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빙혈님의 서재
  • 한국 반도체의 미래 3년
  • 박준영
  • 17,820원 (10%990)
  • 2025-06-10
  • : 1,390
중국 기업들의 추격 때문에 한국 경제가 큰 위기입니다. 일찍이 이건희 회장은 "나중에 한국의 젊은이들은 중국인들에게 발마사지나 해 주며 살아야할지도 모르겠다"고 했었습니다. 마사지 일이 뭐 어떻다는 게 아니라 그 나라에 번듯한 산업이 없으면 젊은이들이 다닐 회사가 없고, 불안정한 고용 패턴에 고생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겠습니다. 그 예전부터, 언젠가는 중국이 한국을 추월할 것이라는 말들은 있었지만 반도체나 차화정은 기술 진입 장벽이 높아서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고들 했는데, 이제 드디어 그날이 온 게 아니냐는 비관적 전망이 전 산업계를 엄습하는 요즘입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반도체에서 전방/후방이 정확하게 뭘 뜻하는지에 대해 p72에서 아주 쉽게 설명됩니다. 그 비유를, 정유산업을 통해 하고 있으므로 이참에 정유산업의 전후방까지 함께 공부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ㅋ). 참 재미있는 게, 정유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산업은 원자재 쪽을 전방이라고 하고, 제품 방향을 후방이라고 하는데(이게 상식입니다), 반도체는 정반대로 말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전부터 이게 왜 그런지 궁금했는데 저자 박준영 교수는 "원천보다 제품을 더 중시한 구분 방식"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 줍니다.

과거, 삼전은 시스템반도체의 아성 인텔 등을 따라잡기는 어차피 어렵고(지금 인텔은 좀비로 전락했습니다. p139도 참조), 범용메모리에서 그나마 경쟁력을 발휘해야겠다는 전략으로 올인했는데 이게 대박을 쳤습니다. 이게 아니었으면 한국은 2010년대 내내 먹거리를 마련하지 못했을 테고 이제서야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 10년 전에 먼저 왔을 것입니다. 이건희 회장의 전략적 안목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확인 가능한 대목입니다. 책에서 "황의 법칙"이란 무어의 법칙 변형(p222)으로서, 저자가 현직 때 모셨고 삼전 반도체총괄 사장을 지냈던 황창규 전 KT회장이 "메모리 생산용량이 매년 2배로 늘어남(p258)"을 가리킵니다.

책에서 굉장히 뼈아픈 지적을 하는데, 저때는 삼전 등 한국의 대기업들이 고강도로 인력을 굴렸기 때문에 초격차가 가능했다는 점입니다. 지금 MZ가 주축이 된 현장에서, 더군다나 노동법도 개정된 판에 누가 야근을 하려 하겠습니까? 이건희처럼 카리스마 있는 리더라면 그 존재나 등장만으로도 부하직원들에게 최대의 효율을 끌어낼 수 있겠지만, 요즘 오너들에게는 그나마 이런 마력의 발휘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p39에서 저자는 "경영, 기술, 조직문화의 측면에서 회사와 나를 동일시하던 시대는 지나갔다."라고 합니다. 바람직하든 그 반대든 이게 엄연한 현실입니다.

어떻게 해서 TSMC는 지금과 같은 거인이 되었는가? p59에 중요한 서술이 있습니다. "생산에서, 파티클에 위한 수율 저하까지, 설계에서 참작해 줄 수는 없다." 이렇게, 파티클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방식을, TSMC는 바닥과 근본을 살핌으로써 해결했다고 나옵니다. 물러설 곳이 없음을 알 때 (거꾸로) 기발한 타개책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지적입니다. 일반적인 설계는, 비용 편익 분석 후 사소한 문제는 그냥 건너뛰는 게 차라리 현명한 선택일 수 있지만, 반도체 설계는 그런 오차조차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이 쉽지 그 복잡한 설계를 바닥부터 다시 들여다본다니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 같습니다. p162에는 "설계, 전공정, 후공정, 설비, 소재 등 모든 공정을 존중하는 위계 철폐가 절실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삼전이 과연 이런 교훈들을 내재화하면 다시 세계의 거인으로 올라설 수 있을까요?

앞에서 황의 법칙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황창규 박사는 원래부터 천재로 칭송받던 인물이며 이 말이 처음 나왔을 때는 미디어에서도 찬양 일색이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비판이 나왔고, 이 책에서도 2008년 점차 회의론이 고조되었다고 솔직하게 나옵니다.투자자들도 하도 미디어에서 많이 들어서  그 이름이라도 알겠지만 증착(deposition)과 식각(etching)이 3D 반도체 기술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정보는 자동화, 일치화되지만 물질과 노동은 측정되는 값 바깥의 결과가 많다(p276)." 앞 p47에도 나오지만 "자동화보다 중요한 그 무엇"이 있고 이를 하루빨리 전(全) 공정 혁신으로 이끄는 게 한국 반도체 산업이 앞으로 살아날 수 있는 길인 듯합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