노루와의 나날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어째서 옆에 있어주는 것일까.
"언어는 확실히 중요하지. 하지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뿐인 건 아니야."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듯이 스이가 말했다.
미노루는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 '여름 바람의 행복' 중에서, p.121
저명한 화가인 미노루는 종달새 마을에서 삼십 년 가까이 살아왔다. 아내와 단 둘이 살다가 8년 전에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지금은 고양이 쿠로가 유일한 가족이었다. 자녀가 없고 양친도 오래전에 돌아가셨기에 쿠로는 아내 외에 처음으로 생긴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였다. 칠십대인 미노루는 반년 전에 육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되지 않았기에 미노루는 가정부 하나에에게 종달새 언덕의 마녀에게 데려가달라고 부탁한다. 삽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곳에 살면서 한 번도 마법상점에 가본 적이 없었지만, 처음으로 가야할 일이 생긴 것이다. 마녀는 동물과 대화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고양이 쿠로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미노루는 갑작스럽게 아내를 잃고 아내에게 제대로 묻지 못했던 말을 쿠로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와 함께한 시간, 넌 행복했냐고 말이다. 과연 마녀는 미노루의 소원을 들어줄까.
소설가인 하루코는 지금까지 단행본 일곱 권과 문고본 열다섯 권을 출판했다. 화제가 된 작품이 없어 결코 잘나간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계속해올 수 있던 것만으로도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근근이 이어온 작가 생활도 이제는 정말 끝나버릴지 모른다. 소설을 출판한 지 거의 일 년이 다 되어가지만, 좀처럼 쓰고 싶은 이야기가 없어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순한 슬럼프가 아니라 제로 상태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 이야기가, 부스러기조차 잡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게 초조하기만 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우연히 종달새 언덕의 마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하루코는 그곳에 찾아 보기로 한다. 재미있는 소설 아이디어가 샘솟는 마법을 부탁하기 위해서. 마법의 힘을 빌릴 수 있다면 한 번 더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간 마법상점에서 마녀는 하루코의 이야기를 듣더니 말한다. 마법으로 소원을 들어줄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해서 훌륭한 소설을 쓸 수 있게 된다면, 행복하겠느냐고. 과연 마녀는 하루코의 소원을 들어줄까. 하루코는 마법을 통해 다시 소설을 쓸 수 있게 될까.

"마음은 무엇보다도 강해. 하지만 말로 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 것도 있지. 말은 때때로 마법보다 더 큰 기적을 일으켜."
빛이 강해진다. 스이의 빨간 눈동자가 형형히 빛나고, 머리카락은 중력을 거스르며 붕 떠오른다.
도키오는 숨을 멈춘 채 기적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스이는 도키오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무어라 속삭였다.
그리고.
"다시 일어설지 멈춰 설지는 본인이 정해야겠지."
오르골을 휘덮은 빛이 사라졌다. - '겨울이 끝나면' 중에서, p.254
종달새 마을의 종달새 언덕에는 마녀의 상점이 있다. 벽에 담쟁이덩굴이 덮여 있고, 키가 큰 빨간 꽃이 문으로 이어지는 계단 틈새에 피어 있는 작은 목조 주택이다. '종달새 언덕 마법상점'에는 한 걸음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바깥과 다른 공기가 몸을 감싼다. 마치 마치 이곳만 계절 바깥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곳에는 인형으로 착각할 만큼 아름다운 소녀가 있다. 진녹색 로브를 입고, 붉고 긴 머리카락에 불에 타는 듯한 빨간 눈동자가 인상적인 소녀는 그대로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모습이다. 열다섯 남짓의 소녀 모습을 한 그녀가 바로 마녀 '스이'다.
사람들은 마법의 힘을 얻기 위해 오는 그곳에 간다. 하지만 그중 정말 마법으로 소원을 이루고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돈을 아무리 많이 가져가도, 당장 죽을 것 같은 사람이 눈앞에서 생명 연장을 애원해도 마녀의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절대로 마법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마녀의 마법상점을 찾아가는 이들이 있다. 사고로 얻게 된 화상 흉터를 지우고 싶은 중학생, 홀로 남겨질 고양이가 걱정인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원로 화가, 글이 써지지 않아 괴로운 팔년차 소설가, 애인을 잃고 힘들어하는 형을 걱정하는 남동생 등 각기 다른 사연을 들고 마녀를 찾아간 그들은 소원을 이룰 수 있을까.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오키타 엔은 마음을 간질이는 섬세한 이야기를 주로 써왔다. 이 작품은 독특하게도 마법을 써서 소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소원을 거절하는 마녀를 등장시켜 색다른 재미를 만들어 내고 있다. 네 가지 이야기는 사계절의 풍경과 함께 보여지는데, 담백하면서도 사려 깊게 사람들의 상처와 고민을 풀어내며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힐링이 필요한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