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글은 의미를 가지잖아요. 그러니 작가가 누구인지 어떤 일을 했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의미를 부여하는 건 독자에게 달린 거 아닌가요?"
"글쎄요......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의미를 찾아가죠. 발견은 독자의 몫이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은 작가가 보여주는 거라 생각해요. 그러니 작가의 도덕성은 작가가 제시하는 길을 독자가 신뢰할 수 있는지에 영향을 끼친다고 봐요."
미스터리 소설가 위니프레드는 보스턴공공도서관에서 글을 써보기로 한다. 문제는 도서관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하염없이 열람실 천장을 쳐다보게 된다는 것. 뭐라도 쓰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을 발견한다. 양팔 어깨부터 손목까지 문신이 가득한 젊은 여자는 프로이트를 읽고 있었고, 하버드 로스쿨 셔츠를 입고 있는 젊은 남자는 턱 한가운데가 갈라져 옛날 만화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 같았다. 그의 왼쪽에 있는 잘생긴 남자는 노트북으로 일을 하며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프로이트 걸, 만화 주인공 턱, 잘생긴 남, 세 명으로 어떤 관계를 만들어 볼까 생각하던 중에 어디선가 날카롭고 겁에 질린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진다. 덕분에 네 사람은 서로 말을 나누게 되고, 그걸 계기로 친구가 된다.
알고 보니 프로이트 걸 마리골드는 심리학을 공부하는 하버드 대학생이었고, 만화 주인공 턱 윗은 부모가 변호사인 법대생, 잘생긴 남 케인은 책을 출간한 적이 있는 작가였다. 그날 그 사건은 보스턴공공도서관에서 청소부가 젊은 여성의 시신을 발견했다는 소식으로 뉴스에 보도가 된다. 누군가 죽는 순간을 귀로 듣고 함께 목격했다는 사실로 네 사람은 아주 특별한 관계가 되는데, 서로가 서로의 알리바이가 되는 존재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날 살해당한 여성에 대해, 사건의 범인에 대해 추측하면서 점차 친밀한 사이가 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작가인 프레디와 케인이 가까워진다. 하지만 케인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있었는데, 겨우 한 달 만에 친구에서 연인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두 사람의 사이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사건 당시 한자리에 있던 네 사람 중 한 사람이 어떻게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지를 추리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던 이 이야기는 점차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가 섞이고, 이리 저리 관계가 얽히면서 복잡해진다.

내면의 가장 어두운 비밀을 소설의 형태로 공개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신의 한 수예요. 인정해요. 잘 보이는 곳에 숨는 것이랄까요. 하지만 말이 되죠. 살인자는 사람들에게 발각되고 싶지는 않지만 자기가 한 일에 대해, 들키지 않고 교묘히 빠져나간데 대해 인정받기를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거든요. 자기 행위를 소설에 자세하게 집어넣는다면 완벽할 거예요... 그때 내가 범죄 현장 사진을 몇 장 보냈었어요. 이번 이메일에는 또 다른 사건에서 찍은 사진을 첨부했어요. p.303
‘The Woman in the Library’라는 원제부터 호기심 가득했던 책이다. 특히나 국내 버전에서는 책 표지에 찍힌 피묻은 지문, 띠지 뒷면에 첨부된 사진 등 책의 물성도 소설의 일부가 되도록 하는 색다른 디자인의 작품이라 읽기 전부터 매우 기대가 되었다. 책의 날개가 편지봉투처럼 전체를 감싸고 있어, 스티커의 봉인을 떼면 돌이킬 수 없다는 점도 몰입감을 더해준다. 이야기는 유명한 소설가 해나가 집필 중인 <도서관 비명 살인 사건>이라는 소설과 각 장의 원고를 읽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하는 작가의 오랜 팬 리오의 편지로 교차 진행된다. 액자 구성으로 보스턴공공도서관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설 속 이야기가 주요 서사로 진행되는데, 작가가 쓰는 대로 매 장을 읽고 그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리오의 편지가 매우 디테일하게 작품을 분석해 나가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호주에서 집필 중인 작가가 쓴 작품이기에 보스턴에 거주하는 리오가 미국식 표현과 뉘앙스, 실제 장소의 분위기, 캐릭터의 배경과 작가의 의도에 대해 하나씩 짚어 내는 것이 그만큼 세심할 수밖에 없었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리오의 편지 내용이 점차 수위를 넘기 시작한다. 실제 벌어진 범죄 현장의 사진을 보낸다거나, 시체를 둘 적절한 장소를 알려준다거나, 소설 속 범인과 공범의 존재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점점 소설 속 이야기가 현실 바깥으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편지는 점점 어둠을 잠식해 섬뜩한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 리오는 단순히 작가의 열성팬인 것인지, 그의 진짜 정체는 무엇인지, 극중 도서관 비명 살인 사건의 범인은 네 사람 중 누구인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압도적인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언제나 활자 안에 갇혀 있어야만 할까? 그에 대한 대답을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와 겉으로 보여지는 물리적 경험을 통해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이 놀라운 작품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