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가까이 죽음을 마주했을 때
빙혈 2025/06/1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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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가까이 죽음을 마주했을 때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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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 - 2025-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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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먼저 떠나보내는 부모의 아픔을 두고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참척(慘慽)이라 일컫었습니다. 지금 이 책은 "죽음학의 효시,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라 불리는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의 명저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인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로 이분은 21년 전에 타계하셨고 이 책도 1985년에 나왔던, 이 분야의 고전이라 불릴 만한 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원제는 On Children and Death이며, 우아하고 명징한 문장과, 주제인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았기에 40년 동안 꾸준히 읽힙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당대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답게 퀴블러로스 여사는 다양한 사례를 손수 다루며 사례귀납적으로도 엄청난 환자들을 접촉하여 업적을 쌓았고, 기술적으로뿐 아니라 인격적인 도움까지 제공한 분입니다. p63을 보면 자녀를 잃어도 아주 끔찍한 과정을 통해 잃은 부모의 사례가 나옵니다. 폭력이라든가, 반사회적인 범죄자들의 만행에 의해서라든가... 출산의 노고와 정성어린 양육으로 자녀를 그 단계까지 올려 두었건만 그런 부당한, 급작스러운 상실의 과정을 통해 자녀와 이별한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체험이겠습니까. 저자는 당대 최고의 카운슬러이기도 했던 만큼, 남겨진 부모가 그저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게 돕는 데 그치지 않고, 인생에 대한 깊은 깨달음에까지 이끌어 주는 역할도 했습니다. 이래서 퀴블러로스 여사는 유능한 학자를 넘어 인생의 스승으로까지 기려지는 것입니다.
"육체는 단지 고치일 뿐이고, 죽음은 마치 나비가 고치에서 나오듯, 우리 안에 있는 불멸의 부분이 육체를 벗어나는 과정일 뿐입니다(p71)." 인간이 종교라는 걸 만들어낸 이유는, 이 소중한 생명이라는 걸 결국은 상실하고 한줌의 재로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감언이설로 속여 사기를 치고, 그러면서도 뻔뻔스럽게 자신의 물욕과 음욕을 합리화하는 미친 노파조차 칠십 이상의 생을 누리는데, 왜 아무 잘못도 없는 젊은이가 먼저 세상을 떠야 하겠습니까? 죽음이라는 형벌이 그를 받아 마땅한 자들에게만 내려진다면 아마 죽음은 예찬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상의 삶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기에, 우리는 인격적 성숙함과, 피안에 대한 깊은 성찰로 눈을 뜨게 됩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참 생명의 시작입니다.
자녀가 죽는 경우 그 원인이 명확하게라도 밝혀지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고 조금이라도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면 그때부터 새로운 지옥이 시작됩니다. p146을 보면 퀴블러로스 여사가 접한 많은 "사고"의 경우 실제로는 (그 자녀의) 자살로 판명된 게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부모 입장에서는 진상 규명을 요구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사법당국의 무성의함, 불공정성 등이 끼어들어 문제가 크게 확대되기도 합니다. 사고라면 과실이 있는 자를 밝혀 그로부터 보상을 받아야 하며, 만에 하나 타살의 혐의라도 있다면 진범을 밝혀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합니다. 다음 페이지에는 심지어 어린이의 자살 케이스까지 다뤄지는데 이 역시 남겨진 부모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이요 악몽이 아니겠습니까.
p169 이하에도 참 좋은 내용이 전개됩니다. 이 대목에서 여사는 "죽음의 상징 언어"를 독자에게 가르치는데 임상의학, 정신분석학을 떠나 인문학적으로도 참고할 대목이 많습니다. 북미 대륙에 살던 원 종족 중에는 Sioux(수우) 족이라 불리던 이들이 있는데, 책의 이 대목에는 그들 고유의 오랜 기도문이 소개됩니다. 이 기도문을 보면 인간의 강한 열망, 담담한 체념, 망자를 향한 간곡한 애도 등이 표현되는데, 이를 통해 필멸을 초극하려는 공통의 희구를 엿볼 수 있고 오랜 지혜를 배울 수도 있습니다.
겨우 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던 아들에게 섬유낭종이라는 진단이 내려졌을 때(p226) 그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가장 사랑하던 아들 크리스천이 죽었을 때 아버지는 그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고, 퀴블러로스 여사와 장기간 서한을 주고받으며 깊은 상처를 달래야 했습니다(p233). 이 책에서 우리 독자들이 또하나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어린 자녀의 죽음이라는 상황을 놓고 사례자와 퀴블러로스 여사가 공통으로 추구하는 치유와 안식의 지점입니다. p271 이하에서 저자가 전개하는 호스피스론은 오늘날까지도 이 분야 관계자들에게 하나의 교본으로 꼽히는데, 페이지마다 저자의 깊은 깨달음과 잔잔한 관조가 전해지는 명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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