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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혈님의 서재
  • 논개
  • 성지혜
  • 15,300원 (10%850)
  • 2025-05-26
성지혜 작가님의 신작 장편입니다. 저는 <향수병에는 향수가 없다(단편집)>, <해를 품은 천리안>, <사랑의 묘약> 등을 읽고 전에 리뷰를 남겼는데, 세 편 모두 개성이 다릅니다. 매우 도회적이고 자유분방하며 델리키트한 삶을 소재로 삼은 것도 있고, 오랜 전통의 고장 진주 출신 작가답게 꼬장꼬장한 양반의 가치관을 체화한 작품도 있었습니다. 공통점이 있다면 (공간, 시대를 초월해서) 상류층의 삶들이 소재로 등장한다는 건데, 제 눈에는 꽤 재미있게 읽혔습니다. 저희 모친도 저 밑에 통영여고 나온 분이라서 혹시 아실지도 모르겠네요. ㅎㅎ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본래 논개는 전북 장수 출신입니다. 기생이라고 해서 우습게 볼 게 아니라 논개는 원래 주달문이라는 학식있는 인물의 딸이었는데, 그 삼촌이라는 자가 김풍헌에게 민며느리로 팔아먹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런 놈은 어떻게든 천벌을 받기 마련인데(p61 참조)... 아무튼 논개(아명은 옥)는 어려서부터 머리가 좋고 기질이 영특했으나 이런 곡절을 거쳐 관비로 등재되었고 천한 기생의 삶을 살게 된 것이라고 소설에선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사실 이런 배경이 구태여 세팅되지 않더라도 조선 시대 기생은 요즘 술집 아가씨들처럼 돈 몇 푼에 몸을 파는 매춘부하고는 좀 성격이 달랐습니다. 기생집을 드나드는 손이라고 해도 쌩으로 저질들이 드물었으며 학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들이 주류였기 때문에 기생 역시 그에 합당한 소양을 갖췄어야 했습니다. 아무하고나 잠을 자면 금세 소문이 나 그 세계에서조차 싸구려로 찍히고 저급의 색주가로 팔려가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교양 있는 선비들을 상대하니 들은 풍월로라도 지식이 쌓였고, 세계관과 철학이 사대부의 그것으로 마이그레이션되는 게 보통이었겠습니다.

아마 고객들(?)도 술과 웃음을 파는 계집이라고 함부로 그들을 대하지 않았겠고, 고객에게 존중을 받으니 고유의 기풍이 생겼겠으며, 이런 기풍이 있으니까 왜장을 끌어안고 죽는 의기를 발휘한 이런 인물도 나온 것이겠습니다. 수백 년 후 나치 독일이 파리를 점령했을 때 창녀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장교들을 접대했는데, 파리 해방 후 그 창녀들은 모조리 거리로 끌려나와 삭발을 당하는 등 공개 모욕을 당했습니다. 손님을 가려받지 않은 당사자들도 한심하지만 사회 최하층을 상대로 무슨 나치 잔재 청산을 한다며 난리를 친 파리 시민들이라는 비겁한 작자들도 역겨운 건 마찬가지입니다. 중세 조선이 20세기 초 프랑스보다는 더 사회윤리와 기강이 잡힌 사회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겅상우병사 최경회가 p109에 등장합니다. 경북 옆에 영해라는 지방이 있는데 지금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최경회도 원래는 전라도(p110) 능주 사람인데 냉면으로 유명한 지금의 화순(p124)입니다. 영해 동헌의 우물물이 좋다는 등 성지혜 작가님 특유의 지방색 디테일도 돋보입니다. 김씨 부인도 조선조 전형적인 사대부 집안의 부인으로서 그 이상적인 미덕, 인격, 품행이 두드러집니다. 진주 교방은 소례풍이라는 인물이 대모 구실을 하는데, p151 이하에 나오듯이 이 사람도 본래가 천출이 아니라 억울한 사정이 있어 흘러흘러 여기까지 온 것으로 설명됩니다. 통하는 게 있어야 사람을 내 여유 안에서 봐 주든지 할 텐데, 주논개와 소례풍은 살아 온 삶의 궤적 면에서 이렇게 닮은 데가 있었습니다. 

전쟁이 터지면 일상이라는 게 모두 날아갑니다. 평범하게, 우리들처럼 트위터 하고 인스타하면서 지내던 우크라이나의 여인들, 젊은이들의 삶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보십시오. p182를 보면 사마천의 <사기>에서 삼망(三忘)이라는 말이 인용되는데 집(가족), 부모, 자신을 잊으라는 뜻입니다. 최경회는 원래 지방관이었으나 관군이 박살난 후에는 의병장으로서 맹활약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이런 패턴이 많았습니다. 진주(晉州)는 조선 시대 삼남 최대 인구 밀집지 중 하나였으며 왜군에 대해 가장 처절하게 맞셔 싸운 고장이었고 피해도 가장 심했습니다. 논개 같은 민족혼의 한 상징은 그런 배경 하에서 고찰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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