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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혈님의 서재
  • 브랜드 없는 삶
  • 고명한
  • 15,120원 (10%840)
  • 2025-04-20
  • : 1,020
이 책의 부제 안에 벌써 많은 메시지가 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특정 브랜드에 가치를 내가 부여하고, 내가 버는 소득 상당 부분을 투자하여 그 브랜드를 구입함으로써 내가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다면 이걸 두고 누가 뭐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감, 가치관 같은 게 과연 순수한 나만의 것일지, 아니면 거대 미디어로부터 세뇌받은 건 아닌지 나부터가 겸허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 지인이나 직장 동료들이, 이 브랜드를 착용하는 나를 이렇게 봐 주겠지 같은 강박 때문에 특정 브랜드에 충성하고 괜한 돈을 쓴다면, 그게 장기적으로는 나를 불행으로 몰고 가는 선택이 아닐까요.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p32를 보면 "브랜드를 통한 과시욕은 모든 인간에게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인정에 대한 욕구'에서 비롯한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촌락에서 장원에서 자신의 아주 제한적인 자아만 실현하고 살 때에는 남의 시선에 그닥 신경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내 부모 내 가족, 이웃에 대해 할 도리만 하고 살면 그만이었죠. 그런데 시장 경제가 점차 확산하고, 내가 만드는 물건이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면서 나의 생각과 가치관이라는 게 시장의 평균에 맞춰지도록 애 쓰게 됩니다. 이런 비생산적이고 타인지향적인 경주(race)를 시작하는 순간 나의 에너지, 나의 소중한 자산이 남의 욕망에 의해 잠식됩니다. 그것들은 원래 나를 위해 쓰여 나의 행복을 낳아야 할 것들이었습니다.

소유에 대해 발터 벤야민은 "나와 사물 사이의 가장 깊은 관계"라고 정의했습니다(p118). 이 말에 따르면 소유라는 양상에서 구태여 부정적인 의미를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이 책에서 종종 인용되는 에리히 프롬은 소유와 존재(삶)을 대치시키며 전자를 비판했지만 말입니다. 그럼 이 맥락에서 발터 벤야민이 비판한 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소비"입니다.

나는 과연 구찌나 루이비통의 원천적 미의식이나 탐미적 철학에 공감하여 그 비싼 돈을 들여 구두와 백을 소유하(려 드)는가?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못합니다. 명품의 탁월함은 정작 알아 보지도 못하면서 주위의 남들이 좋다니까 맹목적으로 추종하여 평판과 이미지, 선망의 시선을 "소비"하는 것입니다. 명품의 가치를 차라리 알아라도 보고 그 (개별 상품)를 진지하게 "소유"라도 해 보라는 게 차악의 대안입니다. 가장 나쁜 건 남들 따라 사는 "골빈 소비"입니다. 자신이 무대 위의 연극배우라며 환각 속에 사는 미친 노파처럼 말입니다.

독자인 저도 이 책을 받아들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게 저자분의 성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작명의 내력이 이 책 p150에 대해 자세히 나옵니다. 이름이란 이처럼 한없이 소중하고 뜻깊은, 당사자를 낳아 주신 부모님, 혹은 그 직계존속분들의 소망과 기대가 깃든 것입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명자(名字)는 그저 족보나 관가의 기록에만 올리고, 성년이 되어서는 자(字)라든가, 별호(別號)로 통하곤 했던 것입니다.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건 임금이나 부모에게나 가능했습니다. 존재 없던 일개 들꽃을 찬란한 생명의 빛깔로 물들이는 건 의미의 총합체인 이름이며, 이 이름이 붙은 후에야 생명체는 비루함을 벗고 전 우주에 맞먹는 가치를 얻습니다.

이제는 남들 따라 사는[生], 혹은 남들 따라 사는[買] 행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요즘 미 증시에서 나이키 주가는 1년 전에 비해 2/3가 되었습니다(2025. 4. 26 기준). 이 회사의 브랜드 관리 전략이 형편없어진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애초에 모든 브랜드라는 게 대체 생각이라는 게 없는 멍청한 대중을 자본이 세뇌한 환각이 아니면 뭐겠습니까? 저자의 말씀대로, 대체불가능한 나만의 1인 브랜드(p182)로 내가 다시 태어나는 선택이, 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회사에서 천덕꾸러기 취급 안 받고 살아남는 비결이고 또 용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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