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가 나비였더라면, 떨어지는 순간에 누나의 어깨뼈에서 날개가 펼쳐졌을 거다. 나비는 날개로 날아갈 수도 있고 소리를 느낄 수도 있다.
"우리한테는 서로가 있어."
나는 누나가 했던 말을 소리 내어 보았다. 시계탑을 돌아 내 목소리가 돌아왔다.
우리가 나비였더라면. 내가 나비처럼 귀가 아닌 날개로 누나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다면. p.36
열한 살 산이는 오늘 처음으로 학교에 혼자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열한 살이면 학교는 혼자서 갈 수 있는 나이이지만, 산이에게는 꽤나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산이의 왼쪽 귀는 소리를 잘 못 듣기 때문이다. 일곱 살 때 수영장에서 수심이 깊은 곳에 들어갔다온 뒤로 왼쪽 귀가 물속에 있는 것처럼 먹먹해진 것이다. 의사 선생님은 '일측성 소아 난청'이라고 말했다. 두 살 많은 메아리 누나는 왼쪽 청력이 약한 산이를 위해 늘 동생의 왼편에 서 주었다. 하지만 오늘부터는 산이 혼자 학교에 가야했다. 누나와 함께 걷던 길을 혼자 걸어서 학교에 가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특히나 횡단보도가 어려웠다. 초록불이 들어와도 우회전하는 차가 불쑥 등장하기 때문이다. 보청기를 껴도 소리가 완벽하게 잘 들리는 건 아니라서, 왼쪽에서 차가 오는 걸 모를 때도 많았다.
"여름방학을 맞아 친구와 워터파크에 갔던 초등학교 6학년 양이 26미터 높이의 워터슬라이드가 붕괴되면서 추락해 숨졌습니다."
메아리 누나는 얼마 전 여름방학 때 친구와 워터파크에 갔다가 사고를 당했다. 그 사고는 함께 갔다가 혼자만 살아남은 누나의 친구 두나 누나에게도, 아이 혼자 워터파크에 보냈다는 비난을 받으며 죄책감에 시달리는 엄마에게도, 그리고 그날 아침 자신을 빼놓고 혼자만 놀러가는 누나에게 싫은 소리를 하다가 싸우게 되었던 산이에게도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죽은 누나가 아끼던 카우보이모자에서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산이는 누나의 모자를 쓰고, 누나가 하려고 했던 일들을 대신 하기로 한다. 길고양이에게 우유를 주고,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마니또에게 선물을 전해주고, 워터파크에 함께 갔었던 두나 누나를 만나 학교에 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몰랐던 누나의 모습들을 하나씩 알게 된다. 산이는 이 작은 모험을 통해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한 누나의 죽음을 극복해낼 수 있을까.

1 더하기 1은 2이고, 지구의 절반은 물이라는 사실처럼, 우리 때문이 아니란 걸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이 따라가지 못한다. 순식간에 물로 가득 찼던 내 왼쪽 귀처럼 마음도 잠기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누나가 죽는 순간을 그만 봤으면 좋겠다. 내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혼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마음껏 누나를 생각할 수 있게. 누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눈이 빠지도록 울어 보고 싶다. 누나에게 사과할 방법을 찾을 수 있게. p.122
이 작품은 제25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이다. 최근에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스파클>을 쓴 최현진 작가의 신작이기도 하다. <스파클>이 사고로 오른쪽 각막을 이식받은 청소년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면, 이번 작품 <나비도감>에서는 왼쪽 청각을 상실한 어린이가 결핍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야기 중간 중간 산이가 작성하는 나비도감이 등장하는데, 나비라는 존재는 이 작품에서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다. 처음 나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산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집을 떠난 아빠가 남기고 간 책 <세계나비도감>때문이었다. 유일하게 남은 아빠의 흔적이었으니 말이다. 도감에는 사실만 적혀 있었고, 적혀 있는 사실을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는 것에 산이는 매력을 느낀다. 하지만 어떤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를 테면 이런 것들. 워터슬라이드를 타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 아빠는 살아 있지만 자신에겐 아빠가 없다는 사실, 그래서 아빠는 살아 있지만 죽은 사람이고, 누나는 죽었지만 살아 있는 존재라는 것처럼 말이다. 나비는 귀가 없이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날개 끝으로 소리를 느낀다는 것이다. 어쩌면 산이가 나비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나비도감뿐만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이러한 부분이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지만, 가족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도무지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산이 누나의 죽음은 워터파크에서의 사고사였기에, 그 영상이 불특정 다수에게 공유되고, 소비된다는 점이 가족들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 타인의 슬픔마저 소비하는 세상 속에서, 산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누나의 죽음을 기억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함께 슬퍼하는 방법과 제대로 애도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이 이야기는 상실 이후의 삶을 우리가 어떻게 겪어 나가야 할지를 눈부시게 보여준다. 슬픔의 중력을 거슬러 나비처럼 날아오르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